여름휴가를 제대로 떠나본적이 없다.
돈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고 핑계에 치이고...지금은 돈과 시간이 있어도 친구들과 맞추기가 어렵고
유니콘과같은 여자친구는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대학교 2년 차 후배가 있었다. 원래 친해서 말을 튼 몇안되는 사이지만 자주만나진 않았었다.
집도 멀고, 대학교는 더더욱 멀었고, 으레 그렇듯이 졸업하고 연락이뜸해졌지만 그나마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작년에 어렵게 취업해 서울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그이후로
둘다 서울외톨이라는 유대감 때문인지 자주 만나곤 했다.
서로의 직장이 종로를 기점으로 동/서로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종로혹은 종각에서 만났다.
6월 초 종로에서 껍데기에 쏘맥을 말아먹으며 여느때처럼 누가누가 더 잘짖나 다투다가
여름휴가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회사는 휴가체계가 어쩌고 연차가 저쩌고 하면서 전국노예자랑을 하다가
"마! 시간맞으면 우리도 멋지게 휴가 함 가자! "라고 운을 띄웠고 동생도 "오키 그러세" 라며 맞장구를 쳤다.
달력을 확인하며 연차를 맞춰보니 꾸역꾸역 평일에 이틀정도는 함께 맞춰볼 각이 나왔다.
그리고 헤어지며 다음 만남에는 멋지게 여행 계획을 세워보자고 서로 다짐했다.
사실 집가는길에 조금이라도 기대가 되지않는게 이상했다.
장난식으로 누구누구 절구통이 고급져서 더 빻았나 다퉜지만
절대 못생기지 않은 친구였고, 나름대로 인기도 많았던 후밴데...
분위기타서 일단 지르긴했지만
대체 둘이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다녀와야하나... 불편하니까 게스트하우스라도 가야하나
혼자 미친듯이 고민 걱정 시름에 잠겨 잠들었고
며칠동안 혼자 틈틈히 골머리를 썩기도했다.
6월 중순 우리는 다시 종로 할리스에서 다시만났다.
놀랍게도 그 친구의 기획력은 상당했다. 둘다 뚜벅이인 점을 감안해 강릉으로 목적지를 정했고
목금토일 3박 4일간의 큼직한 계획을 세웠고,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문도피구우승상품으로받은) 아이패드를 꺼내들어
열심히 서칭하기 시작했다. 한창 찾다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숙소문제를 넌지시 꺼냈다.
친구는 이미 염두에 뒀던 것처럼 칼같이 대답했다. "펜션 이틀 게하 하루 고고?"
식은땀이 났다. '이xx 뭐지'
그리고 다시 물어보았다.
"방은 ? 두개 잡나?"
- "돈 많아? 그냥 트윈베드로 한 방 잡으면 되지않겠음..?"
그 이후로 더 묻지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후 파티는 무조건 가야한다며 게스트하우스 하루 숙박에 관하여 떠들었다.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세부 계획을 마무리하러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의 계획은 나름 거창했다. 안목카페거리에 가서 인스타감성을 충족시키고
저녁에는 회를 떠서 소주와함께 바닷가를 바라보고, 중앙시장에서 닭강정도 먹고,
경포대에서 혹시나 있을 버스킹 구경도 하고, 마지막으로 여행일정에 따라 숙소예약까지 마치고
총무를 맡은 후배가 예약 내역을 전부 확인차 보여주었다 .
이틀치 펜션 예약내역은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예약내역이 누락되어 물어봤다.
" 야 이거뭐야 왜 게하 예약은 없음? "
- "엥? 그럴리가. "
" 봐봐 없잖어.. 아까 결제까지 다했다며 "
- " 그러게..."
" 그러게라니..왜 이틀치만 있는데"
- "이틀치만.."
" 뭐라는거야"
- "틀치만..."
" ??? "
- " 치만.."
" ????? "
- " 그치만..."
" !!!!"
- " .....그치만...이틀치만 예약하지 않으면....백수쿤..나에게 아무런..관심도 가져주지 않는걸..."
갑작스런 그녀의 시간 차 공격에 맥을 못추고 당황하여 소리쳐버렸습니다;;
" 손나...바카나!!! 그럴리가 없잖아. 넌 이미 나에게 제따이니 소중한 후배랄까.."
- " ㅔㅔ..혼또니..?"
" 그리고 생각보다 엄청나게 귀여운 요소가 가득하단 말이지 "
- " 백수쿤.."
그러더니 갑자기 맞은편에서 내 옆으로 와서 앉아버렸다..
" 어이... 이건좀..반칙이잖나? 이상한짓 ..하지말고...여행계획이나 마저 짜자구 (흠;) "
이러던 와중에 카페안의 손님들이 난리가 나버렸죠..
카페주인은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어와 대접하더니
"코노야로...꽤 하는걸? 하하하 이 정열의 에스프레소는 서비스라고! "
뒤의 노부부중 신사 분도 다가와 한마딜 거들더군요
"와타시노 소싯적 모습을 보는것 같네!. 자네. 고마우이 (찡긋) "
제 후배는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들고 있더군요 (흐뭇)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었는지...
지금은 제 옆에 누워서 가계부를 쓰고 있네요 (이거 너무 초고속전개아니냐구~)
올해 여름 휴가는 강릉으로 갈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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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변형은 여러번 이루어집니다. 긴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