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oo역, 철도 oo역 나오세요! 전동 oooo기관사 이상~!”
“전동 oooo 기관사님 말씀하세요 oo역 이상~”
“아..여기 아주머니 취객이 있는데 저 혼자 도저히 안되겠으니 공익좀 내보내주세요!”
“기관사님~ 우리 역 공익은 없고 지금 부역장님이랑 저랑 단 둘이 근무중인데 어쩌죠?”
"저 혼자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래요~ 아무나 한분 좀 내려와주세요!“
절박한 목소리에 슬그머니 부역장님을 쳐다보니 한쪽 눈을 찡긋하시며 다녀오란다.
“전동 oooo기관사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려갑니다!”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긴 글렀나부네..투덜 투덜거리며 승강장에 내려가보니
역시나 술에 떡이 된것인지, 떡에 술이 된것인지 구분이 가지않을 약 30대중반 여자고객님이
전동차 바닥에 빈대떡 그대로를 형상화한채로 쪼그린 채 잠들어있다.
“고객님~! 고객님 일어나셔야죠~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내 나름 노하우인 귀 가까이에 대고 소리지르기 신공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일단 입고차는 보내야하니 기관사님과 둘이 가까스로 부축해서 승강장 의자에 앉힘과 동시에
“수고하세요!” 한마디만을 남긴 채 기관사님은 전동차와 함께 기지로 슝..
어서 이 고객을 보내야 역 정리를 하고 마감을 하는데 어쩌지..
여자고객이라 함부로 터치도 할 수가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 빈대떡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안가는 와중에도
손에 꼭 쥐고있던 고객님 휴대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린다.
가족인가 싶어 잽싸게 받아보니 바로 남편분..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oo역입니다! 지금 사모님 상태가 심히 안좋으셔서 우리역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잠시 술 깰때까지 휴식중인데 남편분이시면 모시러 오실수 있겠습니까?“
“아..xx년 또 술쳐먹고 지x하나보네. 뒤X든지 말든지 걍 내버려두쇼~!”
“아니 여..여보세요 고객님!!”
뚜~ 뚜~ 뚜~
후아..고난이도구나 오늘은..
일단 승장장 의자에서 주출입구 택시승강장까지의 cctv 루트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얼마 전에도 만취한 여성분을 안내하려다 몸에 닿자마자 벌떡 일어나 성추행이라며 고소드립을 시전하던
고객님 덕분에 떡실신 직전까지 갔던 동료 직원 생각이 나고,
출동하여 처리를 부탁해보았지만 자신들도 성추행 문제로 여자는 함부로 건드릴수가 없다는 답변만
늘어놓은채 그냥 돌아가버린 남자경찰 두분도 생각이 나고,
뜸금없이 엄마, 아빠 생각도 나고,
어제 먹다남은 냉장고에 소주도 생각이 나고 ㅠㅠ
작전 1.
다시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양손 깍지를 낀채 고객님에게 팔 하나를 내밀고 잡아보라 애원을 해본다.
작전 실패..
작전 2.
한번은 실패했지만 두 번 실패하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다시 귀에대고 큰 소리로 외쳐본다.
“고객님 집에 가셔야죠~! 여기 전철역입니다. 고객님 집이 아니라구요!!”
세 번은 하지 말아야지..역시나 실패.
작전 3.
그래도 남편인데 아까는 홧김에 해본 소리겠지.
다시 고객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통화를 시도해본다.
어라..부재중 통화 13통화나 와있더니 이젠 어디인지 알아서 그런가 아예 받지를 않네..ㅡ.ㅡ
세 번 통화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
슬슬 짜증이 치솟으려는 찰나 꽤나 쌀쌀해진 날씨탓인지 고객님이 신음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인다.
“고객님!!!!! 어서 일어나세요!! 집에가서 주무셔야죠!!! 남편분이 화가 많이 나신거같네요!!!!!”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모른척하더니 ‘남편’ 두글자에 드디어 환자가 코마 상태에서 벗어나..아니 환자는 아니구나.
어쨌거나 눈은 뜨질 못하지만 “집..집” 소리를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냅다 팔짱을 끼고는
아까 생각해두었던 CCTV동선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길로 걸어가며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
“고객님 택시 잡아드릴테니 정류장까지만 제 팔을 잡고 계세요. 바로 앞이니 금방 갑니다!”
휘청휘청하면서도 용케 손은 풀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역은 엘리베이터만 내려가면 바로 앞이 택시 승강장.
고객님을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려 앉혀두고 택시를 잡아보려 하지만..
역시나 시간이 시간이고 동네가 동네인지라 이시간에 택시가 있을 리가 없지.. 젠장!
어쩔수 없이 다시 고객님 핸드폰으로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장거리’임을 강조하여
간신히 택시 한 대를 수배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쪼그려앉아있던 고객님을 확인한 순간..
아.. 이 아줌마야! 여기 화장실 아냐! 여기서 소변을 보면..ㅠㅠ
아무리 CCTV가 뻔히 비추고 있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오해살까 겁이나 바로 고개를 돌리니
그 취한 와중에도 주섬주섬 다시 바지를 치켜올리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아 다행이라 해야할까.
그렇게 약 10여분이 지난 뒤에 도착한 택시를 태워보내기 전까지 고객님을 마구 흔들어
집이 어디인지 위치를 물어보고, 남편에게 택시 번호를 찍어 문자로 보내고
기사님에게 집까지 잘 좀 모셔다드리라는 부탁과 함께 맞은편 편의점에 뛰어가 냉커피 하나를
사다드리면서 드디어 상황이 종료.
시간을 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났구나.
오늘은 일찍 자긴 글렀네..
언제 역 마무리하고 수입금 마감하나..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에 옷까지 다 젖었네 젠장..
그러면서도 그 고객님 집에는 잘 가셔야할텐데 걱정하는 걸 보니 나도 어쩔수 없는 철도인인가부다.
오늘도 어떤 역무원의 하루는 이렇게 보람차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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