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 세 편을 추천해드릴까 합니다. 우선 추천 도서를 말씀드리기 전에 잡설을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소설의 재미를 내용보다 형식에서 찾는 편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도 문체가 판소리 소설마냥 길어지면 읽기 싫어집니다. 반대로 별거 아닌 사건과 갈등구조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도 문체가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면 눈에 힘을 잔뜩 준채로 읽습니다. 이런 잡설을 풀어놓은 이유는 딴 데 있지 않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이해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추천해드릴 작품들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처럼 여러 독서가들에게 사랑받고 마니아층을 형성할 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아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칭찬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저 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 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더 좋았는데....... 라고 말하실 수 있는 분들에게는 좋은 추천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1.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전원
장편소설입니다. 중국 현대 소설이고요. 600페이지에 버금갈 정도로 두껍습니다. 중근 근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들어섭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요. 일본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문화대혁명이 일어납니다. 인민재판 같은 게 열립니다. 당연히 누가 죽고, 누가 살고 그러는 내용이겠지요. 여기까지는 시간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과 비슷한 느낌이겠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한 마을에 두 개의 지주 가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이좋게 지내던 두 가문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척을 지게 되고, 갈등이 쌓여가다 서로 복수를 주고받게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우선 류전원이라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묘사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독특하다면 독특한데 또한 독특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니(?) 더욱 독특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라면을 끓일 때 라면스프를 넣지 않습니다. 그런데 라면에서는 라면스프 맛이 납니다. 그러니 잘 모르고 넘어가면 그냥 라면이구나, 하고 자칫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묘사를 잘 쓰지 않는 작가지만 독자가 이 점을 눈치 채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묘사를 남발하는 작가의 작품에 뒤지지 않을 만큼 작품 속에는 생생한 영화가 그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류전원은 참 독특한 작가입니다. 묘사에 유독 힘을 주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작품 초반에 묘사를 많이 넣습니다. 우선 분위기가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배경을 먼저 만들면 그 속에 어울리는 인물을 투입합니다. 이미 묘사가 만들어 놓은 국물 속은 된장 맛입니다. 그 다음에 투입되는 인물은 버섯이 되었든, 호박이 되었든 그저 된장찌개일 뿐이지요. 하지만 류전원은 다릅니다. 그는 묵은지 김치 같은 강한 성격의 인물을 만들어 냅니다. 그 인물이 배경 속에 투입되면 따로 묘사는 필요 없게 되는 것이지요. 김치맛만 좋다면 따로 조미료가 들어갈 필요가 없는 김치찌개처럼 말입니다
2. <조드> 김형수
산 아래 평원을 가로지르는 흰색의 무리는 말 그대로 일대 장관이었다. 땀이 나서 성에로 덮인 건장한 말들이 무더기로 눈을 차 내던지며 간다. 북방의 준마들에게서밖에 볼 수 없는 목숨을 건 질주의 풍경이다. 그 장엄한 모습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것은 수분이 없는 눈보라인데, 그것들이 말발굽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라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종마가 아홉 마리, 준마가 구십여 두, 그 위에 얹힌 사람 머리가 앞뒤로 하나씩이거나 거의 군사행렬에 가깝다. 그것도 대열을 끄는 자는 평범한 말치기 같으나 뒤에 있는 사람은 싸움깨나 해본 용사인지 전투용 활을 맸다. (49P)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을 지배하던 시절의 영웅 설화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HD급 스포츠 중계 화면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몽골 작가들조차도 <조드>의 저자인 김형수 씨를 보면서 어떻게 몽골 태생의 작가들보다 몽골 초원에서의 모습을 더 잘 그릴 수 있냐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예전에 비가 찍었던 니콘 카메라 CF가 생각납니다. 단 일 초의 장면을 찍기 위해 숲에서 비를 맞아가며 은폐, 엄폐하고 있던 사진작가(비)의 모습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조드>를 읽다보면 작가가 마치 그런 정신으로 취재에 임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저절로 갖게 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골똘히 생각했던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만약, 김훈이 똑같은 소재로 이런 소설을 썼다면 어땠을까? 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등을 보면 김훈이란 저자는 작중 인물 속에 스며드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습니다. 마치 접신을 시도하는 박수무당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박수무당의 입에서 진짜로 이순신이나 김상헌, 정약전 같은 말투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무속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에이, 저건 무당이 다 연기하는 거야, 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무당은 굿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오락가락하게 만듭니다. 뭐야, 저 사람 어떻게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출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김훈은 실제로 그런 경지의 작가이도 합니다.
<조드>의 김형수는 김훈과는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그는 역사 속 인물과 굳이 접신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종군 기자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할까요?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가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사선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스타일처럼 느껴집니다. 김훈이었다면 이쯤에서 작중 인물 속에 스며들어 작가의 철학이나 성찰을 녹여냈을 법한 타이밍인데 김형수는 고작 찰칵하고 셔터를 한 번 더 눌러버리는 식이랄까요. 김훈이 이순신이나 인조, 정약전을 위해 마이크를 붙잡는 스타일, 김형수란 작가는 칭기스칸이나 자무카를 위해 사진 한 방을 더 찍어두는 스타일, 그래서 김형수의 문체는 약간은 다큐멘터리나 스포츠중계 같습니다. 이게 딱히 나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개인적으로 끌리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3. <꽃> 부희령
아, 이 작품은 사실은 아직 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이 책을 눈으로만 읽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현재 제가 쓰면서 읽고 있는 작품입니다. 필사...... 라는 것에 대해 아시는 분도 있을 테고,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사라는 건 그냥 베껴 쓰는 것입니다. 좋은 글이 있으면 그저 옮겨 적는 거지요. 주로 습작생들이 많이 하는 일입니다. 필사라는 건 좋은 글을 읽고, 따라 쓰는 게 일반적이지요. 저처럼 필사를 해나가면서 읽는 편은 드물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냐 하면... 일부러, 고의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천, 천, 히 읽을 수가 있지요. 똑같은 작품이라도 느리게 읽을 때와 빠르게 읽을 때가 확연히 다릅니다. 뭐가 다르냐하면...... 음..... 잘 모르겠네요. 그냥...... 조금은 보일 듯 말 듯 하다고 해야 하나? 이 작품의 주제나 줄거리가 이렇구나, 라는 생각은 빨리 읽거나 보통의 속도로 읽을 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필사를 하면서 천천히 읽게 되면 작품이 하나의 틀(액자를 가진)이 보다 명확히 보인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의 완성만 보는 것이 아닌 틀이 갖춰지기 이전의 모습들도 머릿속에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게 되고요. 뭐 이 정도인 듯싶습니다.
이 소설은 현역 작가들 쪽에서 칭찬과 질투가 워낙 자자해서 관심을 갖고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문장 쪽으로 주로 칭찬을 많이 듣는 것 같고요. 문장 때문에 동료 작가들로부터 질투와 찬사를 동시에 받더군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비전문가의 한계인 듯싶습니다. 문장 스타일을 요리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그냥 조미료 잘 안 쓰는 스타일입니다. 작가가 다루는 소재들도 불륜, 사랑, 성...... 같은 걸로 특별한 게 없습니다. 별로 재미없을 겁니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대부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못 받는 게 흔하니까요. 뭐, 레이먼드 카버 정도면 모를까. 이렇게 말하면 제가 이 작가를 무척이나 냉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네요. 무명에 가까울 정도로 묻히는 작가 중에 보석 같은 작가가 있고, 그것을 나만이 알고 있다고 느낄 때 제가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요. 결코 그리 널리까지는 전파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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