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배낭여행을 많이 가는 시대이고, 그러다보니 다양한 경험을 한 분들이 많아 여행에 관한 썰을 풀기가 쉽지가 않죠.
철도 공사로 열차를 환승을 한 번만 하고 가도 될 길을, 열차환승 -열차환승- 열차환승- 버스환승-열차환승-열차환승...하며 장장 15시간동안 이동 했다거나.. 호스텔 예약도 안 해 방이 없어 길에서 노숙을 했다거나..하는 건 별로 경험담에도 끼지 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여행 도중 머물렀던 룩셈부르크는 짧지만 참 기억에 남는 경험이라 몇자 적어봅니다.
저같은 경우엔 여행갈 때 나름의 컨셉이 있는데요.
1. 어디로 갈지는 떠나는 전날 결정하자.(즉, 미리 여행 경로를 정하여 계획하지 말자.) 2. 유명 관광지에 너무 큰 미련을 갖지 말자. 3. 가능한 걸어다니자. 이정도입니다.
그래서 유럽여행도 프랑스 도착하는 숙소만 예약하고 그 뒤로는 완전 무계획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떠나는 날... 어디로 떠날까하다 정한 곳은 룩셈부르크.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그냥 떼제베 예약비가 가장 싸서...-_-;
경로를 정하고 묶을 숙소 위치만 대충 안 뒤 떠났습니다.
전에 머물렀던 도시였던 파리에서도 지하철을 한 4번쯤 탔나? 나머진 전부다 걸어다녔고, 룩셈부르크에서도 당연히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걸었죠. 지도로 보니 역에서 2킬로 남짓이었던 숙소.. 걸어봐야 30분도 안 걸리잖아. 하며 당당히 갔지만, 그땐 몰랐습니다.
지도는 2차원이고, 룩셈부르크는 3차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난 길치라는 것을...
도시 전체가 밸리형태로 이루어진 룩셈부르크는 한 번 길을 일으면 길치인 전 정말 속수무책이 되더군요.
예쁘다고 사진 찍을 땐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저 다리 밑 어딘가에서 헤메게 될줄은...ㅡㅜ
현지인도 안 가는 것처럼 보이는 인기척이 없는 산도 오릅니다.
까마득해보이는 다리.
그러나 이것도 오릅니다.
저 아래 보이는 횡단보도는... 방금 내가 건넜던 횡단보도ㅠ
정말 가끔 보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려해도,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모르더군요.
지도를 들고 숙소를 가리켜도 어딘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위 버스 정류장에 도시 지도가 있길래 내가 있는 위치를 보니,
가려는 곳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걸 알게 되고 멘붕....
숙소에 짐을 내려놓은 것도 아니라 모든 짐을 다 등에 메고
4시간을 넘게 쉬지도 않고 밥도 못 먹은 채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니 짜증이 솓구치고 다 던져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주위에 학교가 있었는데 거기에 영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을 발견. 그 학생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숙소를 갈 수 있게 되었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을 보니 도시에 도착한지 5시간도 훨씬 지나있더군요. 도시 자체가 작은데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모든 걸 다 본 느낌이라 다음 날 할 게 없었습니다.-_-;
이튿날 마침 비도 오겠다 숙소 근처 산책이나 하자.. 하고 한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동네가 정말 동화에서나 나올 것처럼 예쁜 느낌이라 지루하지 않게 산보를 했는데, 숙소를 돌아가려니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돌아가야합니다.
그러니 뭔가 좀 손해를 보는 느낌. 다른 길로 돌아가는 길이 있나 보니 룩셈부르크는 거의 모든 길이 외길입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 있는 지도를 보니 다운타운을 통해 가면 한 2시간 남짓만 걸으면 숙소로 갈 수 있을 거 같더군요.
어제 그짓도 했는데 오늘은 짐도 없고 그냥 좀 걷자...하며 걸었고, 어제와 다르게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제 위치를 파악하며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빠져나와 큰 길로 나왔고 이제 큰 다리만 건너면 바로 앞에 다운타운이 나오게 되는데.. 그런데....
제 옆에 보이는 작은 숲 길 하나..가 절 유혹합니다.
순간 직감했습니다.
저기에 들어가는 순간 100% 길을 잃는다. 절대 들어가지 말자. 어제 그 짓을 또하지 말자.......
그런데 어느새 제 발은 숲 속을 향하고 있더군요-_-;;;
하지만 숲 속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길을 잃던 말던 즐기자..하며 걸였죠.
그런데... 좀 걷다보니 옆에 이런 게 보입니다.
뭔가해서 내려가보니..
닫혀있었으면 미련없이 돌아갔겠지만.. 하필이면 문이 열려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안은 완전한 암흑이었습니다.
핸드폰 플래쉬를 켜니 무슨 동굴 형태더군요. 좀 들어가보니 빛으로의 역할을 전혀 못하는 촛불이 드문드문 켜져있고...
하지만 촛불이 있다는 건 사람 발자취가 있다는 것인지라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폭 1미터, 높이 180센치 남짓인 이 동굴은 먼지로 자욱했고, 핸드폰 플래쉬가 없으면 가시거리라는 게 아예 없을 정도로 깜깜했습니다.
그렇게 한 5~60미터정도를 걸은 느낌. 앞에 사거리가 나오더군요. 일단 왼쪽으로 가봤습니다.
그러니 이런 계단도 나오고... 그러다 좀 더 걸어가니 또 사거리가 나옵니다.-_-;; 이때 직감했습니다. 더 가면 진짜 길을 잃는다. 이 좁은 동굴에서 길을 잃으면............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확 무섭더군요.
그래서 다시 왔던 길로 급히 돌아가는데, 좀 걸어가자 갑자기 무슨 인기척이 들립니다. 아까 첫 4거리 반대편에서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 하나와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 3명이 나오자, 저도 놀라고 그 사람들도 놀라고....
첨에 그 중 하나가 불어로 뭐라뭐라 말을 걸다가 제가 못알아 듣자 가이드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영어로 말을 하더군요.
가이드 : 여기 대체 어떻게 들어왔냐.
저 : 저 반대편에 입구가 열려 있길래 들어왔다.
가이드 : 여긴 원래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곳인데 연구자들 세미나 때문에 오늘만 공개된 것이다. 여기를 이렇게 혼자다니면 길을 잃게 되서 큰일 난다.
저 : 그런가. 전혀 몰랐다. 그런데 대체 이건 무슨 동굴인가.
가이드 : 17세기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지은 지하 동굴이다.
저 : 아...너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들어왔다. 허락없이 들어와서 미안하다.
가이드 : 혹시 원하면 우리랑 같이 다녀라. 혼자 이렇게 다니면 정말 위험하다.
저 : 고맙지만 괜찮다. 이렇게 허락없이 들어온 것만도 너무 큰 실례를 범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겠다.
하고 그 사람들과 헤어지고 동굴을 나왔습니다.
뭐랄까... 영화에서나 나올 거 같은 동굴을 혼자 걷는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숲 길의 유혹에 빠짐의 고마움도 느꼈고, 한 편으론 참 무개념한 행동을 한 거 같아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후에 더 많은 국가와 도시를 돌아다니고, 더 큰 고생을 했음에도 참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해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아래는 그 동굴에서 찍은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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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벨기에로 학회를 가는데, 학회 후 사일 정도 여유가 있어서 벨기에를 더 구경할지 룩셈부르크를 가볼지 고민중이었어서 글이 참 반갑습니다 :) 동굴로 들어가는 사진을 보는데 막 제 심장이 다 쿵쿵 뛰네요. 보기만 해도 무서워요. 저도 남들 페이스에 휘둘려 진짜 보고싶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을 제 1원칙으로 해서 여행을 다니는데 재미있게 여행하시네요! 숲길도 정말 예쁘고요. 룩셈부르크에서 또 어떤 점이 인상에 깊으셨나요?
룩셈부르크는 워낙 작은 도시다보니 뭘 크게 보는 걸 기대하면 사실 실망만 할 그런 곳이에요.
제 여행 취향이 특이한 건지, 남들이 좋다하는 건 별로 안 좋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남들 다 별로라는 룩셈부르크는 저 경험이 없어도 도시 자체가 예뻐서 그것만으로 좋더라구요.
근데 벨기에에서 어딜갈까 고민하면 대부분 네덜란드 쪽으로 가지 않나요? 흐흐
전 네덜란드는 안 가봐서 잘 모르겠네요.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가요?
전 여행 가자 마음먹고 일주일만에 준비 마치고 그냥 떠난 케이스라서..
딱히 준비도 계획도 없이 다녀서 알짜정보 이런 걸 드릴 게 별로 없네요.
여행 자주 다니시면 당연히 아시는 거고, 처음 가셔도 많이 들으셨겟지만.. 짐은 무조건 가볍게.
전 35리터짜리 가방으로 9킬로를 넘지 않게 쌌는데도, 많이 걸을 땐 그것마저도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획없이 다녀도 큰 동선은 대충 머리속으로 그리는 게 좋습니다.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너무 무계획으로 다니면 정말 비효율적으로 다닐 가능성이 높아요.
물론 여행 기간이 길어 여유가 되신다면 별로 상관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