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특성 상, 경어체를 쓰지 않았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나에겐 타임 머신이 있다면 타고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
중3 때 국어시간이다.
국어선생님을 사모하기도 했지만, 선생님보다 선생님의 국어 수업이 더 좋았다는 편이 맞다.
초 중 고 통틀어.. 시간 가는 걸 아까워 하며 들은 수업은, 그 시절 그 국어시간 뿐이다.
1번부터 끝번까지....반 친구들 모두, 꼴찌마저도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눈 안에 넣으셨고, 우리는 45분 동안 꼼짝없이.. 그 흥미진진한 강의에 사로잡혔다.
그 기가막힌 비유와 유머라니 !!!
딱딱한 논설문이나 설명문의 내용도, 세반고리관을 통과하기 전에 바로 좌뇌에 쏙쏙 입력 되었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모두, 선생님이 자신만 바라본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위해서 저리도 재미있는 말씀을 쏟아내고 계시는구나....의심없이 믿으며
국어시간 내내.. 행복감 속에서 설레고 또 두근거렸다.
학교 행사로 인해 국어 수업이 캔슬되거나 단축이라도 될라치면, 공연히 수학이나 물상 과목을 욕하기도 했다.
우리는 선생님을 줄곧 사모했지만, 아무도 그 사랑 때문에 지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떤 학생에게도 딱, 그 만큼의 관심 이상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600여명 모두에게 <나만의 선생님> 이신 셈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의상은... 감청색 잠바, 똥색 스웨터, 흰색 긴 셔츠, 하늘색 짧은 셔츠, 그리고 바지 두 벌이 전부였다.
한 달 내내 같은 옷을 입으신 적도 있었다.
운동장에서 머얼리 똥색 스웨터만 눈에 띄어도 가슴이 뛰었던 적도 있었다.
고전경시대회를 마치고 진숙이와 나에게 짜장면을 사주셨을 때, 비로소 그 스웨터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는데....
군데군데 보푸라기가 일고, 올도 빠지고 하여... 앞집 진돗개 새끼 낳을 때
밑에 깔아주던 스웨터랑 비슷해서 가슴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면서 아...이런 느낌이 가슴 아픈 거로구나.. 했던 기억도 우습다.
여고 진학 후에도 거의 매일 선생님 생각...아니 선생님의 국어시간을 떠올렸다.
솔직히 고1 국어 수업은, 비유하자면 대궐 수랏간 숙수가 해주던 요리를 먹다가 ...
신참 주부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 중학교 동창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수업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그리움에 사무쳤던 진숙이와 나는, 여름 방학 그 어느날..
모교 서무실에 찾아가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고,
땡볕 아래 수박 한 통을 들고 명지동 골목길을 헤맨 끝에
내려앉을 듯 납작 엎드린 선생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안고 마루에 앉아 계시다가 별 표정없이 우리를 맞으셨다.
문지방을 넘을 때는 머리를 숙여야 했다.
방은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 학생들 저녁 좀 준비하소. ”
선생님이 더 어린 아이를 업고 계신 사모님께 다정하게 말했다.
순간 !!! 잔망스럽게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 아.....선생님의 아내로 살 수 있다면..이런 집에서 살아도 좋아...’
부엌 쪽에서 도마질 소리가 바로 옆인 듯 크게 들려왔다.
선생님이 씨~익 웃으시며 “ 저래 요란스러워도 반찬은 오이 냉국과 감자 볶음 뿐일 게야. ”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 표정에서 행복이 읽혀졌다.
그 날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명지동을 벗어나 중앙 로타리 근처까지 오면서도 진숙이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 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선생님을 잊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 막내동서와 같은 학교에서 10여 년을 함께 근무하셨다.
선생님이 정년 퇴임을 하고 학교를 떠나실 때,
학생 100여명이 울면서 선생님 뒤를 따라 교문 밖까지 나가 배웅했단다.
꽃미남 총각 선생님보다 60세 넘은 선생님이 더 인기 있었다고 한다.
동서가 존경한 단 한 분, 동료 선생님이셨단다.
아까 세시쯤 진숙이와 통화하면서, 선생님 소식을 들었다.
지금 많이 편찮으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한다.
그 때부터 계속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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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잊지 못할 선생님 수업은, 1학기 교과서 마지막 단원,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아시다시피 <소나기>는,
“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를
마지막 문장으로 하며 갑자기 끝나버립니다.
선생님은 미처 감정 처리를 못하고 멍 때리고 있는 우리들 마음을 읽으시고,
“ 각자 소설가가 되어 소년의 심정이 드러나게 결말을 이어가보라 .” 고, 하셨지요.
단편소설의 특징을 살려야함은 물론, <소나기> 특유의 간결체도 그대로 유지해야 했고요.
제가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시지 않겠지만, 몇 오라기 기억을 더듬어 옮겨 보겠습니다.
소년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사립문을 나서자마자 개울을 향해 달렸다.
맨발인 것도 잊었다. 두 줄기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엄지 발가락이 돌부리에 채였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 아하 씨이 ..아하 씨이 그 날 산에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했어.
다아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아아 ...... `
개울물은 달빛에 반짝거렸다.
소년은 울부짖으며 소녀가 던졌던 조약돌과 비슷한 돌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더 큰 돌로 찧었다.
가루가 되도록 찧었다.
손에 피가 나는 줄 모르고 찧었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생지랄발광을 했다. ( 생지랄발광 ㅡ 당시 우리 막내고모가 자주 사용한 말입쬬.)
저는 5점 만점에 3점을 받았습니다.
소년의 심정이 아니라 제 심정을 그렸다는 이유였습니다.
주인공은 숫기가 없고 소극적이며 행동력이 없는 우직한 시골 소년이라..
결코 저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선생님의 멘트가 적혀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