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딱히 상사에게 혼이 난 것도 아니었고, 상사가 모두 휴가를 가서 편히 누워있다 온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낸 것도 아닌 단조로운 근무를 끝마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게 나마 손을 베여 반창고를 하나 더 늘리긴 했지만, 사실 불편한 것은 길게 찢어져 일 주일 내내 거즈를 갈고 있는 발가락이 더 까다롭습니다. 여느 날과 살짝 달랐던 것은, 오늘은 아무 회식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입 티를 벗어가는 중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각자 회식이 잡힌 것인지, 웬일로 상사와의 술자리가 마련되지 않을 때면 항상 집회하던 동기들이 오늘따라 기별이 없습니다. 저는 마치 스핑크스의 퀴즈처럼 오늘 저녁은 구두에 혹사당한 왼발의 상처로 인해, 아침과는 다른 걸음걸이로 절뚝거리며 세탁소에 맡겨 놓은 정장을 찾아 방에 대충 던져 놓은 뒤, 간만에 책 한 권을 꺼내들고 카페 깊숙한 곳의 의자에 몸을 파묻었습니다.
사실 대충 책장을 넘기고는 있지만, 이 행위가 '나는 공부하고 있다'는 변명으로 자기위안을 삼기 위함이지, 진정히 지식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고결한 행위가 아님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한 두장 끄적거리다보면 으레 폰을 들고 이 카톡방, 저 카톡방 집적거리며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어서 드잡이질을 하여 무료함을 해소하곤 합니다.
그러던 도중, 몇 달 전 신입사원 연수에서 동기들의 번호를 떼로 등록할 때 이후로는 한 번도 표시되지 않았던 친구 등록 마크가 떠오른 것을 보았습니다. 또 무슨 광고인지, 아니면 번호가 바뀐 것인지, 저는 별 생각 없이 반창고 감긴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주황빛으로 채색 강조된 화면 가운데에는, 수 천 일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아버지'라는 친구 등록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저 멍한, 비몽사몽의 상태로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친구의 프로필을 확인했습니다. 그 짧은 일순, 손가락이 화면과 접촉하여 프로필 화면이 로딩되는 그 순간 저는 현실감각을 되찾았습니다. 당연히 카카오톡이 아무리 훌륭한 소통 프로그램이건 간에, 이 세상에 이미 없는 사람을 친구 추가 해줄 수는 없는 법이죠. 당연히 이 프로필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누군가의 것이고, 그저 제가 장례 후로 전화번호를 정리하지 않았기에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삭제된 '그 전화번호'를 배정받은 나그네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국 나무와 아파트가 어우러진 배경을 보고, 프로필 사진을 눌러 여섯 장의 사진을 염탐하고야 말았습니다.
여섯 장의 사진 중 네 장은 자연을 찍은 사진이요, 한 장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쯤 되어보이는 젊은이요, 나머지 한 장은 그와 닮았지만 아주 어려보이는 학생의 사진이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이지 않을까요.
저는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다 프로필을 끄고,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의 페이지를 손으로 비비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보통 제가 글을 쓸 때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예를 들면 밥에 쳐넣은 콩이 더럽게 싫다던가-였지만, 오늘은 무엇을 맺음말로 채택해야할 지 감이 오질 않네요. '아버지', 당신 또한 훌륭한 아버지이리라 믿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