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온지도 어느새 꽤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일 관계로 어느 대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당을 쭈욱 둘러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학식 가격이 이렇게 착했구나 싶었다. 매점의 음식들이 대략 평소 먹는 점심 가격의 절반 수준인데, 어째 내가 그걸 보고서 처음 한 생각은 "가격이 이런데 맛이 없지는 않을까"였다. 예전에는 이것도 비싸서 못먹었는데, 나도 참 배가 불렀나보다 싶었다. 뭐 어짜피 가격도 싸겠다, 가장 비싸보이는 걸 시켜먹기로 결정했다. 바깥 세상에서 먹는 같은 메뉴와 비교했을때 가격은 싸면서도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애초에 가격표에 붙은 저 숫자가 맛있게 만들어 주는것도 아닌데, 괜한 선입견을 가진게 아닌가 싶었다.
밥을 먹고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시켜먹기로 했다. 가게 점원분에게 은근슬쩍 토핑을 좀 더 달라고 해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류 부탁을 하는 스킬은 자연스럽게 많이 늘은 것 같았다. 결국 토핑도 많이 주시고, 심지어는 하나 더 얹어주셨다. 학생 때 이런 거 좀 잘했으면 돈 많이 아꼈을 텐데, 약간 뒤늦은듯 하여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먹고 살자고 익힌 스킬인데, 오히려 먹고 살 만 하니까 별 생각없이 더 잘하게 된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식 중 가장 비싼 것을 골라먹는 것도, 아이스크림에 토핑을 하나 더 얹는 것도, 지금의 나에겐 딱히 자랑거리가 된다던가 큰 행복이 될만한 것들은 아닌데, 학생 시절에는 나름 한달에 한두번 큰 맘먹고 행하는 일탈이였다. 애초에 아이스크림 토핑같은건 내가 학생때 말만 조금 더 잘했어도 가능했을 텐데, 그게 뭐라고 돈을 아껴가며 가끔 한번씩 큰맘먹고 사먹었는지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니,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더이상 나에게 큰 행복이 아니게 되어버렸고;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니, 정작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나에게 더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새삼스럽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행복은, 지금이라서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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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속에는 늘 불확실한 미래의 대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장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더 큰 행복을 버리지 말자,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에 후회할 짓을 하지 말자, 늘 이런 생각을 내 자신에게 강요하다시피 주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느낀 것은,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거리로 남는 것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학생 시절에 없는 돈 짜내서 저렴한 숙박을 순회하며 다녀온 베낭여행이, 직장인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닌 시간의 사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편의점 맥주 몇캔 사서 공원 벤치에서 즐겁게 떠들던 추억이, 이름만 들어도 사치스러운 독일 맥주집에서 먹는 맥주보다 더욱 달달한 즐거움의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다시 그렇게 하면 즐거울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그만큼 즐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없던 것들은 더 나은 것으로 채울 수 있지만, 그때의 마음가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는 것도 생긴다. 그렇게 놓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돌이켜 보니, 지금 내가 놓치기 시작하는 것들도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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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가를 내서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원래는 가볍게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조금은 무리하더라도 일정을 맞춰 함께 가겠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쉽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란다.
"에이 무리하지 마, 나중에도 기회 많은데"
예전 같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요새 들어 "나중"이란 단어가 예전만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중에 하자"고 했던 일들 중에서, 내가 진짜로 하게 된 일이 어림잡아 20%정도만 되어도 대단히 많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을, 나중에 하게 될 확률은 더욱 적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고 있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난 지금 얼마나 많은 일들을, 다음에 더 좋은걸로 하겠다며 미루고 있을까? 지금의 행복은, 지금이라서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그리고 지금 당연해 보이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전부 다 수많은 이들의 소소한 노력이 결실맺은 된 작은 기적들이라는 것을 요새들어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