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pgr 유게를 보다가 누가 "싸이월드 다이어리 없어지지 않았나요?"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들어가봤더니 다행히 잘 살아있었다. 싸이월드는 이제 아무도 안들어가는 듯 하지만, 나에게는 사라지면 절대로 안되는 중요한 (흑)역사의 보고이다.
나는 싸이월드 시절 다이어리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 나의 다이어리 작성 방식은, 노래 가사를 인용하고 거기에 나의 코멘트를 다는 식이었다. 코멘트로는 해당 곡 대한 평가나 감상을 쓰기도 했고, 당시 나의 심경을 노래에 빗대어서 쓰기도 했고, 혹은 그 노래의 가사로부터 파생된 사색을 간단히 몇 줄 적어둔 것이었다.
내 다이어리는 음악을 좋아하던 일촌들로부터 꽤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때만 해도 즐겨 찾는이 거의 없던 흑인음악 위주로 들었기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는 몰랐던 노래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을테고, 어떤 경우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내가 뜬금없는 코멘트를 쓸때면 "이 가사를 갖고 이런 생각을? 크크" 이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처음 싸이월드를 개설하고 다이어리를 쓴 날짜는 2004년 여름방학이 막 끝난 시점으로, 대학교 입시 준비의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던 시기였다.
보니깐 나의 첫 다이어리에 인용된 가사는 바로 이 노래였다.
달콤한 전율로 나를 만족시키는...
It's La Musique... for your soul.
빛으로 빚어진 그것들의 향기로
시들어진 너를 안아줄거야
- from 'La Musique' by 윤미래 -
그리고 나서 아래에 이런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음악... 그것은 나에게 있어 굉장한 안식처]
세상에! 이 감성은 정말 싸이월드 그 자체였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첫 글로써 이보다 더 적합한 글이 있을까? 마이너 장르(물론 윤미래는 당시에도 대중적으로 사랑 받았지만, 나의 주 음악 식성은 언더 힙합이었다) 듣는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하게 부심 좀 부렸던 모습과, 입시로 인해 고통받던 고등학생의 어설픈 고독함이 그야말로 싸이월드답게 표현되어 있었다.
싸이월드 시절을 상징하는 너무나 유명한 짤방 하나가 있다. (디지털 풍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짤방의 가장 웃긴 점은, 사진의 주인공이 자타공인 나와 닮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적었던 다이어리에서 보이듯이, 글 자체도 당시의 내가 쓸법한 글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한번도 밖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았고, 싸이월드 시절에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는 알리바이가 있어 다행이지만, 이 짤방을 볼 때마다 흠칫하며 괜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이상 싸이월드식(?) 표현법을 채택하지 않을 뿐, 지금의 나 역시 여전히 음악을 스스로에게 허락한 몇 안되는 마약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 노래를 마약 삼아 옛 다이어리를 읽으며 옛날의 나를 곱씹어봐야겠다. 오늘의 이 고독은 15년 전 입시로 인한 고독보다 더 건조하고 쓰니깐 말이다.
(여담 : 이 노래는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이면서, 한치 앞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버티면 잘 될거라는 꿈조차 꾸기 어려운 현실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이제 당사자들이 유명 뮤지션들이 되고 소위 "성공"을 하고나니 또 한번 입체적으로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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