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환
영환은 시인이다. 나름 유명한.
그 덕에 강변에 있는 호텔 주인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숙박하고 있다.
누구처럼 나이를 지긋이 먹었고 사랑을 찾겠다고 아내와 이혼을 했다. 아내는 그를 무시무시한 괴물이라 표현하고.
어느 날 잠깐 사이에 눈이 수북이 오고 그곳에 서 있는 상희와 연주에게 다가가 아름답다 말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 사람이 너무 아름다워 자신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영환은 둘을 위한 시를 지어 준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딘가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의 시다.
영환에겐 두 아들이 있다.
정수와 병수.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며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병수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정수에게는 그렇게 이쁜 아내는 더 이상 없을 거라며 처한 테 잘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 정수는 이혼한지 좀 되었다.
종업원이 영환을 알아본다. 연주도 그를 알아본다. 나름 유명한 시인인가 보다.
처음에는 다들 영환이 신기하고 반갑고 그렇다. 설렘이 있다.
하지만 이내 본인들이 그려온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그 설렘은 이내 사라져 간다.
긴 동경의 시간과 오랫동안의 머무름은 단지 2분 만에 '더 이상 설렘이 없다'라는 고백으로 떠나가게 된다.
더 이상 설렘을 가져다줄 수 없는 그의 가치는 유지될 수가 없다.
- 두 아들
정수는 이혼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영환에게는 끝까지 숨긴다.
그에게는 자동차가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차는 연주가 몰다가 사고가 나서 수리해서 팔았던 차였다.
동생 병수를 병신이라며 놀린다. 이름이 병신과 비슷하게 지었으니 놀려댄다.
두 아들의 엄마는 남편이었던 영환을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세상 나쁜 놈이고 그런 놈이 없다고.
근데 정수는 그걸 그대로 아버지인 영환에게 전달한다. 지독할 정도로 대놓고.
정작 이혼했다는 자신의 말을 숨긴 채 타인의 말과 이미지를 전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감추고 그냥 이미지를 퍼다 나를 뿐이다.
병수는 감독이다. 영화감독.
그는 어머니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터라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여자를 무서워한다. 남자와 다른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미지의 세계이기에 그런 것 같다. 아니 여자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무서워한다.
여자를 만나긴 하지만 그냥 만나는 거다.
아버지의 존재에 심히 불안해한다. 어디로 사라지진 않았을까? 자살을 염두에 두시는 건 아닐까?
나름 감독으로 유명한 그에게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이 있다. 그 요청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사인은 해준다.
- 두 여자
상희는 호텔에서 혼자 머물고 있다. 팔에 상처가 낫지만 스스로 자가 치료를 한다.
누군가처럼 감독이랑 사귄 모양이다. 하지만 헤어져서 쉬고자 호텔로 들어왔다. 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연주는 그런 상희를 위로하고자 커피를 사들고 왔다. 같이 쉬고, 눈 쌓인 풍경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시인에게 사인을 받으려 하지만 상희의 만류에 관둔다.
두 여자는 시인으로부터 고독하고 쓸쓸한 시 한 편을 듣게 된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운다.
- 이미지
그간 23편의 장편을 찍은 홍상수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젊은 여성에게 껄떡대는 감독, 교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남자.
철학적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럴듯한 이야기로 상대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사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이미지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변주되고 반복되며 하나의 정물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무언가의 개념에 정면을 오랫동안 비춰주다가 갑작스레 아랫면을 보여준다. 그 아랫면은 갑작스레 측면이 되기도 하고, 아랫면을 쌓고 있던 껍데기가 잠깐 비치기도 한다.
파편들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그는 조립하지 않고 비춰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 인물들의 언행으로 파편들을 나열한 듯하다.
시를 만드는 늙은 영환. 시를 만들듯 영화를 만드는 홍.
뻔하지만 요즘 대세 감독 병수. 덕분에 여러 여자 그냥 그냥 만나는 홍.
남의 말이나 퍼나르는 이혼남 정수. 정작 카메라 뒤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진 않는 홍.
감독과 헤어졌지만 여전히 그를 걱정하는 상희. 헤어진 여인이 자기를 걱정해 주길 바라는 잡념.
그런 상희를 위로하고 시인을 너무나 좋아하고 반가워하는 연주. 착하지만 나를 또 좋아해야 하는 상상.
각 인물들은 감독의 여러 이미지의 한 꼭짓점 들을 매달고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홍상수의 파편이 아닐까.
- 방향
혈기 왕성하던 김의성의 외침은 김상경의 찌질함으로 이어졌다. 이후 능글맞은 김승우는 고현정 몸을 슬쩍 넘어갔고, 유준상과 함께 껄껄댔다.
북촌에 터를 잡은 그는 우리 정유미를 통해 좀 더 생기가 생겨나는 듯했다.
지맞그틀 이후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 <풀잎들>까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이후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철저한 고독과 쓸쓸함의 세계를 비춰준다.
더 이상의 파편과 반복은 일어나지 않고, 인물들의 이미지로 대체되어 소복이 내리는 눈과 감독 뒤를 따라가는 고양이 같은 순간의 우연을 집중한다.
- 엔딩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그 안에 있는 모순적이고 비 도덕적인 것들을 꺼내놓고 조소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가끔은 궤변 같은 철학으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복과 파편을 통해 현대음악 같은 연출적 독특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꿈과 영화를 연결해 새로운 시공간으로 그의 생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힘을 많이 뺀 것 같다.
설렘 없는 이미지는 더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듯 죽어버린다.
그런 자신을 위로해 달라는 듯 두 아들은 아버지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여신 같다던 두 사람은 눈물로 그를 보낸다.
이토록 직접적이고 드러내는 슬픔과 연민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너무나 자기 연민에 빠진 엔딩에 찝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냥 욕할 수 없는 건 담담했던 첫 내레이션부터, 그저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설렘도 함께 죽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