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했습니다. 이제 사노비의 길로 접어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가볍네요. 물론 3개월 후의 제가 이 글을 보면 이불을 얼마나 걷어찰지 감이 잘 안오긴 합니다 크크.
어디에 취업했나 : 대기업 해운 계열사 (하반기 최종 전적 총 19전 2승 14패, 서류 11탈, 인적성 2탈, 최종면접 1탈, 3개는 진행 중.)
2017년 하반기가 제 첫 취준 시즌입니다.
(2017년 하반기 기준 스펙 = 스카이 사학과(3.33/4.5) / 인턴 3회 / 토익 960, 토스 150(lv.6) / 물류관리사, 유통관리사, 한국사 1급 / 해외 경험 없음)
지망 산업은 물류산업/물류직무였습니다.
하지만 물류 업계에서 2번 인턴을 해보고 종합물류기업에 가면 안되겠다 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들었던 이론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졌습니다. 무조건 자산이 빵빵한 회사에 가야 그나마 업무 외적으로 덜 치이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사와 제조업 물류 직무 중심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원 과정에서 신경 썼던 것은 내가 어느 기업에 가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납득이 되는 기업은 그 기업의 캠퍼스리크루팅 일정을 확인하고 인사 담당자에게 “제가 이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담당자님 생각은 어떠신가요?”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용 이력 요약 문서와 함께요. 이 히든 퀘스트를 완수해 인사 담당자를 설득할 수 있으면, 서류 전형 면제와 같은 보상이 주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사 담당자와 함께 온 연차 낮은 사원의 명함을 얻을 수 있는데, 채용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질문을 할 때 이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서류전형
제조업 물류관리 / 물류 서비스업 영업 및 운영직무 / 종합상사 해외영업 세 분야에 지원했습니다.
제가 쓴 19장의 자소서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모든 자소서가 지원 동기 / 회사이해 / 팀플레이 경험 / 성공사례 / 실패사례 / 직무전문성을 물어보니까요. 마지막엔 30분이면 써지더군요.. 쓰는건지 싸는건지..
만약 제가 취준을 또 하게 된다면, 산업에 맞춘 지원 동기 / 팀플레이 경험 / 성공사례 / 실패사례 등등을 300~500 자 정도로 쓴 다음 보기 좋게 항목별로 정리해서 복붙하기 편하게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듈을 통해 뽑아낸 반제품자소서를 한 30분정도 기업에 맞게 고쳐 쓰면 굳이 자소서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서류 전형에서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신 사업 제안형 문제입니다. (보통 500~1000자 정도로 물어보는 질문으로 Q.우리 회사에 제안할 신 사업을 자유롭게 서술하십시오.(1000자 내외)로 나오죠.) 속마음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있다면 제가 사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_^ 이렇게 쓰고 싶다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취준생은 구글신의 가호에 힘입어 열심히 신 사업을 제안해냅니다.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두려고 최대한 ‘xx회사 신사업’의 키워드를 안쓰려고 노력했습니다. ‘xx산업 신사업’ 같은 키워드로 기사도 안보려고 노력했구요. 그냥 전자공시 통해 회사의 사업 영역 확인하고, 그 중에 기업 포트폴리오에 안 포함된 영역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썼습니다. 주로 사업 내용 + Customer, Company, Competitor 분석 + SWOT 분석 하면 1000자가 끝나더라구요.
인적성
사실 인적성은 준비 할 수도 없고, 준비 한다고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중고서점 가서 해당 년도 문제 풀어보고 시간 배분 연습 하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SKCT 수리영역 9개밖에 못 풀어서 결과 나올 때까지 2주간 절망에 빠져 살았는데, 합격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온라인 인적성검사(인성검사) 하는 곳이 있는데, 터치패드 쓰지 말고 마우스 쓰세요. 두번 쓰세요. 손가락이 너무 아픕니다 터치패드는…
1차 면접
1차 면접은 총 5곳 보았습니다. 다행이 5곳 중 5곳 다 붙을 수 있었네요. 보통 1차 면접은 직무역량파악 / 비즈니스케이스(구조화면접) / 피티면접 / 토론면접 네 개 중 하나엔 걸립니다. 세 개 다 할 수도 있구요. 구조화면접, 토론면접은 준비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무역량면접과 피티면접만 준비했습니다.
직무역량면접은, 내가 왜 이 회사에서 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면접관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원 동기 / 직무 관련 역량 / 역량 발휘 과정의 성공&실패사례 / 교훈 및 이후 계획 / 산업의 동향 및 나의 대응 전략 이 다섯 가지 준비했습니다. 덧붙여서 회사의 비전&기업문화정책&인재상 보며 나와 어울리는 가치를 찾고 왜 맘에 드는지 제 언어로 정리했구요.
피티면접은 회사의 비즈니스 케이스 혹은 시사 이슈에 관련된 주제가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즈니스 케이스야 문제 풀면 되는 건데, 시사 이슈는 미리 준비해가지 않으면 낭패 보는 경우가 생길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약간 편하기도 했는데, 모든 이슈가 4차산업혁명으로 이어져서, 기-승-전-4차산업혁명 ICT 투자 갓갓맨 하면 되더라구요. 면접관 아재들이 가장 흥미있어하는 4차산업혁명…
면접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투마치토커가 되지 않는 것같습니다. 면접시간은 한정되어있는데, “제가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자면, 제가 98년 LA에 있었던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로 시작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를 닫게 되니까요. 그런데, 준비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투마치토커가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저는 무조건 3문장 이내로 말했습니다. 결론, 이유 두 문장으로 어지간하면 끝내려고 했구요. 가끔 당황하면 3문장까지 가더군요. 면접관들이 듣고 궁금하게 만드는 편이 귀에 억지로 꽂아 넣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과 티키타카를 하면 면접관도 재밌고, 저도 재밌으니까요. 설득의 최고봉은 호감을 심어주는 것일텐데, 삭막한 면접실안에서 재미를 주는 사람은 면접관에게 호감을 심어주기 쉬울 것입니다.
2차면접(혹은 3차면접)
최종면접에서는 80대 할아버지부터 40대 오너 4세까지 다양한 면접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임원진의 면접관들은 면접 시간 내내 핸드폰에 모가지를 박은 개똥 같은 매너를 가진 오너 2세부터 정말 젠틀하고 스윗한 CEO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습니다.(개똥아 미안해..)
1차 면접을 준비하고 다 치르고 난 후 든 결론은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싸가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인성은 겸손함, 성실함, 호감, 사려깊고 배려하는 성격, 혹은 패기, 강직함, 싹싹함 등의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들이 한데 섞인 그 무엇일테지요.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 쟤랑 같이 일해도 괜찮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 공채의 역량이야 거기서 거기고, 준비하는 것도 거기서 거기고, 서로 다른 면접실에서 봤던 사람 중 합격할 것 같은 사람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같이 일하려면 인성이 제일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논리가 빈약한데, 진짜 그랬어요…
2차면접때 뭐가 제일 중요하냐는 물음에 저는 모두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관심 가지는 면접관들은 인성이 뭐냐고 물었고, 관심 안 가지는 면접관들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 모두 공통적으로 인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더라구요. 항상 면접 마지막 한마디 시키면, “이 회사에서 제가 잘 일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되물어봤습니다. 면접 참가한 곳들 모두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조직으로 일하는 사기업에서 타인과 불화를 빚는 것만큼 리스크가 큰 것이 없는걸까요? 예전엔 어른들이 싸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럴 때 그저 나이든 사람들의 꼰대스러움이려니 했는데, 막상 제가 다른 사람과 일하려고 생각해보니 저 자신이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겠더라구요.
인상 깊었던 면접관의 답변들은, 그 회사의 가치와 인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준 것들입니다. 두 군데에서 이런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 듣는데 하나의 작품같더군요. 몇 십년 회사생활의 노하우가 몇 문장에 응축된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지금도 소름이 돋는군요.(이 글에 옮기고 싶으나 여러분의 손발이 오그라들까 하여 옮기지 않습니다)
채용 이후
다행히 2군데 최종합격하고, 그 중에 정말 가고 싶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종 합격 통지 받고 입사하겠다는 통보를 하기 전에 입사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질문 게시판에 글도 올렸지만, 객관적인 조건보다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핵심이라는 lenvie님의 조언이 맞더라구요.(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점검한 다음, 결정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네요. 조언 주신 많은 분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