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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2/09 16:07:18
Name Farce
Subject [일반] 군사혁명이 지구 한바퀴를 돌자, 일본은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다. (수정됨)
*edit 1: 처음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했다보니 단어가 이상해진 부분 다시 손으로 교정했습니다. 사족부분 논리 정리했습니다.
*edit 2: 위와 동일합니다. 단어를 조금 더 정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글로 찾아오고자 가입 이후부터 절치부심하던 파스라고 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공유하기 괜찮은 생각거리를 집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글을 하나 남겨봅니다.

최근 제 지식의 얉음을 한탄하며 이런저런 역사책들을 들쑤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방끈이 짧아서 인지 직접적인 사료 같은 것은 책장을 넘기면 어느새 고개를 박고 졸고있더군요. 그래서 강의형태의 입말체로 적힌 글들을 요즘에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 해, 역사가 바뀌다" 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이해입니다.

앞 서 언급한 책 "그 해, 역사가 바뀌다" 제 4장에서는 앞선 제 3장에서 자본주의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재화 생산에서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가 대타격을 입은 것이 빨라도 1820년이라는 '대분기'를 다루었습니다. 따라서 제 4장의 논리에서는 '상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등장이 유럽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설을 제시해봅니다. 당장 상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등장도 아메리카의 '무력정복'으로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문제는 '군사혁명'이 아닐까? 라고 확실치는 않지만 한가지 논리를 제시해본 것입니다. 책에서는 '제프리 파커'라는 역사가를 인용합니다만 제가 그 분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책 자체의 논리 이상으로는 제가 보탤 수 있는 내용은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아무튼 책에 따르자면, 최초의 군사혁명은 중국의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시작됩니다. '수십만 대군' 또는 가끔씩 '백만 대군'이 되는 중화대륙의 힘은 단순히 인구부양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 많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지휘기구, 지탱하는 보급기구, 그리고 정치적으로 무력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지배기구 등의 종합적인 발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물론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중국의 군사적 발전이 멈추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오히려 한나라 시대에 흉노족과의 전쟁을 포함하여 중화대륙은 오히려 '군사혁명' 지역으로서 세계 군사흐름에 최첨단이고 앞섰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두번째 군사혁명이 유럽에서 오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유럽은 가장 낙후된 대륙이었고 첫째 불씨가 옮겨붙지 않는다면 영원히 낙후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군사혁명이 일어났던 중국 지역에서 무언가 하나 넘어옵니다. 바로 '화약'입니다.

중국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여러가지 화약무기를 만들어내고, 현대에 와서는 남송도 몽골제국을 상대하는데 상당히 발전된 화약무기를 사용했음이 고증되고는 있지만, 유럽인들은 정말로 '혁명'적으로 화약을 발전시킵니다. 대표적으로 지상전의 기초 단위인 '보병'의 제식화기가 바뀔정도로 말이지요. 또한 뒤쳐졌던 '전술', '전략', '정치적 통제기구'. 역시 아시아를 따라잡다 못해 스스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여기서 어느 전쟁 시기에 이것이 가장 빛나나면 '30년 전쟁'입니다. '30년 전쟁'은 그야말로 유럽대륙의 군사혁명의 진수를 보여주는데요. 바로 '국제적이면서 (참전국들 간의 거리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재화를 가진 정치주체들의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이지 못하고' '종교권의 "적개심" 넘치는 무자비한 전쟁'입니다. 아시아에서도 어느정도 '송양지인'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행사화'에 의한 군사발전의 저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유럽과 싸우게 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제한된 재화로 반복된 전쟁을 하다보니 '적개심' 없는 '전쟁 행사' 또는 '전쟁 의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결코 그런 것을 알기에는 이슬람권, 구교권, 신교권 간의 '능력되면서도 결정적이지 못한' 전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유럽대륙 내부의 '전쟁재화의 동질성' 과 '용병-정치집단'은 무자비함에 '약탈의 군사적 활용'이라는 선택지를 만들어줬고요. 아무튼 유럽인들은 열씸히 총질을 하고 뒤이어 '유럽 제국'은 만들지 못하지만,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대륙 밖으로 나가 각자만의 제국을 하나씩 만들어" 내고요.

그렇게 유럽인들이 총을 들고 전세계를 들쑤시다가, 포르투갈인들이 일본 타네가시마에서 교역품인지 호신용품인지 미묘한 물건을 하나 흘리게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애석하게도. '여러가지 정치적 중심지를 가지고 무력으로 결정적이지 못한 전쟁'을 반복하던 집단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종교적 적개심'에 의한 전쟁을 하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들은 이 부분마저도 나중에 회수하게 됩니다. 책은 임진왜란 직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전투를 주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입니다. 일본 오다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연합군이 다케다 가문의 군대를 무찔러 일본 통일의 중심세력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전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양 측의 전투병력을 합쳐 약 5만명이고, 전사자는 합치면 만 명이 넘습니다. 이 숫자는 임진왜란 당시 상륙한 일본병력이 최소 16만명이라는 점으로 돌아옵니다. 임진왜란이 왕이 도망간 전쟁이네 뭐네 하지만 우리가 막아낸 일본군은 단순한 아시아 군대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잉글랜드 상륙시도에서 스페인 지상군이 3만명이었습니다. 물론 스페인도 상륙에 성공했다면 후속 병력을 보냈을 것이기에 좀 더 증가했을테지만 숫자의 급이 다릅니다.

최초의 군사혁명과 두번째 군사혁명이 일본에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유럽이 되지 못합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죠. 책은 노엘 페린의 "철포를 버린 일본인 (원제: Giving Up the Gun)"을 인용합니다. 무력은 언제나 문화나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주제로 넘어가면서 말이죠. 일본 사무라이들은 무지렁이 천민들이 자신들을 쉽게 죽일 철포를 놔두지 않습니다. 일본도야 말로 일본 문화의 정수라면서요. 이건 에도시대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매튜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개항을 시도했을때 일본은 '평범한 아시아 국가'인 상태였습니다. 책은 여기서 끝나지만 제가 주관적으로 뒷 이야기를 덧붙여 보겠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통합'의 중화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사쓰마'와 '조슈'로 대표되는 지방세력은 아직도 그들이 전국시대에 이루었던 군사혁명을 잊지 않고 있었지요.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군은 팔기제도를 개혁하지 못하고 팔기군을 놔둔 상태로 어떻게 보면 '민병'이나 '군벌' 등 '끼워맞추기 (Ad-hoc)'에 가까운 한인 관료들의 항용군을 유럽국가들과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끌고와서 참패합니다. 그런데 일본군은 청일전쟁 직전에 전통적인 '진대제'로 유지되던 편제를 서양식 '사단제'로 바꿉니다. 이걸 단순히 '일본이 서구화가 빨라서'라는 단어 하나로 퉁칠 수 있을까요? 한편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제 사족입니다만 여기서 국민개병제를 도입하게 되는데 에도 특유의 '서민병력 혐오'는 유럽에서 받아들인 군사혁명의 결과물들과 결합해서 살아남았고 인명경시의 군사학이 정치학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더 큰 죄악을 향해 착실히 걸어나가는 발판이 되지 않았을까요? 유럽 파시즘의 뿌리와는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었을까요? 나중에 글로 올려볼만한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자 군사혁명이 지구 한바퀴를 돌자, 일본은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논리의 선제조건에 따르자면 상업혁명이 대단한게 아니라 군사혁명이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입이 참 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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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yuhee
17/12/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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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거란과의 첫 전쟁에서 20만 군대였다는데 임진왜란에선 정규균이 5만도 안 됬다는게 의문입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17/12/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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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군대가 뻥이 섞여 뻥튀기된거다. 이 가능성은 없나요?
닉네임을바꾸다
17/12/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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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후삼국때도 후백제와 고려가 일리천 전투 당시에 거의 10만씩 동원했었고(이 당시 고려는 기병과 보병이 거의 1:1비율까지 됐으니...기병이 더 많았던가 그랬고)동북9성 개척당시에 별기군이 13만이였나했으니...불가능하지는 않을겁...
닉네임을바꾸다
17/12/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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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군대를 유지할만한 유인이 없었죠...
고타마 싯다르타
17/12/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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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에서 두만강방어라인 형성 이후 군양성 필요성이 없어진거죠?
닉네임을바꾸다
17/12/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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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맞다이할거 아니면 십만씩이나 유지할 이유가...그거 다 민생에 부담이 되는지라 작은정부였던 조선이 그렇게할 이유가...
왜구가 고려말에조차 4만정도 온게 최대치였는데...임진왜란때 16만이 드랍올거라고 당시의 누구도 예측할 수 있는게 아니죠...
태연이
17/12/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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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6진 같은 북방개척 등등 군양성이 아예 불필요한 건 아니었고 저 지역은 이후로도 여진족을 계속 상대해야했었습니다
다만 거란과의 전쟁을 비교하기엔 좀 그렇죠
여요전쟁은 고려 입장에서 말 그대로 국운을 건 전쟁이었으니깐요
(괜히 당시에 이거 이기고 큰소리 뻥뻥치고 다닌게 아닙..)
17/12/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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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은 백성들과 지방호족들 박박 긁은 수치일수도 있겠죠??
Lord of Cinder
17/12/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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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회에서 인구 대비 군인의 비율은 후대로 갈수록 점점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전한 시기와 같이 단순한 징집병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2%도 군인으로 돌릴 수 있었으나, 명나라 시대에 들어오면 0.5~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대를 유지한다는 게 국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지라... 극단적인 경우로는 11세기 초의 북송이나 비잔티움 제국은 국가 예산의 70~80%를 군사비에만 때려부을 정도였는데, 냉병기 시절에는 결국 직업군인에게 줘야 하는 월급이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평화롭다는 것만 확실하면 군인의 수를 줄이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될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를 1300만 정도로 가정하고 여기서 0.5%만 군인으로 돌릴 만하다고 치되, 대규모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명나라가 쳐들어 올 일은 없고, 여진족도 꾸준히 눌러두었거나 분쟁이 있어도 규모가 작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상황에, 일본으로부터의 대규모 침공을 예상하긴 어려웠을테니) 조선이 5만의 군대만 가진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됍늅이
17/12/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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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상태인 대한민국에서조차
대통령이 병력을 150만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닉네임을바꾸다
17/12/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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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 유지할려면 일단 근무기간이 5년이상은 잡아야겠군요...이거만으로 그 정권은 터질겁니다....
BERSERK_KHAN
17/12/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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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주전선은 함경도 일대였으니까요. 여진부락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규모와 군대로 발전한거였죠. 이 정도 수준으로도 당대의 지역강국이었던게 조선이었죠. 현 상황으로도 충분히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를 누렸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세수도 적게 거두던 나라였으니 불필요한 군사력은 최소한으로 유지했다고 봐야합니다. 그럼에도 함경도 일대 여진족이 융성하지 못하도록 계속 견제하고 노력했죠.
블랙번 록
17/12/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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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따져도 2차대전 즈음에 대부분 선진국군대는 백만을 넘겼지만 지금은 거의 그러지 않는 거랑 같죠. 무기값도 오르고 평화의 시대니까요
17/12/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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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쟁사를 보면 순간병력은 조금 의미가 떨어지는 수치 같긴 해요. 독소전쟁만 봐도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새로운 사단에 사기(?) 치는 편제에. (독일 보병사단 기준으로 분명 바로바로사 시작 때는 3연대 X 3대대 편제 였는데, 종전직전에는 2연대 X 2대대이면서도 실제 전투기록에서는 반도 못 채우고 싸웠네 어쨌네 하는거보면 참.) 이런걸 보면 평상시 정규군의 적당한 양을 조절하는 평시 국방부 (또는 그것에 해당하는 관련 국가부서)의 역할도 여간 중요한게 아닌것 같아요. 국가 정책도 그렇고. 사실 조선군도 임진왜란때 막 불릴 때는 15만 정도 됬던 걸로 기억이 살짝 납니다. 난리통에 불러주는 그대로 적은거지만요.
혼자라도짊어서
17/12/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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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군사혁명과 두 번째 군사혁명이 만났다는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보통 혁명과 같이 세대가 갈리는 부분은 뒤에 일어난 혁명으로써 앞의 일어난 혁명의 의미가 사라지곤 하지 않나 싶어서요. 즉 제 생각엔 글 내용대로라도 두 혁명이 만났다기보단 두 번째 군사혁명이 일본에서 소화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요.
17/12/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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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군사혁명은 중화대륙의 높은 인구수를 높은 병사의 숫자로 전환하는 혁명이었다. 그리고 2차 군사혁명은 화약무기에 따른 발전 ("그 해, ..." 에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지금 답글을 달면서 생각해보니 "대포, 범선, 제국" 이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다루었던 해상 화약 무기 즉 대포범선도 지상의 혁명 못지 않게 '혁명적'이었겠군요.)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그 2차 군사혁명의 병기들을 중화가 최초로 만들어냈던 수십만 대군의 형태로 결합해서 굉장한 군대가 되었다. 라는 식의 서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글이다보니 아무래도 미흡한 부분도 많은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혼자라도짊어서
17/12/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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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제가 부주의하게 읽었네요. 흥미로운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7/12/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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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17/12/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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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이런 '체계' 관련한 책으로 다시 찾아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웃라이어"나 "나와 세계" 같은 책에서 사회제도의 전통을 참 강조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서구학자들은 수십년 전만 해도, 가나, 필리핀, 한국이라는 3대 후진국 중에 누가 먼저 발전할지는 행운의 주사위 굴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맥아더의 쓰레기통 장미 발언도 생각나네요 흐흐.) 결국은 4대 문명 발상지 바로 옆에 있던 한국은 후진적이고 싶어도 그 동안 안정적인 국가운영을 했던 사회전통이 다시 비슷한 사회자본을 만들어 정상국가가 되었다. 물론 날아오른 부분은 아직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요.
한쓰우와와
17/12/0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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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이 유럽에서 난리를 일으키고, 그게 일본까지 굴러 들어갔다... 라는 내용이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7/12/1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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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에서는 한편, 상업혁명이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에서 말라죽고 네덜란드에 수렴해서 결국 영국이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결국 영국에서 흐흐. 사실 이 책에서 상업혁명의 중요성을 낮추는 부분에는 유럽 자체의 발전에 대한 폄하보다는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맹아론'이니 하는 그 시대 전반적으로 세계문명 전부가 상업발전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갖추기 시작해서 그래도 유럽은 못이겨! 라고 하는 더 서글픈 논리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걸 보면 "발명이든 발견이든 타국가가 하게 놔두어라" 라는 주제를 가졌던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라는 책도 참 기발한 책이었습니다.

아 정말 모든 게 지나가기 전에, 세계사가 움직일 때 그걸 분석해서 말하는 게 이렇게 쉬우면 정말 좋겠네요.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강해져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BERSERK_KHAN
17/12/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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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유럽은 병농분리 사회였고, 일본은 병농일치 사회였습니다. 유럽에서 전쟁은 전문 전투기술을 가진 기사와 용병들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세시대의 왕과 영주의 관계는 토지 분배를 통한 무력 제공으로 이뤄진 계약 관계였습니다. 이를 현대로 바꿔서 과장을 좀 보태면, 네이비 씰이나 델타포스 수준의 전투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급료를 받고 전투를 치르는 게 중세 유럽의 전쟁이었죠. 유럽이 동원하는 수 만 단위의 병력은 동양의 기준으로 봤을 때 매우 적어보일지언정 그 질적인 수준은 현격히 달랐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패퇴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결국 그들 사회가 봉건적 한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겐페이 내전 이후 최초로 성립한 무가 정권.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시작되는 막부 정권은 상징적인 통치자인 천황, 실질적 통치자인 정이대장군이라는 이원화된 일본식의 통치 체제였습니다. 개인적인 능력이 출중하다면 언제든 기존 막부를 전복시키고 자신이 쇼군이 될 수 있는 게 중세 일본이었고, 이는 일본의 지방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슈고 다이묘들이 무능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면 배신을 일으켜 주군을 전복하고 다이묘가 될 수 있던 시대가 전국시대였죠. 오다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 또한 오와리(현 나고야)의 기존 주군 가문을 배신하고 가문을 일으켰고, 노부나가의 가문은 그 중에서도 방계였습니다. 그 노부나가 또한 부하 장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반으로 목숨을 잃었고요.

이런 오다 가의 내홍을 모두 정리하고 일본을 제패한 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임진왜란은 순전 히데요시의 망상으로 발생한 전쟁으로 16만이라는 규모는 일본 전역의 역량을 한계까지 끌어모은 수치였습니다. 지금의 관동 지역인 오다와라 정벌 당시 20만의 병력을 지휘하는 등 대군의 동원력과 지휘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바다 건너 적국을 침공한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습니다. 큐슈와 주코쿠 등 일본 서부의 히데요시 직속 다이묘의 병력은 대부분 차출되었고, 동북과 간토 일대의 변방에서도 병력 동원을 종용받았습니다. 압도적인 히데요시의 무력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섬나라라는 특성은 유럽의 영주들처럼 현 국왕과 타국 사이에 정치적 조율이 가능한 것과는 달랐고 이런 정치적 차이가 동원 규모에서도 일본이 당대 유럽과 격차가 나는 원인이 된 것이죠. 임진왜란 당시 침공한 16만의 일본군이 풍부한 전투 경험과 조선보다 앞선 총기 운용과 전술 활용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결국 조선을 이기지 못한 점. 이것은 침략군이라는 공격자의 불리함과 봉건제라는 일본 사회의 한계 때문입니다. 중앙집권화와 관료제로 운영되는 조선은 국왕이 의주로 파천하는 위기 속에서도 행정력을 발휘해 약 14만의 병력을 동원하며 일본군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평화를 누린 까닭에 얻은 안일함으로 전쟁 초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효율적인 대처를 보여주며 일본군을 몰아냈죠.16세기 일본군이 강한 전투력을 지녔지만 탈아시아급 군대로 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결전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세우고 초대 쇼군으로 취임하죠. 각지의 다이묘를 에도에 머물게 하는 참근교대제와 함께 겐나엔부 선언을 통해 병력과 총포를 국가에서 관리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간양록의 저자인 강항과 교류했던 후지와라 세이카의 제자인 하야시 라잔을 초빙해 막부의 이념을 성리학으로 삼아 일본은 중앙집권화를 완료하게 됩니다. 이는 250년 에도 막부의 평화에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무력을 관리하게 되면서 사무라이는 '칼 든 공무원화'되었습니다. 지금의 일본도로 대변되는 사무라이 이미지가 에도 시대부터 고정된 것은 일본인들이 칼을 문화의 정수로 숭상해서가 아닌 중앙 정부의 체제 정비에서 이뤄진 부산물인 것이죠. 군사 전통이 답보했음에도 전반적인 사회 체제를 진일보시켰다는 점에서 퇴행이라곤 볼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군의 내실을 쌓을 수 있었던 점은 역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당시 시대적 상황이 너무 일본에게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쿠로후네 사건으로 일본을 강제 개항한 미국은 곧이어 남북전쟁으로 돌입했고, 유럽 열강은 중국의 개항에 열을 올리며 일본에 비교적 관심을 보이지 않은 점 등 일본이 내실을 다질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습니다. 프로이센의 군사 교리를 받아들여 육군 교리를 확립하고 천황의 군대라 하여 천황이 만세일계의 존재가 되는 군의 정신적 기강이 된 부분 또한 일본군이 아시아 침략에 영향을 발휘한 이유라고 봅니다. 이렇게 일본군이 비대화하며 정치적 견제를 상실하게 되면서 일본군은 군대가 국가를 다스리는 군국주의 국가로 변질되었고 결국 일본의 패망을 불러왔다는 부분은 저도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하네요.

사족으로 화약이 유럽의 군사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 시초를 저는 스페인 테르시오 전술의 개발로부터 보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중심지인 프랑스, 영국, 신성로마제국 등 유럽 중심부와는 변방에 놓여진 스페인은 동떨어진 지리적 특성에 부합하는 군사 전술이 발달되었습니다. 약 9세기부터 치러진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으로 후우마이야 왕조의 수도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1492년까지 스페인은 영토 내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거듭해왔습니다. 백년전쟁처럼 소강기와 전란기가 반복되는 양상이었지만, 이런 항시적 긴장상태와 전쟁의 반복은 스페인 군사력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죠.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운 기후와 산악지형, 경장갑 이슬람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스페인은 경무장 경기병대와 보병 중심의 전술이 특화되었습니다. 중장갑 기마대를 운용하던 유럽 중심 국가들과는 달랐죠. 스페인 귀족들도 보병으로 복무하는 걸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당연시 하였고요. 잦은 전쟁을 치르던 나라였으니 군대의 전투 능력 또한 여타 유럽 국가에 밀리지 않는 수준을 보여줬죠. 1492년은 스페인의 통일과 더불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은 국가적 역량을 통합하고 유럽에 군사적 역량을 투사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잦은 대외 전쟁에서 총병과 창병 방진을 결합한 최초의 총병 전술인 테르시오가 개발되었고요. 30년 전쟁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약 한 세기 가량 유럽에서 무적으로 군림했죠.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 계속되는 전쟁이 군사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겠지만요.
17/12/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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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상당히 오랫동안 유럽=봉건제=일본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세계사를 보고 있었는데 그걸 한번에 깨주시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걸로 수많은 저의 오류들이 고쳐질 것 입니다. 제가 아무래도 책에서 '두 군사혁명을 이어받은 것이 일본' 이라는 논리를 도출해내다보니 조금 과장스럽게 '탈아시아적'으로 서술한 오류도 실수였습니다. 다만 군사혁명이 지속되지 못하고 평화의 아시아라는 틀로 다시 일본이 회귀했다는 점에는 제가 퇴행이라고 적을 수는 있었을 것 같긴합니다. 물론 침소붕대라고 보시면 아닌게 아니라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서 길게 다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니덤 문제라고 하던가요?)를 어렸을 때부터 참 궁금해왔던지라 요즘에는 그것의 연장선인 왜 하필 일본은 근대화 되었는가를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많은 정리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파시즘의 탄생은 저도 이걸 역사에서 찾아야할지, 심리학 같은 과학에서 찾아야하는지 고민 중입니다. 공부 많이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스페인은 "그 해, ..."에서 처음부터 다루어집니다. 레콩키스타에 이은 신대륙 발전이 이 책의 프롤로그에 해당합니다. 생각해보니 막상 본문에서는 스페인이 크게 등장 안 합니다. 그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테르시오가 저는 단순히 레콩키스타에 등장한 히에메 (이슬람식 투창기병) 같이 이슬람 전투문화의 답습 및 발전, 그리고 유럽에서의 강대국으로서 반복된 참전에서 등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엘 시드처럼 스페인 귀족들은 보병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군요? 그러고보니 에도시대의 칼사냥은 중세의 기사도와 테마가 비슷하니 크레시 전투나 아쟁쿠르 전투처럼 사실 중기병은 중세의 최종병기이자 근대의 최후발전장벽적폐가 아니었을까 연상되기 시작합니다. 아 이 스페인이 산업혁명 이후에는 내수 없음으로 한순간에 몰락하다니!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ERSERK_KHAN
17/12/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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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기독교 질서와 성리학 질서의 차이, 중앙집권된 주변부와 봉건제를 고수하는 주변부의 차이, 병농일치와 분리의 차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과 세부적인 차이점들이 일견 비슷해 보이는 봉건제에서 어떻게 다른 군사적 전통을 도출했는가를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확립된 일본의 군사력이란 것 또한 일시적인 우위에 불과했으며 극복 불가능한 차이가 아니었음도요. 전성기 몽골군처럼 만나는 적은 가릴 것 없이 싸워 이겨낼 정도라면 일본의 군사적 발전상을 논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전 초기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몰아붙였던 일본군이 명군의 합류와 조선군의 반격에 직면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 남해안 해안가에 왜성을 쌓고 틀어박혀 본국으로부터의 철군 명령만을 기다리던 신세가 되었으니까요. 그러한 차이에서 일본이 유럽으로부터 받아들인 군사 혁명의 영향과는 별개로 주변을 월등히 능가하는 수혜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이런 부분을 부족한 제 의견이지만 한번 얘기해 보았습니다.

일본의 근대화와 파시즘까지 이어지는 부분은 여러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치학, 외교학, 철학 등 인문학의 여러 갈래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하여 자신만의 의견을 도출하는게 좋아보입니다. 저렇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분야는 정답이란 것이 없다고 봅니다. 엄청나게 깊게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역사의 한 갈래인 전쟁사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도 세부적으로 알지 못하는 분야입니다. 스스로 배움을 추구하신다면 꺠달음을 얻으시리라 봅니다. 좋은 글을 통해 생각할 여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리아나스
17/12/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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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세계사 한 부분의 지식이 확충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처음과마지막
17/12/09 23: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역사를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적인 군사력없이는 나라의 주권은 언제든지 타국에게 침략당할수있죠 지금 이시간에도 힘없는 국가나 분쟁지역 전쟁난민들이 지구상에 많죠
2차대전에서 독일과 일본등이 승리했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일본말과 일본글을 사용하는 일본인혹은 식민지 백성들이 되었겠죠
우리는 역사를 보고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죠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한심한게 침략당한 역사를 금방잊고 다시 당하고 또 당하고 다시 당하죠
호위호식하던 위정자 높은분들이 나라 망치면 그피해는 대다수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죠
17/12/10 14:44
수정 아이콘
역시 피를 보지 않은 군대는 약해지고, 피를 보는 군대는 결국 강해진다. 옳으신 분석입니다. 하지만 결국 정치집단이 위기를 맞는 것도 계속된 전쟁인 경우도 많으니, 체급이 되는 능력되는 전쟁을 하는 것도 참 국가의 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래서 지금도 미군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주방위군인가 봅니다.
Vincelot
17/12/11 09:14
수정 아이콘
글과 댓글들 모두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17/12/11 18:5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여기서 저도 많이 배운만큼 저도 기회가 되면 공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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