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보았듯, 팽성의 패배 이후 유방은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모든 것이 풍비박산 난 상태였기에, 이때를 노려 항우가 전력을 다해 쳤다면 유방은 잠시도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 당시 항우의 주력군은 여전히 북방 제나라에 있던 처지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3만 정예병만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와 팽성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군을 동원해 서쪽으로 가려면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물며 본거지인 팽성은 한번 적에게 장악 당했던 상황이니 만큼, 항우에게도 나름대로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물론 항우의 '전군' 은 아닐지라도, 기세를 타고 계속 추격-서진해오는 일부 병력만으로도 주력군이 궤멸 당한 당시의 유방에게는 위협적이긴 했습니다. 때문에 한번 역공을 취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팽성에서 패배한 후 유방은 팽성에서 패로, 패에서 하읍으로, 하읍에서 양으로, 양에서 우현으로 계속 서쪽 이동하며 조금씩 조금씩 패잔병을 수습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끓고 있던 반란군을 조참과 관영 등의 장수들이 어찌어찌 진압해 나가는 한편, 유방 본인도 패잔병을 수습했고 이 난리통에 한신 역시 흩어진 병력을 일부 모아 재합류 했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제장들이 서로 병력을 모아 합류한 장소가 바로 형양(滎陽) 이었습니다.
이렇게 형양에 다들 합류하고 보니 서로 서로 조금씩 모아온 병사들의 숫자가 상당했고, 또한 팽성의 참패 소식을 듣고 관중에 있던 소하가 어린이와 노약자까지 끌어모아 보낸 병력까지 합쳐져 이 시점에 이르러 한나라는 다시 한번 '군대'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때가 BC 205년 5월, 팽성에서 대패한지 1개월 정도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초나라군의 추격군이 한군 주력을 형양 남쪽의 경(京) 땅과 색(索) 땅에서 다시금 따라잡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추격군이라서인지, 당시의 초나라군은 기병대가 많았기 때문에 이에 응전하는 유방 역시 기병대를 맡을 장수를 추렸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필(李畢)과 낙갑(洛甲)이라는 인물들이 기병에 대해선 잘 안다고 추천했지만, 본래가 진나라군 출신이었던 이 두 사람은 "우리가 대장이 되면 군대에서는 우리를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대왕의 측근 중에 한 사람을 뽑아 우리 두 명으로 하여금 그 자를 보좌하도록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전했고, 이에 유방이 고른 인물이 바로 관영 입니다.
한나라의 기병 대장, 관영
이렇게 되어 관영을 대장으로, 이필과 낙갑을 좌우 교위로 삼는 한군의 기병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원래 기병대 자체가 어느정도 훈련이 필요한 집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농민군 부대였던 유방의 군대에는 그전까지 제대로 된 기병 전력이란 변변 찮았을 겁니다. 기병대 대장으로 추천 받은 이필과 낙갑이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진나라군 출신의 경력을 지녔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새롭게 창설된 기병대는 총사령관 한신의 지휘 아래(사기 회음후 열전 中 '한신이 다시 병사를 모아 한왕과 형양(滎陽)에서 합류해, 초의 군대를 경(京)과 색(索) 사이에서 격파했다.') 전투에 나섰고, 여기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형양의 동쪽에서 초의 기병을 공격하여 '대파' 하였는데, 초의 군사는 이러한 연고로 형양을 지나서 서쪽으로 올 수 없었다." - 자치통감
크게 인지도가 있는 전투는 아니지만, 사서에서 '크게 이겼다' 는 표현까지 쓰고 있고, '초나라군이 형양 서쪽으로 가지 못 했던 것은 이 때문' 이라고 까지 표현한 것을 보면 이 '경색 전투(京索之戰)' 는 결코 의미가 작은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리멸렬하게 후퇴만 계속하던 한군이 초나라군에게 다시금 한방 먹여준 반격의 순간이었으니 말입니다.
경색 전투에서 한숨을 돌린 유방은 더 이상 뒷걸음칠 하는 일은 멈추고, 형양와 그 후방의 성고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수비라인을 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형양 북쪽에 있는 오창(敖倉)의 양식을 확보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오창은 예전부터 쓰여졌던 교역로이자 양식을 저장하는 창고 였습니다. 지도에서 보이듯이 북쪽으로 황하가 흐르고, 동북쪽으로는 황하의 지류인 변수(汴水)가 내지로 흘러(지금은 강줄기가 이때와 다릅니다) 형양의 앞까지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양식을 보관하기에는 안성 맞춤의 장소였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몇백년 뒤에 조조가 동탁군을 공격하려다 서영에게 참패한 곳이 바로 이 형양 근처 변수 지역 입니다.
한왕은 형양 남쪽에 주둔하면서 황하로 통하는 용도(甬道)를 쌓아 오창(敖倉)의 양식을 거져왔다. - 고조본기
유방은 직접 형양 남쪽 부근에 주둔하고는, 황하로 통하는 용도(甬道)를 쌓아 오창의 곡식을 취하려 했습니다. 기록만 보면 용도라는게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놓여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유방이 형양 남쪽에 주둔했다漢王軍滎陽南' 는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금하곤 강줄기가 좀 달라서) 형양 남쪽 바로 앞까지 오는, 지도에 보이는 저 위치를 통해 오창의 양식을 보급 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저 북쪽 오창까지 쭉 용도를 길게 늘어놓아 초나라군의 표적이 되는 행위보다는 더 안전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용도라는 것이 뭘까요? 말 그대로 보면 양쪽을 담장으로 막아놓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길게 늘어져 있는 참호와 좀 다르면서도 비슷한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호가 땅을 깊게 판다면 이 경우는 담장을 세운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에 의지해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은 같습니다. 훗날에 이외 비슷한 방식으로 황하의 양식을 용도로 통해 보급한 사람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아까 전에 언급한 '조조' 입니다. 조조가 마초를 비롯한 서북의 군벌을 상대로 싸우려고 할때 용도를 이용해 보급한 적이 있습니다.
졸지에 참호전 비스무리한 것을 치르게 된 한나라군 병사들.
이 부분에 대한 응소(應劭)의 주석을 보면 "적이 치중을 노략질하는 것을 두려워해 이 때문에 담장을 쌓아 마치 길거리처럼 만들었다." 는 설명이 있습니다. 강에서부터 형양성까지 길게 바리케이트가 쭉 늘어져 있고, 이것을 담장으로 높게 막아두기까지 했으니 실제로 보았으면 꽤 장관이었을 듯 합니다.
(이런식으로) 항우의 공격을 1년 넘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항우가 빈번히 한군의 용도를 공격하여 식량을 약탈해 감으로 해서 한군의 진영에는 군량이 부족하게 되었다. - 사기 고조본기
용도를 만들어서 보호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방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초나라군의 공격이 온다고 하면 완벽하게 막아낼 순 없었습니다. 초나라군은 심심찮게 이 용도를 습격해 운반중인 군량을 약탈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군의 입장에선 공포에 가까웠을 겁니다. 용도의 담장에 몸을 숙여 조심스레 적군이 오는지 안 오는지를 보다가, 적이 오지 않는듯 해서 조용조용 군량을 운반하는데, 갑자기 어느샌가 "초군이 쳐들어왔다!" 는 소리와 함께 담장 한 쪽이 날아가면 난장판이 펼쳐지고, 적이 군량을 약탈해서 물러나면 또 얼기설기 이를 보수하는 나날들....
이 용도를 이용해 한군은 최대한 강대한 적군 앞에 몸을 내미는 행위는 자제하며 버틸 수 있었지만, 워낙에 조심스런 보급 방식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군량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이르러 한계에 접어들게 되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버티는 것이 급선무 였습니다.
어쨌든 이런식으로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항우의 본대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위의 기록에서는 '항우가 한군의 용도를 공격했다' 고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초나라군을 가리키는 대명사로서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자치통감에서는 '초가 자주 한의 용도를 침략했다' 고 표현했습니다). 아무리 제나라에서 본대를 뺴놓고, 후방을 수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들, 항우가 이렇게까지 느리게 움직였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경포(黥布)
한군이 팽성에서 대패를 하고 유방을 비롯한 제장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던 바로 그 무렵, 아직 군대를 수습해 정신을 차리기도 전인 서쪽으로 도망을 치던 시기에 유방은 급히 장량을 붙잡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내가 만일 관(함곡관)의 동쪽을 덜어내서 준다면 이걸 버리는 것과 마찬가자인데, (그걸 감안해서라도) 같이 공을 세울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생각 하는가?"
함곡관 서쪽은 유방이 장악하고 있는 관중 지역이고, 함곡관 동쪽은 유방이 동진하면서 얻은, 그리고 자기가 얻으려고 생각하는 천하의 각 지역 입니다. 대패를 당한 그 직후, 유방은 그것을 미련없이 버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미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 봤던 겁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분명 올바른 판단 입니다. 팽성에서 대패해 유방의 위엄이 땅에 떨어지고 제후들이 편을 바꾸고 있는 이 무렵이니, 자신이 유지할 수도 없는, 그리고 아직 차지하지도 못한 땅에 미련을 보이는 것보단 과감하게 "날 도와서 천하를 평정하면 땅 나눠주겠음!" 이라고 하는 편이 인재를 끌어모으기엔 훨씬 좋은 선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냉정한 판단을,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하고 가족까지 던져 버리면서 달아나던, 그리고 아직도 달아나는 중이던 사람이 직감적으로 떠올려 재빨리 시행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56만을 일컫던 병력이 공중분해되고, 자신의 아내와 아버지까지 모두 적에게 사로잡힌 상황 아닙니까. 왠만한 사람이면 절망에 빠져 정신을 수습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유방의 다급한 질문에 장량은 세 명의 인물을 언급했습니다.
"구강왕 경포는 초나라 출신의 사나운 장수로, 지금 항우와 틈이 생긴 참입니다. 팽월은 양나라 지역에서 항우에 대항한 반란 중이니, 이 두 사람은 급히 부릴 수 있습니다. 한왕의 장수 가운데서는 오직 한신만이 큰 일을 맡겨 한 방향의 전선을 담당할 만 합니다. 왕께서 땅을 덜어내려 한다면, 이 세 사람에게 주시면 초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장량이 언급한 세 명 중 한신은 유방의 휘하에 있고, 팽월은 제나라와 연계하여 항우에 대항한 반란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명은 분명한 항우의 적대자이니, 시기만 맞아떨어지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포입니다. 경포는 항우의 사람이 아닙니까.
초나라 군대는 항상 승리해 그 공이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제후들의 군대가 모두 초에 복속하게 된 것은 영포가 여러 차례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군을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 사기 경포 열전
경포는 반 진나라 전쟁에서 항우가 대활약 하던 당시, 그 밑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던 인물입니다. 흔히 항우의 부하로 종리말, 용저 등이 자주 언급되지만 경포는 분명하게 그들보다 한 단계 높은 급에 있었습니다. 애당초 그는 항우의 부하로 경력을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별도로 봉기했다가 그쪽에 귀순한 셈이라서, 항우로서도 막 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당대에 장군으로서 받던 평가도 대단히 높아, 사기에서 경포를 다룬 기록을 보면 '경포의 용병이 뛰어나 백성들이 두려워한다(布善用兵, 民素畏之)', '천하의 명장으로서, 전투에 뛰어나다(黥布, 天下猛将也, 善用兵)', '제후들 가운데 공은 으뜸(功冠諸侯)' 라는 언급들이 보입니다. 또한 경포가 밑에 언급할 불손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 항우가 "경포의 재주가 뛰어나다고 생각해 친히 쓰고자 해서" 경포를 치지 않았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사마천은 경포에 대해 "공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항우가 구덩이에 묻은 사람이 천만명은 될텐데 경포는 언제나 그 포악한 일의 우두머리였다." 라고 평을 남겼습니다. 항우가 했던 희대의 악행, 즉 신안대학살에서 20만을 생매장 했던 일이나 초나라의 의제를 죽인 일 역시 경포가 행동대장으로 했던 일입니다. 당대에 경포라는 인물의 캐릭터는 "무지하게 쎄고 무지하게 나쁜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무섭고 막나가는 놈" 이라는 식의 완전 Badass 캐릭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경포는 앞서 말했듯 항우의 부하로 최고의 공을 세웠고, 그 공을 인정받는 동시에 원래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우의 제후왕 분봉에서 구강왕(九江王)에 임명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강왕이 된 경포는 이때부터 항우를 상대로 삐딱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항우의 천하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제나라를 항우가 직접 치러갈때, 경포는 겨우 '4천명' 을 보내 형식적인 지원을 하는데 그칩니다. 그것도 자기가 직접 가는게 아니라 휘하의 장수를 보내는데 그쳤습니다.
또한 항우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제후 연합군이 팽성에 진입할 때 역시, 구강왕 경포의 영지는 이와 지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핑계대기로는 병이 나서 그렇다고 하긴 했습니다. 물론 항우가 그 말을 믿을리는 없었고, 다시 팽성을 회복한 후 여러차례 경포에게 사람을 보내 이를 질책하고 군사를 동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경포는 "항우가 저렇게까지 화가 났는데, 내가 함부로 그쪽에 가면 위험할 수 있다." 며 더욱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만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아예 군사를 동원해 미적거리는 경포를 토벌하고 싶은 항우였지만, 대승을 거둔 항우로서도 상황이 아주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단 북방의 제나라는 여전히 항우를 상대로 저항하는데, 유방 때문에 이 전쟁을 끝내지도 못하고 내려온 참입니다. 또한 이후 '정형 전투' 에서 호활 20만 대군을 동원할 정도로 강성했던 조나라는 팽성 전투 이후 편을 바꿔 유방을 배신하기는 했지만,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이었습니다. 서쪽에는 유방의 한나라가 아직 건재했습니다.
적을 더 만들기도 싫고, 앞서 말했듯 경포의 재능이 뛰어나 이를 이용하고 싶었던 항우는 경포를 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틈은 확실하게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한동안 항우의 곁에 있었던 장량은 이런 상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방에게 경포를 추천했던 것입니다.
18제후왕 분봉 당시 경포의 영지였던 구강의 위치. 문자 그대로 초나라의 코앞입니다.
장량의 언질도 있고, 천하에 싸움 잘하기로 명성 높은 경포의 이름에도 꽂힌 유방은 그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가, 아직 서쪽으로 도주가 멈추지 않았을 무렵, 우 땅을 지나던 중 신하들 앞에서 별안간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너희 같은 녀석들하고 어찌 천하의 일을 도모하겠느냐!"
신야에 있던 유비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대놓고 부하들 앞에서 '간손미들 따위와 천하를 도모할 순 없다!' 며 소리치는 상황이나 진배 없는 상황이라, 어안이 벙벙해진 부하들 중 수하(隨何)라는 인물이 나서서 유방의 의중을 물었습니다.
"왕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저희가 잘 모르겠나이다."
"누가 나를 위하여 구강왕을 부려, 그로 하여금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배반하게 할 수 있겠느냐? 단 몇달이라도 그가 항우를 잡아놓을 수 있다면, 내가 온 천하를 다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극 당한 수하는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고, 20명의 사람들과 함께 구강왕 경포를 만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포를 만나러 와 보니, 경포는 4일 동안이나 수하 일행을 만나주지 않고 기다리게 했습니다. 이에 수하는 경포의 부하를 찾아갔습니다.
"지금 구강왕이 저를 만나주지 않는 것은 한이 약하고 초가 강성하다고 생각해서 아닙니까? 일단 제가 왕을 만나서 드리는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면 대왕께서 듣고 싶어 하신 그대로일테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저를 비롯한 20명을 도끼로 죽여서 왕이 한을 따르지 않고 초에 충성한다는 것을 보이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경포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수하를 만나주었습니다. 이때 수하가 경포를 만나서 한 말은, 사마천의 사기 전체를 통틀어보아도 손에 꼽을만한 명문이라고 할법 합니다. 수하는 먼저 이렇게 운을 띠었습니다.
수하 : "한왕께서 신으로 하여금 대왕을 만나 서찰을 올리게 한 까닭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대관절 왜 대왕이 초나라와 친하게 구는지 심히 괴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왕과 초나라의 사이가 어떠합니까?"
경포 : "과인은 북쪽을 향하여 항왕(항우)을 신하로 섬기고 있지."
수하 : "그렇습니까? 대왕과 항왕은 똑같은 제후의 반열입니다. 그런데 북향하여 신하로 섬긴다고 하는 것은 초가 강해서 나라를 의탁하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항왕이 제나라를 칠적에 몸소 성을 쌓기 위한 판자나 공이를 들고 사졸들보다 앞장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대왕께서도 구강의 무리를 모아 몸소 이들을 거느리고 초나라를 위하여 선봉에 섰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겨우 4천여명을 보내 초나라를 도왔으니, 무릇 북면하여 신하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이가 진실로 이와 같겠습니까?"
경포 : "...."
수하 : "한왕은 팽성에 들어갔을적에, 항왕은 제나라에서 미처 나오지 못했습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구강의 군사를 모아 강을 건너 밤낮으로 팽성 아래에서 전투를 치뤄야 마땅했을 텐데, 대왕께서는 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으면서도 한 사람도 회하를 건넌 이가 없이 수수방관하면서 누가 이길까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무릇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의탁한 사람이라면, 정말로 이와 같겠습니까?"
경포 : "...."
수하 : "대왕께서는 단지 헛된 명분으로 초를 섬기면서 두텁게 자신을 맡기고자 하십니다만, 저는 대왕께서 이를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왕께서 초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한이 약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 아니십니까? 그러나 초의 군대가 비록 강하다고 하지만 온 천하가 불의의 오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이는 초왕이 맹약을 저버리고 의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수하 : "반면 한왕은 제후들을 거두어 돌아와서는 성고와 형양을 지키고 있으며, 촉과 한의 식량을 날라 오고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굳게 하며, 군사를 나누어 변경을 지키고 요새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초나라가 이를 치려고 한다면 800~900리(실제 팽성에서 형양까지의 거리는 370km 가량)를 깊이 들어와야 하며, 노약자들에게 군량을 천리 밖으로 운반하게 해야만 합니다. 한이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군사는 나아가도 공격할 수 없고, 물러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수하 : "정말 만에 하나 초나라가 한나라를 이긴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때는 온 천하가 초나라에 두려움을 가져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서로 구원하려 할 것입니다. 초나라가 강대해진들, 단지 천하 모든 제후국들의 군사를 끌어들여 적으로 만들기에 적당할 뿐입니다. 그 형세는 쉽게 보입니다. 이러한 즉 대왕께서 만전한 한과 더불어 하지 않고, 스스로 망하게 될 초에 의탁하고 있다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위하여 생각해 보건대 이에 대한 의혹이 있습니다."
수하 : "신은, 구강의 군사를 가지고 초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초를 배신한다면 반드시 항왕은 여기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단 몇 달만 머물러 있게 한다면, 한이 천하를 취하는 것에 만전을 기할수 있습니다. 신이 청하건대, 대왕과 더불어 칼을 잡고 한에 귀부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한왕께선 반드시 땅을 찢어서 대왕에게 봉하여 줄 것인데, 하물며 구강이야 대왕께서 반드시 가지게 될 것입니다!"
경포 : "내게 명령을 받들게 해주시오!"
이렇게 수하의 설득에 넘어간 경포는 유방에게 협조하겠다는 뜻을 표시했지만, 당장은 대놓고 이를 누설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초나라의 사자가 와서 언제나처럼 경포에게 어서 군사를 동원하라는 독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하가 가만히 보기에 저 독촉에 어쩌다 경포의 마음이 다시 바뀌기라도 하면, 모든게 말짱 도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경포와 초나라의 사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자리로 찾아간 수하는 흡사 프로레슬링의 링 세그먼트 도중 난입하듯 갑작스레 난입해 왔습니다.
"구강왕은 이미 우리 한나라에 귀부하였습니다. 어떻게 초가 구강왕의 병사를 함부로 발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영포가 깜짝 놀랐다. 초나라의 사자는 벌떡 일어났다. (布愕然. 楚使者起) - 사기 경포열전
갑작스런 난입에 수하의 난입에 경포나 초나라의 사자나 당황해서 얼이 빠져 있는데, 수하는 한술 더 떠 초나라의 사자가 보는 앞에서 경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은 이미 결론이 다 나버렸습니다. 그러니 초나라의 사자를 죽여서 돌아갈 수 없게 하고 빨리 한나라와 힘을 합치시지요."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와서 초나라의 사자를 되돌려 보내 봤자 사자가 항우에게 "경포가 한의 사자를 숨겨두고 있더라." 라는 말 따위를 전하면 꼼짝없이 새 되는 판입니다. 결국 어이없이 말려 들어간 경포는 "당신 말대로 하겠다." 며 초나라의 사자를 죽였고,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에 대항했습니다.
앞서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구강은 초나라에 지척입니다. 경포를 물리치지 않고서는 초나라는 어디로도 갈 수 없습니다. 항우는 이에 신뢰하는 장수인 용저와, 친족인 항성(項聲)을 보내 경포를 치게 했습니다. 항우 본인은 유방을 추격해 하읍(下邑)까지는 나아갔으나(전화에서 나왔지만, 하읍은 유방이 주려후 여택을 만나 겨우 세력을 처음 수습한 곳입니다), 경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한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항우와 경포의 세력이 비교가 될리 만무합니다. 유방도, 이윽고 북방에서 크게 세력을 일구는 한신조차도 단신으로는 항우의 세력과 맞상대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물며 경포의 세력지인 구강은 초나라의 바로 지척입니다. 보급이건 뭐건 얼마든지 신경쓰지 않고 해줄 수 있는 위치였으니, 상대가 될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경포는 초나라군에 깨지고 말지만, 그때까지 무려 '몇달' 이라는 시간을 버는데 성공합니다.
'초는 항성과 용저로 하여금 구강을 공격하게 했다. 몇달이 지나서 용저가 구강의 군사를 깨뜨렸다. 경포는 군사를 이끌고 한으로 달아나려다 초의 군사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여 샛길을 타고 수하와 함께 한에 귀부하였다. 12월에 구강왕이 한에 도착하였다.' - 자치통감
경포가 벌었던 '몇달' 이 정확히 몇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2월에 경포가 한나라에 도착했다고 하는 기록을 보면, 11월을 기점으로 몇달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유방이 수하를 경포에게 보낸 것은 4월 경 팽성 전투에서 패배한 거의 직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포가 조용히 간을 보면서 움직이지 않던 시간을 고려해본다쳐도 7~8월 즈음에는 초나라에 대항한 전투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즉 5월 경에 있었던 경색전투 이후로 12월까지의 시간은 거의 경포가 혼자서 다 벌어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이 몇달간의 시간은 한군에게 있어 엄청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관해선 다음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덧 :
엉결에 수하에게 말려들어 당대 최강의 세력인 항우와 유방도, 팽월도 모두 피했던 화끈하게 정면대결을 펼친 경포는 가진것을 죄다 털리고 몸만 남아, 요즘 인터넷 상에서 종종 쓰는 표현대로라면 소위 "빤스런" 을 해서 유방에게 귀의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난 유방은,
"어? 너 경포냐? 야, 반갑다! 잘 왔다!"
침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씻으면서 경포를 맞이하니, 그 태평한 모습을 본 경포는 자기 신세가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서 아예 자살하려고까지 마음 먹었는데, 분한 마음을 안고 한나라군이 마련해놓은 객사에 들어가자 장막, 음식, 심지어 시종하는 관리들까지 전부 유방이 머물던 곳과 똑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미 패망한 자신을 여전히 왕으로 대우해주는 모습에 크게 기뻐하게 된 경포는 자살하려던 마음을 일단 접고, 사람을 보내 자기가 떠난 구강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전해오는 소식을 들어보니, 항우는 사람을 시켜 구강의 남은 병사를 자기가 모두 거두었고, 경포의 처자식들도 모두 잡아 죽인 뒤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긴가민가했던 경포는 더 이상 돌아올 여지없이 완전히 한나라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는 아직 구강에 남아있는 자신의 충신들 및 지인들 수천여명을 불러 한나라군에 끌어들였습니다.
앞서 보았듯 모든 기반을 잃어버린 상황이라, 경포는 이후 전황에서 단독으로 큰 군공을 세우진 못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BC 202년, 경포는 다시 구강에 들어가 이 지역을 회복했습니다. 본래 구강에 기반이 있었던 경포인지라, 이 지역에서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미 패망에 가까웠던 초나라의 입장에서는, 초나라의 코 앞에 있는 구강의 이탈은 매우 위협적이고 큰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경포는 당시 초나라의 대사마였던 주은(周殷)을 회유한 인물도 경포였습니다. 경포의 공작과 주은의 회유로 구강 지역은 전쟁 말기에 완전히 한나라 쪽에 돌아섰고, 초나라에서 무려 대사마 직을 하던 인물이 적에게 투항하는 것은 초나라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경포도 경포지만, 그런 경포를 회유한 수하의 역할도 적지 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전쟁이 유방의 승리로 끝나고 천하가 통일된 이후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이에 관한 웃긴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유방 : (술을 먹다가 갑자기)"이 놈 수하야, 수하는 썩은 선비이니, 천하를 다스리는데 어찌 이런 썩은 선비를 내가 어디에 쓰란 말이냐?"
수하 : "폐하께서 군사를 이끌고 팽성을 치다 패배했을때 말입니다, 그때 보병 5만 명과 기병 5천명이 있었으면 구강을 점령 할 수 있으셨을까요?"
유방 : "못했겠지."
수하 : "폐하께서 저에게 스무명과 구강에 사자로 가게 하셨고, 저는 구강에 이르러 폐하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보병 5만 명과 기병 5천 명보다도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 폐하께서 '수하는 썩은 선비이니, 천하를 다스리는데 어찌 썩은 선비를 쓰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유방 : "네 말이 맞다. 내가 너의 공을 생각하리라!"
이후 수하는 장령들을 관리하는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