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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2/06 17:25:08
Name 글곰
Subject [일반] 쥐똥만한 인간
  (주의 : 이 글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즉 갈피를 못 잡는 글입니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막 경제발전을 시작한 60년대의 한국은 아예 가진 것이 없었다. 지하자원도 없고 석유도 없고 하다 못해 나무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풍족했다. 사람. 십만 제곱킬로미터조차 되지 않는 좁아빠진 한반도에 우글우글하게 몰려 있는 사천만 명의 인력. 그래서 대한민국의 경제는 사람을 갈아넣은 연료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는 윤리적인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물건을 만들려면 땅과 건물과 재료와 인력이 필요하다. 그중 인력이, 즉 인간이 가장 저렴했기에 이런 방식이 유효했을 뿐이다. 경제학의 논리란 이토록 무섭고 두렵다.

  나는 한국에서 유독 돋보이는 금전만능주의가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더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대체로 마찬가지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사람은 그가 가진 것에 따라 평가받았다. 청동기 시대부터 이미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일컬어 자유경쟁이라 명명했다. 그러한 순수 경쟁 체제는 인간 사회를 더욱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사회에 속한 개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잠시 눈을 감아둔 채로.

  그 결과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타인의 부러움과 질시를 사게 되었다. 삶의 목표는 곧 많은 돈으로 환원되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의사들은 말도 안 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지만 사람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사람을 우리는 부러워하고 질투해야 한다. 그들을 동정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흔들린다. 역설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감내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신경은 쇠심줄이 아니기에 이토록 팽팽하게 당겨진 체제를 언제까지고 견딜 수는 없다. 그래서 인류는 위대한 도피처를 곳곳에 만들어 냈다. 그중 가장 찬란한 성과가 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특히 싱글게임을 즐겨 한다. 게임은 공정하다. 대체로 약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 나는 게임의 세계 안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게임 안에서 나는 성장하고 자라 마침내 승리한다. 나의 작은 노력은 값싼 만족감으로 보답받는다. 게임 안에서 항상 나는 승자가 될 수 있다. 오직, 나의, 노력만으로. 이는 현실에서는 내가 결코 이룩하지 못할 성과다.

  하지만 잔인무도한 개발자들은 멀티게임을 만들어 냈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시스템을. 심지어는 현실의 돈을 가상세계에까지 개입시켜, 결국 돈을 가진 자가 더 강해지는 현실의 논리를 가상세계에 또다시 구현하고 말았다. 이는 천사가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감자를 만들자 악마가 그걸 기름에 넣고 튀겨버린 것만큼이나 악독한 짓이었다. 나쁜 놈들.

  하지만 그런 게임이 잘 팔리는 걸 보면 결국 경쟁이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글 쓰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은 내가 가진 것에 따라 평가받지 않는 영역이다. 내가 지갑이 비어 있거나, 내게 아직 갚지 못한 주택담보 대출금이 있더라도 상관없다. 반대로 내가 수천 억을 가진 갑부라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을 모르기에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판단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이 나라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글. 내가 쓴 글.

  가상화폐로 몇 배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6천만원이 6억원으로 둔갑했다는 짤방도 보았다. 나라고 해서 왜 부럽지 않겠는가. 나라고 해서 왜 그 돈이 탐나지 않겠는가. 나도 돈을 벌고 싶고, 많이 벌고 싶고, 아주아주 많이 벌고 싶다. 일 안하고도 살아갈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싶다. 그 욕망이 불현듯 내게 속삭인다. 사라. 코인을 사라. 네 재산이 늘어나리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렇게 십만원씩 가상화폐를 살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초라해진다. 붉은 색과 푸른 색 숫자를 보고 나의 수입과 타인의 수입을 비교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작아진다. 돈의 무게가 나를 조금씩 더 짓누른다. 돈으로 돈을 버는 이 세계에서 금전의 무게는 나를 압도한다. 내 코인이 오를 때마다 나보다 많이 번 사람을 질투한다. 내 코인이 내릴 때면 돈을 번 남들을 백안시한다. 돈을 벌 때면 어째서 더 많이 투자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워하고 돈을 잃을 때면 왜 미리 팔지 못했는지 자책한다. 내가 사지 않은 코인에 투자했더라면 이만큼 벌었을 것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헛되이 계산하며 방향 모를 분노를 어디론가 토해낸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어 그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일까. 나는 어째서 이토록 값싼 인간인 것일까.

  그래서 요즘 유독 자주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피지알에 글을 쓰는 양이 부쩍 늘었다. 출사 원고 분량을 평소의 1.5배씩, 그것도 마감을 며칠이나 앞당겨서 내고 있다. 그러자 담당자는 경악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나의 회피기제다.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내가 나로서 온존히 있을 수 있다. 숫자에 휘말리지 않고, 돈에 짓눌리지 않은 채로. 그저 평범히 매달 월급을 받아 딸내미 인형과 장난감을 사주는 평범한 아저씨로 있을 수 있다. 소설을 써서 벌어들이는 한 달 오만 원의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아마도 당분간 가상화폐의 광풍이 부는 동안, 나는 키보드를 더 자주 두드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가상화폐가 내게 주는 유일무이한 이로움이다.

  김수영은 읊었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아마도 나는 쥐똥만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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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6 17:30
수정 아이콘
여기 쥐발톱에낀 때 있습니다... 저보다 한 10배이상 크실듯...
이밤이저물기전에
17/12/06 17:37
수정 아이콘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17/12/06 17:37
수정 아이콘
인상깊게 잘 읽었습니다.
17/12/06 17:50
수정 아이콘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가 생각나요.
왜 나는 조그만한 일에만 분노하는가, 갈비의 가름덩어리에 분노하고 20원에 분노하고 그게 너무 부끄러운 김수영의 절절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수지느
17/12/06 18:04
수정 아이콘
가상화폐를 하면서 계속 마음잡고있는다는게 정말 힘듭니다 무심하게 내돈아닌것처럼
아유아유
17/12/06 18:10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마스터충달
17/12/06 18:26
수정 아이콘
씁쓸하게도 글 또한 평가받습니다. 팔리는 글과 안 팔리는 글로... 글로 댓푼이라도 벌어봤다면, 글 쓴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과 자부심이 있겠죠. 글을 쓰며 온존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혼자서 쓰고 혼자서 만족하다 보면 한계가 옵니다. 끝내는 글을 쓰고 있는 건지, 똥을 싸고 있는 건지 분간할 수 없게 될 뿐이죠.
17/12/06 19:07
수정 아이콘
딱히 사람이 많지도 않아요... 그거밖에 없을 뿐.
LightBringer
17/12/06 19:16
수정 아이콘
하지만 잔인무도한 개발자들은 멀티게임을 만들어 냈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시스템을. 심지어는 현실의 돈을 가상세계에까지 개입시켜, 결국 돈을 가진 자가 더 강해지는 현실의 논리를 가상세계에 또다시 구현하고 말았다. 이는 천사가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감자를 만들자 악마가 그걸 기름에 넣고 튀겨버린 것만큼이나 악독한 짓이었다. 나쁜 놈들.

멀티게임 극혐하는 초초초 발컨 + 흙수저 무과금러의 입장에서 매우 공감되는 구절이군요 흑흑 싱글게임 만세입니다
겨울삼각형
17/12/06 19:49
수정 아이콘
사실.. 남한이 지하자원이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대상이 석유나 구아노.. 처럼 국가를 지탱하던 자원이라면 비교할순 없지만..

채산성은 낮지만 무연탄은 자급자족할만큼은 나옵니다.
다만 무연탄자체가 연탄말곤 쓸데가 부족하다는게..
하지만 덕분에 60~90년대 국민들의 난방은 책임져 줬죠.(무연탄은 화력발전용으론 잘 쓰이지 않습니다)

텅스텐은 한때 세계생산량의 8퍼를 우리나라가 담당했었습니다.
런승만 정권(50년대)때 거의 유일하다싶은 외화벌이 수단이어서 텅스텐 수출대금을 민간업자들에게 지원해 줬던 비리사건도 있었죠.
(중석불 사건, https://ko.m.wikipedia.org/wiki/중석불_사건)


딱 이정도.. 혹자는 한반도에 자원은 원래 풍부했는데, 전근대오기전에 다 파먹은거 아닌가? 라는 의문도 제기합니다.
(금광 은광의경우도 조선이 망하기전에 대부분 끝났다고하죠. 물론 땅이 더 넓은 일본도 비슷한시기에 은광 생산량이 급감했다고 합니다만..)
-안군-
17/12/06 21:02
수정 아이콘
시멘트 생산량도 세계 5위죠...;;
17/12/07 02:21
수정 아이콘
어제 1주일치 묵혀놨다가 손절한 가상화폐가 오늘 두배를 찍어버려서 속이 쓰립니다 크크크
'성인'이 아닌 바에야 보통 사람은 다 똑같죠. ㅠㅠ

모든걸 잊고 소고기를 쳐묵쳐묵하고 벽람항로나 돌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아.. 역시 세상은 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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