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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7/11/28 16:52:48 |
Name |
현직백수 |
Subject |
[일반] 그래도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수정됨) |
방법을 아직 찾진 못했습니다.하하
밑에 동갑내기 회원분의 취업글을 보고 덩달아 심란하네요.
1.
단기알바를 병행하며
한 술집에서 뼈를묻고 일을했다.
넓진않지만 복층식의 술집이었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안주도 괜찮은 곳이라 마음에들었었다.
1년 반 가량을 일했는데 나중에야 싸장님에게 듣게된 이야기가 있다.
면접볼때 자신감에 충만한 표정을보고 바로 뽑았는데
오픈 첫날부터 생맥주 따라마시는거 보고
"이 XX잘못뽑았나? " 의구심이 들었다가
마감할 때쯤 앉아서 졸고있는 모습을 보고
"이 XX잘못뽑았네" 라고 확신을 하셨다고
그래도 하루만에 짜르긴 그렇고 두고봤더니
' 유쾌한 또라이 정도구나... '
결국 1년 반을 알바생대빵으로다가 혼신을 다해 일했다.
도중에 사장님이 결혼하셔서 서울로 알바생들 이끌고 결혼식도 다녀오고
같이 MT 도 다녀오고, 형수님이 애 낳으셔서 애기도 봐주고
일없는 날 가서 밥도 얻어먹고 술도얻어먹고
술집 사장님이 술을 못마셔서 회식이라도 하면 허구헌날 부축해서 집데려다주었다.
일을 그만두고 어느날 가게를 찾아가니 가게가 사라져서
형한테 급히 전화를 했더니
가게 접고 원룸건물을 올린다고 해서
끄덕끄덕 했다. 역시 술장사보단 월세장사가 최고지
내가 일했던 곳들은 왜 전부 사라지는가
2.
마트안에 입점한 전산용품 매장에서 매장관리를 했다.
적당히 일을 배운 후 어느순간부터 사장님을 자주 볼 수가 없었는데
잉크충전해주고 교체해주고
허구헌날 핸드폰 부여잡고 보호필름 붙이는게 일이었다.
그래도 매우 한가했고 나름 꿀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그래서 많이 나태했던것 같다. 지금생각해도 조금 한심한 내모습이었다.
일이 안바쁘고, 할게 없는 상태가 유지되면
나중에 할일이 생겨도 미루는 버릇이 생긴다. 해야할 일도 까먹는 경우도 생긴다.
일을 그만두고 나와 처음으로 내 아르바이트 생활을 복기하고 반성했던 것 같다.
3.
사범대학교 출신이라 그나마 해당지역에서 학원강사를 할 수 있었다.
짤렸다.
내가 생각한 중학생과 , 실제 요즘 중학생의 괴리는 어마어마했다.
학군이 나름 좋은곳이었는데 부원장의 딸과 친구무리들이
오만방자했고, 안하무인이었다.
수업시간인데 지들끼리 19금얘기를 대놓고 한다든가
계속 말리고 타일러도 떠든다든가.
어르고 달래는 것에 일가견이 1도 없었고, 참을성은 바닥이 난 상태에서
참을 수가 없어 할 말 못할 말 다하고
회사로 따지면 권고사직비스무리한 것을 당했다.
"선생님.. 애들이 너무 무서워합니다. 집에가서도 엄마한테 무섭다고 해서 전화왔어요"
라고 거지같은 딸을 둔 부원장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
" 그러게요. 답도없네요. "
하고 웃으면서 때려쳤다. (짤렸다)
임용고시의 꿈을 접게된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난 누군가를 가르칠 자질이 되지않는다.
4.
나의 마음의 고향 서비스직을 찾아
X앤X스 라는 카페에서 일을 하게되었다.
신기하게 면접을 보러온 알바생이 많아도 대번에 합격하는
귀신같은 면접성공률이었다.
물론 동대문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만들던 경험을 신나게 부풀려서 말했다.
손님으로 가기에 좋은 곳이있고
아르바이트 하기에는 거지같은 곳이있다.
지극히 전자에 속하는 매장이었다.
손님에겐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것 같은 아줌마사장님 이었지만
알바생에겐 쓸개즙도 빼먹을 것 같은 아줌마사장님 이었다.
외관상 보기좋지 않다며 알바생전용 의자를 치워버리고
늘상 CCTV로 감시했다. 들어오는 여알바마다 흑심을 가지고
잘해주며 다른 알바는 은근히 배척하는 매니저 ( 여사장의 아들) 는
입에발린 소리를 굉장히 잘했다.
~씨 다음에 시간되면 술 한잔 해요 ~^^ 제가쏠게요~
개뿔이나 그 몇개월동안 시간이 한 번도 나지 않은 것인가.
난 시간이 남아돌았는데.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나에게 내어줄 시간을 다른 여아르바이트생에게
몰빵했던 것.
멍청한사람은 분산투자를 모른다.
그럴수록 배척당한 아르바이트끼리의 유대감은
신난 고양이 꼬리처럼 치솟았다.
아직도 그 동생들과 만나면 추억과 악담을 늘어놓는다
물론 그 X앤X스는 사라지고 다른 카페가 자리를 대신했다.
5.
과외구하는 사이트에 올린지 1년넘은 글을 보고
과외문의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부사관을 지원하고싶은 여학생이었고
괄괄하고 쿨해 죽이잘맞아 열심히 가르쳤다 .
첫 과외인데다가 중고생도 아니라 이걸 우째가르쳐야되나 어리버리 타다가
과외비 협상조차 제대로 못하고
내 추측상 한반도에서 제일 저렴한 과외비를 받고 과외했었다.
아마 카페에서 만날 때마다 시켰던 커피값을 계산해보면 얼추 비슷할 듯 하다.
하는동안 즐거웠고, 시험보러 간다는 말에 내가 다 두근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카톡프로필사진에 군복입고 웃고있는 사진을 보면
상당히 뿌듯하다.
내 손을 거친 후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은 유일한 케이스 인 듯 해서 더 뿌듯하다.
6.
한 겨울을 거쳐 봄이 될때까지 102보충대 앞에서
화요일만 되면 열심히 장갑, 깔창, 시계 등등의 군용품을 팔았다.
대로변에서 차가 지나가면 열심히 멋드러진 제스쳐를 취하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인사를 해댔다.
겨울에 어찌나 춥던지 귀때기랑 손가락이 탈부착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없이 했다.
사장님은 닭갈비집과 군용품천막 몇개를 관리했는데
조폭같은 느낌이 들었다.
트럭에 이것저것 쌓아놓고 용품 배달해주는 아저씨가 따로있는데
G-SHOCK 을 5천원에 때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다.
나는 그걸 3만원에 팔았는데 ... 마진율 무엇...
그 장면을 본 이후부터 나는 물건을 더 잘팔기 시작했다.
맘대로 G-Shock 판매가를 낮추고 깔창을 덤으로 껴주었다.
2천원하는 LED팬도 천원에 가져가시라고 선심썼고
보급이 나오거나 훈련소가도 쓰지못하는 물건에 대해
문의할땐 손사레를 치며 그거 다 알아서 준다고 사면 호구라고 알려드렸더니
굉장히 기뻐하는 손님을 보며 흐뭇했다.
내 맘대로 박리다매하니 당연히 매출은 더나와서 칭찬은 받았는데
왜 니 매대에만 그렇게 물건이 없냐고 물어볼땐 솔직히 뜨끔 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 둔지 얼마 안되어
102보충대가 사라졌다.
내가 없앤 것중에 가장 스케일이 큰 것 같다.
그리고 멀티방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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