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의 런칭을 전후해 엄청난 크런치(야근 및 철야 등을 일컫는 말) 모드였던 때. 나는 런칭을 전후해 한 번씩, 한 달 걸러 두 번 실신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 년 전 이맘때. 나는 - 이젠 '전 회사'가 되어 버린 - 다니던 회사의 제의에 따라 휴직신청을 했다. 그 동안 내가 담당하던 부분에 참견하지 못해 안달을 냈던 어떤 높으신 양반은 - 심지어 휴직 제의는 회사에서 먼저 했다 - 정당한 휴직신청을 하는데도 앞으로 회사의 미래에 함께 하네 마네 하는 되도 않는 소리로 내 속을 긁었고, 나는 쫓겨나듯 회사 문을 나왔다.
한 달 동안 나는 돈을 못 버는 신세가 되니 고스란히 손해가 되지만, 손해를 보든 말든 그 땐 쉬어야 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어떻게 봐도 회사 상황에서 내가 크런치 상태에 놓이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고, 한 달 걸러 두 번 실신해서 이미 망가진 녀석이 또 크런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먼저 쉬겠다고 해도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분들께서 심지어 나에게 '먼저' 휴직 제의를 해 놓고 저런 푸대접을 하는데. 저 작자들이 내가 죽는다 한들 눈 하나 깜빡하려나 싶었다.
집에는 그 동안 쓰지 못한 휴가를 쓰기로 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생각의 간극을 좁힐 수 없는 문제 때문도 있다. 그래서일까. 혼자가 익숙한 나에게도 일 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말 지옥 같았다. 거의 10년 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서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 가기 시작했고, 가족도 내 편이 되어 주지는 못했다. '마션'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 뭐 된 기분이었다. 당연히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회사에 당분간 나가지 않아도 되니 잠을 덜 자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일 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부터 시작된 나의 연말 분위기는 정말 엉망이었다.
작년의 그 일이 있은 후, 해가 바뀐 뒤 휴직 기간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나를 고깝게 보던 높으신 양반은 결국 내가 나온 당일날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권고사직을 종용했고, 나도 더 이상 그 양반과 엮이기 싫었다. 이해는 한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족도 웬수가 되는 법인데 남이야 말로 해서 무엇할까. 그래도 그 보기싫은 양반을 부리고 있는 대표님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님과 마지막 면담 때에는 원망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별 소리 하지 않고 줄 거 다 주고 떠났다.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늘리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야근을 하고 들어오든 정시 퇴근하든 나는 여전히 한 번에, 그리고 하루에 다섯 시간 반 이상 자 본 적이 거의 없다. 못 자면 어떻게 되느냐. 멍한 상태로 깨고 좀비처럼 걸어다닌다. 당연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휴일에도 한 시간 정도 어거지로 낮잠을 자야 그만큼만 더 자는 상태고, 그 다섯 시간 반도 한 번에 잘 자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다.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잠이 다시 들려면 정말 미칠 지경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지금 겪고 있는 수면장애 상태는 작년에 비해 별 것 아니라서. 다시 잠들기까지 한 시간 걸리던 게 이젠 10분, 20분으로 줄어서 예전보다 잠들기 한결 수월해졌다는 거.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 참.-_-)
어느덧, 벌써 다시 일 년이 지나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의 시작을 맞고 있는 지금도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젠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지. 일 년 전 그 때에는 괜찮다고 말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잠을 못 이루는 나날이 많은 걸 보면 사실 별로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말로는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고 하면서 돈이 없어서 그랬겠다 했지만 거의 10년 가까운 인연을 내팽개쳐 버린 그 사람들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일년 전 이맘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한 번에 잘 자기 참 어려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깊고 오래 남을 것 같다. 얼마 전 그 곳을 나온 사람에게 듣자하니 나를 내치신 분들은 없는 사람들(당연히 나도 포함되겠지) 씹고 뜯으면서 자기위안하고 계신다더라. 나약하다고? 노력이 부족했어? 젠장. 내가 해 준게 얼만데. 좋을 대로 말하라지. 이젠 다 귀찮다. 그냥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잠이나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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