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오늘까지 월화수목 총 4일동안 아침에 광명에 급한 스케줄이 잡혔다.
어제도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개봉역에서 652번 버스에 앉아 집에 오는데
뒤에서 누가 자꾸 내 등을 더듬는다.
혹시 앞이 안 보이거나 극한의 이상성욕을 가진 성추행범인것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백발이 아름다우신 할머니 한분이 파란색 마스크를 쓰고 내 등에서 뭔가를 떼내고 계신다
티셔츠를 당겨서 보니까 아까 건물 밖에서 생각없이 나무에 기댔을때 묻었는지 나무 껍데기가 옷에 엄청 묻어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당겨서 털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내가 해줄게~ 그냥 앞에 봐~ 하고 말을 걸어오신다
죄송스러웠지만 또 사양하는것도 예의가 아닌거 같아 다시 앞으로 돌아 앉았다.
어디에서 내리시는지 여쭤보니 강서구청까지 가신단다. 나랑 같은 정류장이다.
어디 가시는 길이냐 여쭤보니 친구한테 놀러가는데 거기서 갈아타야 하신단다.
몇 정거장 가는 동안 그렇게 할머니는 원숭이가 이를 잡아주듯 내 등에 있는 나무 껍데기를 다 털어내시더니
이제 깨끗해~ 라고 작게 말씀하신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뻘쭘하게 앉아 있는데 어느새 강서구청이다
지팡이를 잡고 내릴 준비를 할머니를 보고 잡고 같이 내려드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정정하신거 같은데 괜히 또 잡아드리면 기분 상해하시지 않을까? 하고 고민이 된다.
그러나 머리가 고민을 하는 사이 몸이 이미 할머니를 잡고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런 위험한 행동 양식을 가지고도 잘도 아직도 범죄자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할머니께 음료라도 사드릴까 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나서 가방에 있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하나 꺼내 할머니께 드린다
할머니 이거 쓰신거보다 더 좋은 마스크니까 이따 집에 갈때 쓰세요 오늘 공기가 많이 안 좋대요
고마워 하시는 할머니를 두고 언덕길로 올라가는데 채 3분도 되지 않아 폰에서 카톡~ 소리가 난다
밤 열한시경 친구들과 조문을 마치고 병원밖으로 나와 빗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돌이켜봤다.
참 기묘한 하루, 기묘한 경험이었다.
별로 운명이나 신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 그런것이 있다면 오늘 내게 하늘이 해주고자 하는 말은 뭐였을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짚이는것이 있어 이번 주말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표를 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큰 아버지, 저 이번 주말에 내려가려구요, 할머니 건강히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