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면 항상 달리는 리플이 있다. ‘그건 작을 거야...’ 그렇다, 다른 걸 다 가졌을지언정 그것이 작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마 전에 이런 뉴스도 있지 않았나, 백만장자가 성기 확대 수술을 받는 도중에 죽었다고. 그것의 크기가 목숨을 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중요한 걸 확인할 수 없으니 제 아무리 잘난 남자라 한들 우리는 멋대로 상상하며 위안을 얻으면 되는 거지.
그런데 말이다, 그게 내 얘기인 것이 문제다.
사실 난 꽤 잘생겼다. 돈도 남들 부럽지 않게 번다. 여친도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작다. 여친과 관계를 할 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준 적이 없다...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없는 것 같다. 옛날 여친 중 한 명은 참 솔직한 친구였는데, 그 녀석은 나와의 관계가 끝나면 종종 자기 전 남친 얘길 하곤 했다. ‘축구선수’였다나, ‘흑인이랑 해봤다나’ 등등. 여친에게 그런 얘기 듣는 기분, 안 들어봤음 굳이 상상하지 마시라. ^^ 그리곤 꿀꿀한 마음에 인터넷을 하다가, 딴 놈 보고 날린 ‘그건 작을 거야...’라는 리플에 덩달아 얻어맞곤 하는 것이 나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 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며 지나가는 물건들의 사이즈를 체크하고, 와 저 놈 진짜 크네, 햐 저 놈은 저 얼굴에 저 사이즈? 이건 반칙이지~ 하하 쟤는 내가 이긴다, 같은 찌질한 생각을 하는 하루 말이다. 그런데 그 날 난 생전 보지 못한 것을 보고야 말았다.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은 ‘탈한국인’. 그래, 저것은 분명 시커먼 색깔이어야만 했다. 근데 나와 같은 피부색인데 저 사이즈라고? 말도 안 돼!
더 놀라운 건 그 물건의 소유자가, 엉덩이 살이 늘어져 세 겹쯤 겹칠만한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뱃살은 늘어지고 무릎은 가늘어 내 팔뚝만한 데다 얼굴은 검버섯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물건이 그 사이즈였다. 운동은 안 하고 온탕과 냉탕만 오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오만 생각이 들었다. 저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좀 날렸겠다. 지금은 쓸 데가 없겠지. 저 할아버지 가시면 저 물건은 전설로 남을 거야... 등등.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또 드는 거다.
저 물건 나 주면 안 되나?
아아, 그 생각이 들었을 때의 기분을 이제 와서 묘사하자면... 예수 재림을 본 기분이랄까. 빛이 내게 왔달까. 머릿 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옛날 어디선가 성기 교환수술이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할아버지 가시면 그거 내가 쓸게요! 님은 떡도 주지 않았건만 나는 이미 큰 절을 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곤 들뜬 마음으로 비뇨기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이러이러한 수술이 가능한가요? 면역 반응이 어쩌고... 혈액형이 저쩌고... 답은 안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자가 어찌 그 빛을 잊으리오? 구글을 통해 전 세계를 뒤져보니 성기 이식은, 가능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기가 잘린 군인이 다른 기증자의 성기를 이식 받은 사례가 있단다! 야, 존스홉킨스에선 된대! 한국 의술이 그렇지 뭐. 답은 천조국에 있다!
할아버지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날은 짝사랑 하던 여자애 기다리는 것보다 더 떨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기다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힘없이 나타났다. 단 거 좋아하시냐니까 좋아하신단다. 파르페며 과일 주스며 이것저것 사드린 뒤 본론부터 던졌다. 할아버지, 저는 사실 물건이 작은 게 콤플렉스입니다. 평생 그것 신경 쓰며 살았습니다. 여자를 만족시켜본 적도 없고요. 내 말을 듣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분이 안 좋으실까? 당연히 안 좋으시겠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한참 대꾸도 없이 듣다가 그러시는 거다.
그래도 넌 해보기라도 했잖냐...
네?
난 아녀...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저런 물건을 가진 사내가, 쓸 일이 없었다니 세상에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딨을까. 이건 마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난 뒤 치킨집 사장을 하는 꼴, 아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국에서 태어나 미술학원 강사하는 것보다 더 큰 국가적 손실이 아니겠는가? 나는 할아버지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다. 했으나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자와 첨부터 하지 못한 자는 그 자리에서 연대를 이루었다.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산다는 할아버지는 의외로 쉽게 허락하셨다. 내가 가면, 니가 써.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나도 한 번은 하고 죽자.
나도 한 번은 하고 죽자.
그때부터 우리의 고달픈 여정은 시작됐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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