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수치플과는 사전적(?)의미가 다르지만,
딱히 마땅한 단어도 없기에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때는 2018년 9월.
꽁돈 백만원이 생겼다.
무언가를 하기에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금액.
나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버킷 리스트를 성실히 작성해두었고,
사실 그런게 아니더라도 버킷 리스트는 언제든 뚝딱 만들어낼수 있는것 아니던가.
내가 생각해낸 첫번째 항목은,
지방흡입이었다.
삼십년 넘게 수십차례의 다이어트를 실행해봤으나 모조리 실패한 나는,
결국 내인생에서 성공적인 다이어트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의지로 안되는 거라면, 돈의 힘이라도 빌려보자.
티비 광고나 버스에서 숱하게 들었던 응응365.
그곳을 내가 방문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70을 턱걸이한 키에 70대를 넘어서려는 몸무게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신나게 검색해보니,
요즘에는 지방 흡입 대신 람x라는 별도의 시술로 효과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아무래도 지방 흡입은 좀 거부감이 있었고, 람x는 간단한 주사시술인지라 나는 람x에 대한 온라인견적을 내보았다.
자세한 견적은 아니었지만 람x는 부위에 따라 무한 시술을 할수있는 상품이 있었고, 나는 그 상품에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방문한 응응365.
아리따운 여매니저의 인도에 따라 방으로 들어간 나는,
첫번째 수치플을 경험하게 된다.
상의를 들어올리고 적나라한 허리라인을 공개하는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매니저는 마치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내 지방을 만져보기 시작했고, 지방이 응축되었다가 펴지는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저희 업계 포상' 따위가 아닌,
그저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과정이었다.
빨개진 얼굴이 식기도 전에 곧바로 사진 촬영이 이어졌고,
그 다음에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죽여버리고 싶은 러브핸들 감상 시간이 이어졌다.
아직도 그때 내 지방을 떡주무르듯 주물러대던 참담함이 잊혀지지를 않는다.
젠장.
그런데 상담을 받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비용과 꽤나 차이가 났다.
같은 '복부' 이지만 위치에 따라 상하좌우로 람x적용 대상이 나뉘어졌고, 그 말은 백만원을 가지고는 복부 전체를 무한 람x로 할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뭐, 장사라는것이 다 그렇지.
사실 그때는 이미 수치플로 정신이 출타하신 상태라 현자타임 이상의 인생무상을 체험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고심끝에 해체..가 아니라 고심후 연락드린다 생각한 뒤 씁쓸하게 응응365를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수제비나 칼국수 같은 '반죽' 이 들어간 음식들을 한동안 기피할 정도로 ptsd에 시달렸고,
그냥 찌는대로 살자라는, 반 포기 상태로 음식들을 먹어댔다.
한편 백만원의 출처가 모호해진 나는,
두번째 버킷리스트로 '피부관리'를 선택했다.
지방흡입이나 피부관리 모두 돈모아서 하기는 아깝고,
한번쯤 꽁돈이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마치 내돈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선물로는 받으면 좋은 예쁜 쓰레기들(예: 어머니가 평가하신 커세어 k70 키보드) 을 얻은 느낌이랄까.
떡주무르듯 내 뱃살을 주무르던 수치플에 비하면,
비교적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피팅모델을 하고있는 사촌동생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스킨응응 피부샵.
간단한 사진 진단 후 원장님과 상담을 한다는 말에 나는 촬영용 기계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마치 건강검진을 할때 시력 측정을 하던 기계와 비슷했다.
셀카를 찍을 때처럼 미소를 지어야 하나, 하는 등신같은 생각을 하고있었을때,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또한번의 수치플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이윽고 잘생긴 원장선생님이 상담을 위해 들어오셨고,
내 사진을 켠 순간 나는 마시던 커피를 뿜을뻔 했다.
일부러 과장되게 찍은건지는 모르겟지만,
내 얼굴을 뒤덮고 있는 태평양같은 모공들.
침착된 색소들.
그리고 뭐라뭐라 하시는데 정신이 나가 제대로 듣지도 못한 참담한 나의 얼굴 상태들.
참으로 다양한 패턴으로 다양하게 주옥같은 내 얼굴을 심층 분석하시는 원장님을 향해,
나는 제발 그만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제발 그만하시고 견적을 내어주세요.
셧업 앤 테익 마이 백마넌.
그렇게 '손님의 피부 상태는 휴먼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는 이야기와 향후 대책, 그리고 지인 추천으로 부가세는 할인이라는 말까지 끝난 뒤에야 수치플 시간은 종료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샤워를 할때 그 기괴한 사진이 떠올라 내얼굴임에도 "으악 xx!!" 하며 종종 비명을 지른다.
내 얼굴에 내가 놀라게 될 줄이야.
사실 응응 365를 나설때에는 참 슬펐다.
돈을 바르면 어케든 될줄 알았는데,
돈으로도 쉽지 않구나.
꽤나 많은 돈이 있어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저곳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은 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신이 나를 가엽게(혹은 웃음꺼리를 제공해준 보답으로) 여긴것인지,
동생과 함께 수영을 다니면서 두달만에 5키로가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체중계가 고장난줄 알았는데,
수영을 하기 전과 후에 무려 900그람의 차이가 나는것을 보고 깨달을수 있었다.
수영은 갓영이라는 것을. 오우지자스..
지금도 허리가 32인치 정도일 뿐이지만,
돈으로도 불가능했던 성과를 내게 되니 얼떨떨 하면서도 참 좋았다. 조금만 일찍 시작할껄 이라는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딱 백만원이 생긴줄 어케 알았는지 피부과에서는 이러이러이러해서 백만원입니다!! 라는(사찰이라도 한줄알았다) 환상적인 견적서를 내주었고,
토닝과 박피를 결합한 '니가 이래도 피부가 안좋아지고 배겨?' 패지를 진행 중이다.
두번의 창피한, 어떻게 보면 굴욕적인 수치플 경험은 그렇게 끝났다.
백만원이란 돈을 잘 썼느냐라는 문제보다,
직접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뼈저리게 자극을 받은 것이 도리어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토닝은 뼈가 저리게 아팠다.
아무생각없이 갔다가 영혼까지 털리고 왔다.
박피는 이거보다 더아프다던데.. 여성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을빼고 피부관리를 한들 내면을 가꾸지 않으면 아무의미가 없겠지만,
겉모습이 이래서야 내 내면을 궁금해할 사람은 우리 어머니밖에 없을 터.
수치플의 기억을 잘 저장해놨다가 나태해질만 하면 꺼내먹으려 한다.
수치플 이야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