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문기사
최근 일어난 10대 청소년의 무차별 살인사건 사건의 1심 재판 결과, 징역 3년형이 선고되었다.
이모(17)군은 지난 20XX년 X월, XX병원에 입원해있던 아무런 일면식도 없던 환자 최모(25)씨를 칼로 수차례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이군은 범행 이후 본인의 죄를 자백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했으며, 법정에서도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겠다고 선언하는등의 특이한 행동을 보였고, XX지방법원 11형사부는 이군이 아직 어린 나이이고, 체포와 수사에 순순히 응했으며,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과 갱생의 의지를 보였던 점, 범행 당시 이군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3년형을 선고하였다고 밝혔다.
한편, 이군측에서는 당초 법정에서 이야기한 대로 항소를 하지 않고 형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검찰에서도 항소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형은 확정될것으로 보인다.
--------------
4. 법정'피고는 마지막으로 진술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하세요'
판사의 말에 그를 바라보던 재판장내의 모든 시선이 증언대에 서 있는 만 17세, 앳됨을 채 다 버리지 모한 소년에게로 다시 쏠린다. 소년의 몸은 작게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무언가를 결의한듯 맑고 곧아 보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변호사님, 검사님, 기자분들, 저는 여태까지 진술한 대로 죄를 지었습니다. 비록 무언가에 씌여서 홀린 상태로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그 날 아침부터 그 불쌍한 사람을 제 손으로 직접 죽인 그 순간까지 토씨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일을 다 기억하며, 분명히 제가 저지른 일입니다.
판사님, 저는 진심으로 이번 일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처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진술서에도 썼듯이, 저는 스스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은 연고도, 가족도 없는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도망가지도, 반항할수도 없는 처지라 들었습니다. 법이 저를 심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없을겁니다.
저는 벌을 받으며, 죄를 반성하고, 나와서도 이 일을 잊지 않고 평생 사회에 속죄하며,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부디 제가 받아야 할 합당한 벌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
3. 형사의 증언
"조사결과, 피의자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평소와 똑같이 학교생활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건을 저지른 병원은 커녕 그 동네 근처에도 얼씬도 한적 없구요.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은 가야하는 거리인데, 평일에는 학교 끝나고 학원 가랴 보충수업 하랴 정신없이 바빴고, 주말에는 항상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있었답니다.
그 이전에 접점이 있을까 생각해봐도 피해자는 사고 이전에는 애초에 일산에 5년 넘게 살았었고, 한번이나 마주쳤을까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의심이 가는건 인터넷에서 만났다거나 그런것뿐인데, 아무리 수사해봐도 그런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구요.
피의자가 범행 당일 아침부터 메신저를 통해 스스로에게 XX병원 503호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수신했다는걸 보면 분명히 병실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게 확실한데, 병원 관계자들 말로는 피해자는 돈은 좀 가지고 있었지만 연고가 없었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지 누구도 병원에 그를 찾아오거나 연락해오거나 하지 않았답니다. 정말 피의자 주장대로 악마에라도 씌인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2. 간호사의 증언
"글쎄요, 당시엔 너무 놀라서 말릴 틈도 없었어요. 학생이 복도에서 너무 심하게 뛰길래 뛰시면 안된다고 말씀 드렸는데, 듣지도 않고 달려가서 병실로 뛰쳐 들어가더라구요. 낌새가 안 좋아서 수간호사님이랑 같이 따라갔는데, 갑자기 환자분의 비명소리, '다리가 안 움직여요!' 라는 외침이 들리고, 뛰어들어가니까 이미 모든게 다 끝나있었어요.
환자는 몸 몇군데에 깊은 자상을 입고 목이 졸려 죽어있었고, 학생은 더 이상의 추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할 생각은 없었는지 칼을 저 멀리 던져놓고 그 자리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어요. 긴급하게 경찰에 신고하고 원내 경비분들을 불렀는데, 학생은 저항하거나 하지 않고 얌전히 제압에 응해 체포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특별히 환자에게서 느껴진 이상한점은 없었냐고 물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오후 늦게까지 주무시더라구요. 깬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봉변을 당하신걸거에요. 최근에 수술 이후 안정을 취하는 단계도 막바지였고, 재활을 준비하고 계셔서 마음이 복잡하셨을거에요. 그래서 늦게까지 주무신것 같아요."
---------------
1. 택시기사의 증언
"글쎄, 처음엔 놀랐지. 이 시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택시에 타서 다짜고짜 병원으로 가달라니. 아마도 부모님이 사고가 났거나 위독하신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지. 그 생각이 드니 갑자기 너무 안쓰러워서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달렸던거 같네. 이런 일이 일어날줄은 난 상상도 못했다구.
특이한 점? 방금 말씀 드린게 특이한점 아니야? 아, 학생이 차에 타서 계속 병원이랑 병실 호수를 중얼거리긴 했어.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것도 부모님이 아프시니까 한시라도 빨리 찾아뵙고 싶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지. 그리고 목적지를 말할때나 혼자 중얼거릴때 발음이 좀 어눌하단 느낌도 들었었는데, 목적지 도착해서는 또박또박 잘 얘기하더라고.
근데 기자양반, 혹시 내가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난 진짜 그냥 태워다 준것밖에 없어."
--------------
6. 이군과의 인터뷰
"기자님, 저는 이번 사건 이후에 가족들, 친구들, 변호사님, 주위 사람들에게 수십번, 수백번도 넘게 그 질문을 받았어요. 대체 왜 그를 죽였냐고. 그때마다 저는 사실대로 답했습니다. 머리속의 악마가 갑자기 속삭였다구요. 그 곳에 있는 그 사람이 곧 내가 얻은 모든것, 가족, 젊음, 건강한 두 다리까지. 전부 다 빼앗아갈거니까, 가서 죽이라구요. 그리고 그때의 저는 그 얘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을 한것을 후회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어요. 아마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실거에요. 저는 이제 죗값을 치르러갑니다. 이제 기자님도, 다른 이들도 저란 사람을 잊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군은 말을 마치고는 내게 목례를 한뒤, 툭, 하고 문을 걷어차고는 간수를 따라 다시 문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