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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1 20:45
요즘 세상에 사람이 진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실존인물을 재구성한 허상들은 전자유흥으로 넘쳐나고 알아서 돈을 벌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역사고 맥락이고 아무도 상기시켜 주지도 않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안다고 해봤자 싸움거리만 되고.... 이것 또한 지나가고, 이것 또한 이겨낸다면. 아마 세상이 사람들을 다 부숴버리는 결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제가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꿍시렁이 늘은 것이겠죠.
18/01/11 21:36
진짜가 뭔지 맥락이 뭔지 이런 걸 아는 건 시간 머리 마음을 상당히 소모하니까 그럴거에요. 피곤하잖아요. 사람인 이상 항상 피곤하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 뒤에는 뭐가 있을지 찜찜하긴 하지만 그런 느낌은 무시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찝찝한거 치우고야 싶지만 너무 피곤할 것 같단 말이죠. 직접 송아지 키워서 고기 먹을 거 아니면 패티 하나에 담긴 오만가지 역사에 대해선 무시하는게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지 않겠습니까 일일히 신경쓰기 시작하다 보면 어디 패티에만 신경쓸수 있겠나요 근데 이렇게 골치아픈거 피곤한거 쳐내다보면 이것참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것도 쳐내게 될것같은데 이건 맞는 느낌일지 모르겠고 거참 알수가 없는데 쓰다보니까 저도 사는게 힘들어서 궁시렁대고 있는 것 같네요
18/01/11 21:38
하고 싶은 말이 막연할 때는 글을 쓰고, 다른 분께서 정리해주신걸 읽는 것만큼, 원하던 문장을 얻어내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흐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01/11 23:17
근데 현실은 저런 식으로 일반 대중은 멍청하고 패티 회사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것도 아닌 듯 해요. 패티 회사도 그냥 돈 벌려고 이것 저것 근시안적으로 시도하는 거고, 자기들도 큰 그림은 모르죠. 사실은 애초에 큰 그림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보면 인간 사회나 개미집이나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
그래도 개미들은 백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우린 계속 달라지니까 우리가 좀 더 재미있는 종이라능.
18/01/12 00:07
엘리트들 만이라도 '인간으로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했으면 전 엘리트주의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들이 지금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전문가 사회에서 이제 학교에서 사람을 십년 이상 잡아놓고는 쓰레기 버리는 것도, 밥 만드는 것도 다 돈으로 처리하는 무능력자나 찍어내는 놈들이 음모론자처럼 엘리트들이 타인을 도태시키기 위한 일종의 노예제도를 꾸미고 있다고 가정하면,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당당한 인류는 엘리트들을 통해서 남기라도 하겠지요. 그런데 사람 전체에게 실망하기 시작하면 결국 스스로를 좀 먹게 되더라고요. 관념적으로 생각하지말고 기준치를 낮추자. 순간적인 것만 생각하자, 라고 다짐하다가 어느날 속이 너무 쓰렸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책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부터 입니다. 공리주의에서 매번 나오는 논리입니다. '어떤 컬트가 여러분을 죽여서 무한히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하지 못한 당신들은 죽어도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한번 정리해서 여기에 글을 올리고 싶긴하네요. 아직 이 답글처럼 좀 심정적으로 횡설수설하는지라 깔끔해지려면 좀 시일이 걸릴 듯 합니다. 트럼프만 봐도, 일루미나티와 프리 메이슨의 큰 그림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게 '현실'의 '현상'이라는게 이제 정설이고요. 아즈텍인들이 행복하게 심장을 뽑아서 제사 지내다가 머리에 납탄을 맞고 죽은지가 어연 500년이네요. 세상은 머리 속이 아니라 머리 밖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자연의 법칙은 인간신의 법칙이 아니여서 사람을 늙어죽이고, 지반을 무너트리고, 뜬금없이 소중한 걸 불 붙입니다. 그건 이해해 줄 수 있어요. 인간이 지표면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어느날 초신성의 방사능 세례가 쏟아지고 모든 세포막이 녹아내린다고 누구를 탓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세상을 머리 속에 넣기로 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멍청하게 주입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알고 방관하는 것에 가깝죠. 예를 들어,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나마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믿지는 않지만요. 수천년의 맥락을 가진 이 신념체계 발명품이 저를 더 이상의 무의미에서 어느 정도 안식처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에 돈을 집어넣으면 방송인의 언급을 통해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요. 가상의 인물을 재료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전자적으로 만들어낸 영화, 소설, 만화도 즐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 속에 있는 세상은 '진짜'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아즈텍인들의 인신공양 신화랑 똑같이요. 차라리 '알겠지만 이거 다 기분좋으라고 만든 허구야'라고 솔직해지면 좋지만, 결국 소비자 쪽에서 과잉몰입자가 등장하죠. 아니면 공급자 쪽에서 '약빨'을 올려주려고 과잉몰입을 장려하던가요. 대표적으로 연예인들은 가면을 이용한 사기꾼들이지만 전지전능한 배후자들은 아닙니다. 큰 그림에서 춤추는 큰 그림의 일부이지 그림쟁이가 아니고요. 재미있긴 합니다. 그런데 너무 끔찍해요. 저는 지쳤습니다. 세상을 머리에서 어디에 둬야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밖인지 안인지 되는 대로 우리집 고양이처럼 자극에만 반응하면서 살지.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니여도 살기만 하면됬지 무슨 배부른 소리인지.
18/01/12 02:02
인간에게 실망할 거야 뭐 있나요. 인간은 원래가 이 정도의 생물인데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으아니 나는 인간이 100 미터를 0.2 초에 주파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10초나 걸린다고? 이런 절망스러울 일이 있나!' 라고 실망할 이유는 없잖아요. 오히려 모르던 걸 알게 되었으니 좋은 거죠.
대중 종교나 대중 문화는 말씀하신 대로 '과몰입' 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보고, 그래서 과몰입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근데 그것들이 꼭 기분 좋으라고 만든 허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정말 그런 수준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싸구려 문화도 많지만, 상당수의 예술작품은 뭔가 성취하려는 노력이 있지요. 제가 그런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와 별도로, 예술은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싸구려 문화나 종교에 과몰입하는 사람들까지 걱정해줄 여력은 없네요.... 근데 끔찍하지도 않아요. 애초에 그런 사람들하고 저하고 친구인 것도 아니고, 유전 정보를 일정 정도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간에 대단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사이도 아니니까요. 약간 원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저는 철학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거지, '진리를 찾는다' 같은 말은 허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작 깊이 있게 인문학 전공하는 양반들은 저런 이야기 잘 안 하죠. 애초에 진리라는 말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인데, 그 말이 함축하는 개념이 말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xx 에 대한 진실' 정도라면 모를까, '세상 전체에 대한 진리' 같은 말은... 이젠 그런 말 하는 사람을 보면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근데, 적어도 인간은 뭔가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하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합격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전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육체를 버리는 날이 오면 그것 꽤 재미있는 일이지 끔찍하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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