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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11 16:59:31
Name VrynsProgidy
Subject [일반] 나만 몰랐었던 우리집 돈 이야기 (수정됨)


반년 넘는 시간동안 타국에서 개고생하며 번 돈을 보너스의 보너스까지 싹싹 정산 받은 다음날, 편입 준비생 동생을 불러내 카페에서 만났다. 

시험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물었는데 몸은 안 좋지만 벌써 필기는 합격 발표가 떠서 붙은 학교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길고 재밌고 영원했으면 하는 근황 토크를 마치고, 씁쓸하고 안타깝고 슬픈 본론에 들어간다
 
"오늘 오빠가 널 왜 불렀냐면~ 너 이번에 편입하게 되면 입학금조로 뭐 돈 이삼백 필요하다며? 너 모아둔 돈 없지?"

준비한 구차한 멘트를 꺼내며 손을 부들부들 떨며 오백만원이 든 카드를 동생에게 건넸는데, 전혀 생각못했던 반응이 돌아온다.

'어?? 아니야 나 괜찮아 엄마가 해준다고 그랬어~ 오빠도 돈 쓸데 많을텐데 오빠 써 나 괜찮으니까'

아니 엄마가 돈이 왜 있어? 등록금을 해준다고 얼마? 물어보니까 자기 명의로 적금 비슷하게 들어둔 돈이 있는데, 그게 천만원 가까이 모였단다

자기도 몰랐는데 이번에 입학금 어떻게 할지 엄마한테 상의해봤더니 그런 돈이 있다고 해서 자기 학비에 다 보태도 된다길래 알았다고 했단다.




아~니 집에 돈이 없어서 회생파산 알아보러 법원에 왔다갔다 똥개 훈련한게 몇년도 안됐는데 무슨 천만원?

괜히 동생의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 어처구니가 없는 감정을 숨기고 자연스럽게 동생을 보낸뒤 빛의 속도로 엄마한테 황급히 달려간다.

가서 '지금 긴급상황이니 엄마는 정좌 자세로 앉으시라' 라고 말씀드린뒤 같이 정좌를 트고 앉아 들은 사연은 이러했다

동생이 대학 입학한 이후에 월 15만원 정도 꾸준히 넣던 변액보험이 있는데

그게 대충 보니까 천만원 가까이 모였단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사실을 나열하듯 말했지만 나는 답답했다

내가 지난 몇년간 그렇게 그래서 우리집 수중에 빚이랑 재산이 얼마가 있고 가용 금액이 어떻게 되는지

수도없이 물어보고 추궁하고 그랬는데 대체 왜 한번도 나한테 얘기를 안해줬어?

목돈 없어서 학교도 알바하면서 다니고 돈 버느라 입을것도 못 먹고 먹을것도 못 입으면서

남들 다 코카콜라 마실때 혼자 펩시마시고 남들 다 디스퀘어드 입을때 혼자 리바이스입고

여자친구가 삿포로 희귀동물 카페 가서 간식주자는걸 그러지 말고 레온 PC방에서 칼바람 나락에서 포로 간식이나 주는건 어떨까? 라며

진중하고 차분한 설득끝에 대관령 오리농장 꽥꽥이들을 보러가는 노사 대타협을 이뤄내고 3일간 쾌거의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살았는데

그 정도라도 모아둔 돈이 있었고 알았으면 어쩔수 없이 여기 돌아올 필요도 없었던거 아니야?

막 생긴대로 고질라처럼 포효하며 사자후를 내뱉는데 엄마가 이 돈은 그냥 동생 등록금 줘야지 하고 모으기 시작하고 신경을 안 써서 그랬다고

그러면서 당황하고 미안해하고 어쩔줄 몰라하니까 또 갑자기 마음이 약해진다 




지난 몇년 안정기에 접어들기전 절체절명절약 때문에 개고생했던 시간이 머리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나도 그 돈 있었으면 신립장군처럼 배수의 진을 치고 살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서운함

똑바로 얘기 안해서 가족 구성원 전부 러시아 컬링 대표팀이 자메이카에서 VR기기로 평창 올림픽 준비하는듯한 고생길을 택했는지하는 답답함

대화는 나랑 제일 많이 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보는 여자화장실에서만 말할 수 있는 저주에 걸린것처럼 자기들끼리만 아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

그러나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머리에서 몰아친 시간은 그렇게 길어지지 않았다

차분하게 앉아 엄마를 달래며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과거에 알지 못하고 쓰지 못했던 돈따위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었다.

만일 과거의 쓸 수 있던 돈 억만금과도 바꾸지 않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그것...

그것은 바로 현재 쓸 수 있는 돈인것이다.





오백만원 굳었다..... 하하흐핳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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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1 17:05
수정 아이콘
크크크 본인입장에선 정말 섭섭할 만 하죠~

그치만 말씀하신대로 오백만원 굳음 개이득 !
-안군-
18/01/11 17:08
수정 아이콘
오백만원 가즈아~~~~ 는 농담이고요.
좋은 경험 하셨네요. 사실 돈이 있어도 아껴 써야 하는 건 매한가지죠. 몇백, 몇천도 헤프게 쓰기 시작하면 순식간입니다;;
VrynsProgidy
18/01/11 17:17
수정 아이콘
월 10억을 벌어도 에어컨 절전모드를 꼭 켜놓고 자겠습니다.
18/01/11 17:09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500만원.
저는 제목이랑 초반부 보고 어머님이 비트코인 사놓고 잊어버리신줄...
VrynsProgidy
18/01/11 17:22
수정 아이콘
제가 비트코인 막 300 이럴때도 덤덤하게 존버하고 1000 돌파해서 다 손절할때도 묵묵하게 참고 고점까지 멘탈 관리 잘해서 버티는등 진짜 코인 투자자로서 완벽에 가까운 조던급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요.

아쉽게도 코인을 하나도 안 사놨어요... 코인만 사놨어도 억만장자였을텐데
세인트
18/01/11 17:10
수정 아이콘
최근에 피지알에서 본 글중 가장 최고의 글입니다.
타마노코시
18/01/11 17:12
수정 아이콘
강제적금 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원래 적금은 돈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우리의 의지를 은행님께서 멱살잡고 계좌이체 해가서 돈을 묶어두는 것이니까요..
18/01/11 17:13
수정 아이콘
버틸만했으니까 말씀안하신거일수도 무조건 존버가 최고입니다 흐흐
작은빵떡큰빵떡
18/01/11 17:16
수정 아이콘
많이 섭섭하시긴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잊어버리고 계셨다니 뭐 어쩔 방법도 없고, 크크크
500만원에서 치킨값 빼서 드시고 훌훌 털어버리시길... 크크크크
18/01/11 17:22
수정 아이콘
정말 잊이버리고 있으셨겠죠.
500만원 축하드립니다.
사악군
18/01/11 17:22
수정 아이콘
크..추천을 누르지 않고 버틸 수가 없다! 추천!
즐겁게삽시다
18/01/11 17:32
수정 아이콘
해피엔딩 축하드립니다 크크크
하늘하늘
18/01/11 17:33
수정 아이콘
가족에게 배신감 느끼는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텐데 꽁하니 담아두지 않고 바로 이야기하고 푸는 모습이 인상깊네요.
그리고 글이 넘 유쾌해요 ^^
특히 비유가 최곱니다. 와 ~ [러시아 컬링 대표팀이 자메이카에서 VR기기로 평창 올림픽 준비하는듯한 고생길을 택했는지하는 답답함] 이런 비유는
어떤 약을 빨아야 가능한지 넘 재밌어요.
위에 여행관련 비유도 넘 재밌었고
여튼 굳어버린 500만원 자신을 위해 잘 쓰시고 앞으로도 가족과 화목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18/01/12 02:14
수정 아이콘
저도 [여자친구가 삿포로 희귀동물 카페 가서 간식주자는걸 그러지 말고 레온 PC방에서 칼바람 나락에서 포로 간식이나 주는건 어떨까? 라며
진중하고 차분한 설득끝에 대관령 오리농장 꽥꽥이들을 보러가는 노사 대타협을 이뤄내고 3일간 쾌거의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살았는데]
부분에서 터졌습니다 크크크크
18/01/11 17:48
수정 아이콘
레온 고?
미트파게티
18/01/11 17:49
수정 아이콘
저도 집이 꽤 가난했었는데 아들 둘 취업하고 나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 지출 이야기를 듣다보니
돈도 못버는 양반이 대출 이자를 7만원 정도 매달 내신다길래 알고보니 형 등록금+생활비를
보험대출로 메꾸고나서 원금은 손도 못대고 이자만 갚고 계셨더라구요.

한 8백되서 형이랑 나눠서 4백씩 갚았는데...
참 요즘 나이 되서 어머니 등을 보면 왜이렇게 안쓰러운지 모르겠네요.
화잇밀크러버
18/01/11 17:49
수정 아이콘
어머니가 현명하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언뜻 유재석
18/01/11 17:55
수정 아이콘
일어나셨어요?

레온고?
VrynsProgidy
18/01/11 17:57
수정 아이콘
레온고 드립은 피지알에선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유발하는군요 으으

근0 7? 로 대체해보겠습니다.
MissNothing
18/01/11 18:04
수정 아이콘
코카대신 펩시를 마실정도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처음과마지막
18/01/11 18:09
수정 아이콘
결과적으로 오백만원 개이득 축하드려요
사성청아
18/01/11 18:32
수정 아이콘
과거의 나는 고생했지만 현재의 나는 오백만원을 얻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소르바스의 약속
18/01/11 18:39
수정 아이콘
으하하하하 유쾌합니다.
저도 입을것도 못 먹고 먹을것도 못 입고 사네요. 하하하하
만년실버
18/01/11 18:42
수정 아이콘
크크크 나중에 자수성가하시면 이 또한 추억이 될 에피소드겠네요 크크크 10년후엔 '그땐 그랬지..후후' 하시길 바래봅니다.
18/01/11 18:47
수정 아이콘
혹시 제이스님이신가요?
하쿠나마타타
18/01/11 19:14
수정 아이콘
500백만원 개이득!! 굿잡!!!
18/01/11 19:24
수정 아이콘
펩시를 먹었데....너무 슬퍼 ㅠㅠ
ImpactTheWorld
18/01/11 19:58
수정 아이콘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대학교 들어갈때 집이 너무 힘들어서 대학다니는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내고 생활비하고 학자금대출에 기숙사비까지... 매달 이자빠져나가는 날에 신용불량자 될까봐 피말리고 그런 학교 생활을 했었는데 졸업하고나서 알고보니 저희 집은 적당히 먹고살만해졌더군요. 부모님께서는 딱히 제가 도와달라는 말을 안해서 내버려두셨다고... 나는 왜 그렇게 치열하고 궁상맞게 살았던걸까 생각하니 허무하더군요. 500만원 축하드립니다. 저도 제가 돈벌어서 캐리해야되는 집이 아닌 알아서 잘 살고 가끔 용돈 드리면 좋아하시는 집을 선물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염력 천만
18/01/11 20:40
수정 아이콘
르으그?
지니팅커벨여행
18/01/11 20:42
수정 아이콘
멋진 형이네요!
VrynsProgidy
18/01/11 20:52
수정 아이콘
오빤데요ㅜㅜ
지니팅커벨여행
18/01/11 22:43
수정 아이콘
아하.. 글 읽어 내려가다가 까먹어버렸네요.
아무튼 정말 댜단하십니다!
소린이
18/01/11 21:12
수정 아이콘
이정도면 추천게시판 가야 하는거 아닙니까? 가즈아아아
18/01/12 02:12
수정 아이콘
맨날 말투가 당당하셔서 저는 이 분은 당연히 부자 + 본인 능력 풀업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VrynsProgidy
18/01/12 10:09
수정 아이콘
가난하지만 젊고 꿈과 열정과 능력과 외모중에 한가지 인간 이하의 무언가가 있다는것 빼고는 자신 있는 젊은이의 말투라고 생각했는데... 거만한 전문직 부자의 말투로 비춰지다니 윽... 반성을 조금 해봅니다.

다만 제가 PGR에 가입한 시기는 집안의 돈 문제를 거의 다 해결한 이후이긴 합니다. 가입후 한 3개월? 후 쯤 그래서 후련해하는 글도 올렸구요. 하하...
18/01/12 09:46
수정 아이콘
결론은 코카콜라랑 펩시 블라인드테스트하면 구분할 수 있다...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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