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링크: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74608
2편 링크: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74625
2편에서는 주로 70~90년대에 일어난 변화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인간성을 탈피하려는 시도에 관해 살펴보고, 그런 시도가 인간이란 종의 사악함을 재발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앞서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호러물은 장르 특성상 다소의 유행이 있을 뿐 특정한 세부 장르나 흐름이 기존의 흐름을 밀쳐내거나 도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란 종의 사악함을 재발견했다는 말이 인간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저 호러라는 바다에 새로운 강물이 들어왔다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그러나저러나 호러물 이야기는 3편으로 완결됩니다. 3편에서는 2천년대 이후에 나타난 현상에 관해 주로 코스믹 호러와 연관 지어 설명해 보려 합니다.
러브크래프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 호러의 거장. 빛의 톨킨과 어둠의 러브크래프트. 코스믹 호러의 창시자. 크툴루의 아버지. 구세주(Providence)*. 러브크래프트라는 전혀 호러스럽지 않은 이름을 빼놓고 현대 호러에 관해 논할 수 있을까요? 호러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러브크래프트나 코스믹호러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톨킨에 비견되는 이유는 그가 대단한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이 세계관이 향후 판타지와 SF, 호러 장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톨킨이 (비록 완결을 내지는 못했지만) 실마릴리온에서 엄청나게 상세하고 세밀한 세계관을 제시한 반면에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소설에서 인간이라는 하찮은 관찰자를 통한 불완전하고 파편적인 세계관만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러브크래프트가 단명했기 때문이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러브크래프트는 진정한 공포는 미지의 공포(fear of unknown)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독자들이 자세한 내막을 알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보였고, 보이지 않음으로써 말했으며, 말하지 않음으로써 알렸고, 알리지 않음으로써 느끼게 했습니다. 실로 그러했지요. 그런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고, 듣고, 알고, 느끼게 된 걸까요?
(* 러브크래프트는 미국 프로비던스 태생인데, 내가 바로 프로비던스다(I am Providence)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죽을 때 묘비에 새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 크툴루 신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얼핏 보기에는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는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본인의 세계관이라기보다는 그 세계관을 기반으로 어거스트 델러스와 후대의 작가들이 보충한 신화라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
보이지 않는 공포
‘보이지 않는 공포’는 오랫동안 호러나 스릴러 영화를 관통하는 클리셰였습니다. 여러분이 스크린의 왼쪽을 보고 있다면, 마스크를 쓴 살인마는 오른편에서 튀어나올 겁니다. 여러분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그 물체는 절대 여러분을 해치지 않습니다. 침대 밑에는 괴물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여러분을 속일 수 있습니다. 호러 영화는 다른 수많은 클리셰와 함께 이 클리셰를 신나게 우려먹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떤 호러 매체보다도 러브크래프트의 사상을 잘 따라갔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당연하지요. 보이지 않는 공포가 곧, 미지의 공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러브크래프트에 열광하면서도 이런 공포는 한낱 클리셰에 불과하다고 공격할까요? 호러의 거장이 추구했던 건 진정 이러한 ‘말초적 공포’였을까요?
미지의 공포
번역이라는 업에 종사하다 보면 오래전에 죽은 대단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저는 경력이 짧은 초보 번역가이지만, 기억에 남는 문장은 셀 수 없지 많지요. 그중 하나는 서머싯 몸의 “글에는 마력이 담겨 있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fear of unknown을 미지의 공포 즉, 아직 알지 못하는 공포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우리에게 진정 무엇을 전하는지 알아내려면, 그가 말한 fear of unknown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심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낭자하는 유혈이나 매력적인 나신이 거의 나오지 않는 다는 거죠. 진정한 거장답게, 러브크래프트는 훨씬 우아한 방식으로 수술을 집도합니다. 아래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유명한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다이제스트로 만들어 볼까 합니다. 주인공을 여러분으로 바꾸고, 등장인물을 잔뜩 생략한 버전으로요. 스포일러가 잔뜩 섞여 있지만, 부디 한 번 정도는 다들 러브크래프트 맛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포스트로피는 설명을 위해서 제가 임의로 찍은 겁니다. 그 부분에 특히 주의해 주세요.
크툴루의 부름
원문: http://www.hplovecraft.com/writings/texts/fiction/cc.aspx
당신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아가신 종조부(granduncle)의 유품인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이 이상하게 생긴 조각상에는 문어처럼도 보이고, 용처럼도 보이고, 어쩌면 인간처럼도 보이는 괴상한 생명체의 모습과 함께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종조부가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언어학 교수였던 종조부께서는 고대어 해석의 권위자였는데, 한 예술학도가 이 조각상의 내용을 해석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은 꿈속에서 엄청나게 큰 돌덩어리와 하늘까지 솟은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석조 도시를 보고 이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관심이 동한 종조부께서는 이 학생에게 꿈속의 장면을 기록하라고 지시했는데, 학생의 기록에는 크툴루라던가 르뤼에라던가 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고 하네요. 조사를 계속하던 종조부께서는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히스테리가 발발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어떤 경찰이 예술학도가 들고 온 조각상과 비슷한 ‘정체를 알 수 없는(unidentifiable)’의 초록빛이 감도는 시커먼 조각상을 들고 왔고, 그 조각상의 ‘정체를 밝혀달라고’ 했다네요. 종조부는 조각상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작년에 광신도들의 사교 의식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크툴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각상에 새겨진 기괴한 생명체의 정체가 바로 위대한 크툴루임을 알게 되죠. 이 광신집단에 관한 이야기와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유사한 광신집단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이들이 외우는 주문이 에스키모가 외우는 주문과 같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판글루 글루나파 크툴루 르뤼에 가나글 파탄(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죽은 크틀루께서는 르뤼에에 있는 처소에서 꿈을 꾸며 기다리고 계신다(In his house at R’lyeh dead Cthulhu waits dreaming).”
당신은 이 광신도들이 믿는 종교가 고대 종교의 일종이며, 그 정체를 밝혀내면 고고학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광신도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종조부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실마리를 찾던 당신은 우연찮게 호주의 한 일간지에서 난파선 엠마(Emma)와 ‘유일한’ 생존자 요한슨에 관한 소식을 접합니다. 엠마호는 경고(Alert)라는 이름의 중무장한 정체불명의 배에 습격당했다네요. 엠마호의 선원들은 가까스로 경고호의 선원들을 모두 죽이지만, 그 과정에서 엠마호는 침몰합니다. 살아남은 선원들은 경고호에 탄 채 떠났는데, 그 과정에서 지도에 적혀 있지 않은 섬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요한센과 다른 한 명의 선원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죽었는데, 요한센은 그 정황을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제 당신은 유일한 생존자 요한센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고요? 경고호가 찍힌 사진 속에는 이전에 본 두 조각상과 똑 닮은 조각상이 있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노르웨이로 돌아간 요한센을 뒤쫓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 도착한 뒤에 요한센이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되죠. 요한센의 미망인은 그가 두 명의 인도인 선원과 만난 후에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요한센이 쓴 원고를 당신에게 전해줍니다. 당신은 그 원고를 읽습니다. 지도에 없는 섬에 관한 묘사가 나오네요.
“악몽의 시체의 도시 르뤼에(nightmare corpse-city of R'lyeh)는…역사 뒤편의 ‘헤아릴 수 없는(measureless)’ 억겹의 세월 전에 어두운 별에서 흘러내린 광대하고 끔찍한 ‘형상(shape)’에 의해 세워졌다. 바로 이곳에 크툴루와 그의 무리가 끈적거리는 녹색 납골당 안에 숨은 채로 누워 있다. '헤아릴 수 없이(incalculable)' 오랜 세월이 지난 끝에, 마침내 예민한 사람들의 꿈속에 공포를 퍼뜨릴 생각을 보내면서. 그리고 충직한 자들에게 해방과 재생을 위한 순례에 나서라는 긴급한 신호를 보내면서.” 당신은 깨닫습니다. 요한슨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이시여,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기록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르뤼에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던 선원들이 도시를 탐험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크툴루를 해방시킨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 요한센과 한 선원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목숨을 잃고 맙니다. 두 사람은 경고호에 탄 채 탈출하려 하지만, 크툴루는 두 사람을 쫓아옵니다. 요한센은 전속력으로 경고호의 뱃머리를 크툴루의 머리를 박아버립니다. 그리고 크툴루가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도망칩니다. 경고호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동료 선원은 그 과정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원고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당신은 요한센의 원고를 상자 안에 넣은 채 크툴루 석상과 종조부의 원고 옆에 놓습니다. 당신은 소망합니다. ‘이것들이 다시는 합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제정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쓴 원고에서 당신은 이미 두 원고를 합쳐놓았음을요. 당신은 우주가 공포를 품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봄의 하늘마저도 여름의 꽃마저도 ‘결국에는’ 당신에게 독이 될 뿐이겠지요. 그렇지만, 당신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알고, 광신도들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요. 당신은 이제 곧 종조부와 불쌍한 요한센의 뒤를 따르겠지요. 크툴루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태양이 어렸던 시기부터 햇볕을 막아주던 깊고깊은 바위 틈 안에 도사리고 있겠지요. 크툴루는 르뤼에가 다시금 가라앉으면서 어두운 심연 속에 갇혔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싸움과 광기에 물들은 비명으로 가득했을 테니까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그 누가 알겠습니까?’ 떠오른 것이 가라앉을 수 있다면, 가라앉은 것은 떠오를 수 있을 텐데요. 언젠가는 그 날이 찾아오겠지요. 당신은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다고요!(but I must not and cannot think!)’ 당신은 기도합니다. 만약 당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당신의 유언을 집행할 사람이 엉뚱한 짓을 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 이 원고를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해주기를’요.
어리둥절하실 분들께, 섭섭하실 분들께, 화가 나셨을 분들께
이전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접해 보지 못하신 분들은 어리둥절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야? 뭐가 무섭단 거지? 라는 말씀이 바로 나오실 수 있을 듯해요. 여러 장치를 이용해 긴장감을 고조하고, 분위기를 통한 공포를 전달하는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백미인데 요약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습니다. 다소나마 재미를 느끼신 분들은 부디 원서나 역서를 읽어주세요. 감히 말하건대, 러브크래프트는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섭섭하신 분들이 많으실 듯합니다. 네크로노미콘 얘기도 빠지고, 그레이트 올드 원 얘기도 빠지고, 온갖 등장인물들의 얘기도 빠졌으니까요. 죄송합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대로 번역해서 피지알에 올리겠습니다. 화가 나셨을 분들도 많으실 듯해요. 타자여야 할 주인공을 여러분으로 바꿔버리면서 러브크래프트가 전달하는 주제를 크게 훼손했으니까요. 그리고 번역을 하면서 너무나 노골적인 어휘를 채택했기에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전달법을 살리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시각보다는 몰입감이 필요했으며, 구조를 조금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역시나 언젠가 제대로 번역해서 만회하겠습니다.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여러분께서는 이미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알게 되셨을 겁니다. 애초에 사랑만들기 선생님께서는 자기 뜻을 전하시는데 저 같은 하찮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니까요. 러브크래프트가 말한 진정한 공포, fear of unknown은 단순히 미지의 공포, 아직 알지 못하는 공포라고 번역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알아서도 안 되고, 알 수도 없으며, 알려서도 안 되는 공포입니다. 크툴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고, 끝을 모를 정도로 강력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존재에 관해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하찮은 인간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원전에서는 크툴루의 묘사가 훨씬 자세히 이루어지며, 크툴루나 르뤼에에 관한 단서를 주는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도 등장합니다. 저는 이 모든 부분을 생략했습니다. 이들에 관한 묘사나 설정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다른 러브크래프트 팬분들께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레이트 올드 원이니 아우터 갓이니 엘더 갓이니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끝을 모를 정도로 광대하고, 무한한 힘을 지닌, 절대로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인간은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스믹 호러의 정체입니다. 코스믹 호러는 인간을 우주의 주인공 자리에서 끌어 내립니다. 우리는 별이 타고 남은 먼지에 불과합니다(we are stardust). 우리 태양은 언제라도 꺼질 수 있는 하늘에 걸린 수많은 등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 은하는 광활한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주는 언젠가 열죽음(heat death)을 맞이할 운명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명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주적 차원의 잔혹함입니다. 이 잔혹한 사실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학설도 있습니다.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우주가 죽는 다른 방법에 관해 논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우주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학설도 있긴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갈까요? 제 말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요. 길을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개미는 자신이 밟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나 있을까요?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 개미보다도 하찮은 존재입니다.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강력한 존재들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정도의 존재이니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봐야겠죠. 그러니 우리는 이들에게 ‘사악하다’느니 ‘선하다’느니 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우린 저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저들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원히요. 이런 강대한 존재들이나 우주 그 자체가 주는 공포는 우리가 여태까지 살펴본 공포와는 그 속성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는 싸이코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하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에일리언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하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크툴루는 그저 존재합니다. 우주는 그저 존재합니다. 이들의 존재는 사실 저나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르뤼에가 떠오르기나 할까요? 우주가 인류보다 먼저 멸망할 리가 있나요? 하지만 우리는 이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근원적인 불안에 떨게 됩니다. 우리는 이토록 나약한 존재이니까요. 싸이코는 쓰러뜨릴 수 있지만, 크툴루는 멈출 수 없습니다. 에일리언으로부터는 달아날 순 있지만, 잔혹한 우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경제학자가 한 말처럼,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코스믹 호러물은 그 죽음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그 삶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요. 크툴루와, 이 잔혹한 진실과 맞닥뜨린 자는 모두 죽거나, 미친 다음에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재와 먼지로 만들어졌고, 재와 먼지로 돌아갈 운명입니다.
호러물 이야기는 본래 3편에서 막을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머싯 몸이 말했듯이 재주가 부족한 저자는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네, 제 이야기입니다. 3편에서 분량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본래는 르뤼에 얘기부터는 그냥 두세 줄로 처리할 생각이었는데...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문에서 낚은 셈이 되었는데, 제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치이니 굳이 수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나중에 보고 반성 좀 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암튼, 이게 다 크툴루님 때문입니다. 전 그저 부름에 응답했을 뿐이에요. 4편에서는 이러한 코스믹 호러가 왜 영화라는 메이저 장르에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지, 러브크래프트가 왜 2천년대 후반에 와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는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4편의 이름은...생각 좀 해볼게요. 암튼, 호러물 이야기는 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