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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17 17:43
으음... 마이클 센델 교수는, 이 주제 하나로 그 긴 책을 썼는데......;;
'정의' = '절대선' 이라고 한다면, 그런건 진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의' = '보편타당한 올바름' 정도로 정의(define)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사회적 협의가 없다면, 법, 규칙, 도덕, 예절... 모든게 다 무의미해지는 거니까요.
15/12/17 18:22
결국은 정의(justice)를 뭐라고 정의(define)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거죠.
제 생각에도, 전 우주를 관통하는 '완벽하게 절대적인 선' 같은건 없거나, 있어도 인간이 알 수 없는 수준이라 생각하지만, 사회 구성원들 간에 뭔가 어렴풋하게 '이러저러한게 옳은 것 같아' 라고 생각되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거든요. 아마도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정의 = 신의 뜻)이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 인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여러가지 연구가 이뤄져서, 그게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5/12/17 17:50
결국엔 진화생물학이 법 형성에 개입해야 할 수밖에 없을 듯요.
윤리를 형이상학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진화론적으로 보면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죠. 사람의 자유의지라고 하는 건 결국 영혼이나 신의 마음이 아니라 생물학적 뇌의 활동일 뿐이니까요.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선' 따위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그때그때 공동으로 지켜야 할 도덕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야겠죠.
15/12/17 18:08
정의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선은 없어도 '그 시대에 나름 합리적인 수준의' 선은 있다고 봅니다.
15/12/17 17:59
없다가 아니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살아가는데 정의가 필요한 건 최소한 인간의 사고 영역 내에서는 사람뿐이니 사람 사이에 필요한 일이라 거창하게 영혼이나 신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신을 끌어들이는 순간 그건 철학이 아니라 신앙이니까요. 철학은 결국 인간을 향하지 않으면 개소리일 뿐이고 그 인간을 향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들 스스로 각자의 삶에서 각자 정의를 정하고 정의에 따라 삶을 개척하는거죠. 누구는 돈이고 누구는 명예고 누구는 이타적 삶이고. 그게 자유의지고, 자유의지의 합의에 의해 삶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 메커니즘 자체가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서 없는건 아닙니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순 있어도요.
15/12/17 18:06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의' '옳음'에 대해서 말은 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에 대한 정의는 제대로 못 내리고 있었네요.
그냥 어릴 때부터 느낀 막연한 일반화일 뿐이죠.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또 그게 꼭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근데 생각해보면 인류의 많은 개념이 그런 것 같아요. 막상 엄밀히 정의해보라 하면 정의 못 내리는.
15/12/17 18:09
그 정의를 논의할 때 말씀하신 일반화라는 것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제가 말한 사회적 합의 메커니즘입니다.
일반적인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정의죠. 뭐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를 말할때 쓰이는 다양한 미화어구나 수식어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나의 정의를 남들에게 설득시키고 교육시킬 때 필요한 것이고요.
15/12/17 18:13
제가 말한 일반화는 사회적으로 구성원들이 모여서 일반화하는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개개인이 자체적으로 뇌에서 도덕관념을 개념화하는 것도 포함입니다. 자유의지가 어떻게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하느냐의 뇌 속 메커니즘은 과학적으로 중요한 연구대상이겠죠.
15/12/17 18:18
교육과 자신의 생존의 편의성에 합치하느냐의 문제 두 가지 말고 다른게 적용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다 체험의 문제고요.
체험해서 옳다고 느껴지는 게 정의 같습니다. 옳다의 문제는 거의 교육의 산물이고요. 도덕관념을 개념화 하는 방법은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다. 라는 것으로 모든것이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그 개념을 나와 자신의 집단의 이익으로 국한시키냐 이웃과 인류 전체적 화합으로 승화시키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15/12/17 18:22
메피스토님께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교육과 생존의 편의성에도 다양한 양태가 있겠죠. 그걸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게 과학자 몫이겠죠. 과학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체험이란 것도 막연한 개념이구요. 막연한 걸 엄밀히 해야죠.
15/12/17 18:26
철학과 과학은 다른 학문입니다.
뇌과학으로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것은 밝힐수 있을지언정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하는 것을 밝힐 수는 절대로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과학적으로 밝힐수 있지만 왜 살아가느냐는 절대로 과학의 영역이 아닌 것 처럼요. 다시 말해 심리학적 문제입니다. 통계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걸 과학적으로 엄밀화 한다라고 하는덴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그 통계적인 각자의 정의의 합의점이 바로 사회적 합의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인간의 생각을 일으키는 기초 크기가 얼만한지는 몰라도 전기신호니 전하만 하다면 글쎄요. 그것을 엄밀하게 관찰할 수 있을까요.
15/12/17 18:32
심리학 역시 과학 아닌가요?
그리고 대니얼 데닛처럼 철학과 과학을 같이 생각하는 학자들 많아요. 진화론은 단순히 과학에 그치지 않고 철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철학과 과학의 경계는 이제 허물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어떻게 생각하냐"를 알면 "왜 그렇게 생각하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죠.
15/12/17 18:27
나름 정의구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직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시공을 초월한 진리가 있고, 그 진리의 산물로서의 정의(justice)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많은]이들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규칙들이 있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굳이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해야 한다면, 그 즈음 어딘가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어떠한 삶이 조금 더 나은 삶인가... 과연 이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조금더 많은 이들을 위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할 정도로 인류가 아직 명석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제대로 된 답 - 인류 차원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 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5/12/17 20:05
사람들 사이에 쓰는 사람들이 만든 단어인데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는게 당연하죠.
생명활동도 물리적으로 보면 일련의 전기자극 반응이겠죠. 그런데 그래서요? 그렇다고 해서 생명의 가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와우 게임머니는 와우 안에서 가치를 가지고, 다른 게임에서 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와우 골드의 가치가 와우안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와우 계정의 캐릭터는 10010101010101정보 조합의 저장일 뿐이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조합으로 움직이는 캐릭터와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지는 않던가요? 물 단백질 지방 약간의 무기질로 이루어진 신체와 그 안의 유기적 결합과 전기신호를 통해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실존을 넘어 쓸데없는(?) 형이상학적개념에 대한 정보까지 생성하고 교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나왔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사람의 욕망도 감정도 이성도 복잡한 전기자극에 불과하다 허망하다가 아니라 반대로 고작 전기자극을 가지고 이런 복잡한 정신, 자아를 가지는 생명체가 만들어졌다는 데서 저는 경이를 느낍니다.
15/12/17 20:17
동감합니다!
정신이 꼭 영혼의 작용이 아니더라도(실제로 아니죠) 물질적인 뇌의 작용일지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솔직히 더 경이로운 거죠. 야~ 어떻게 이런 단순한 물질들이 합쳐져서 이런 창발적 현상을 내는 것인가? 하구요.
15/12/18 00:29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포커치는 사람들끼리 포커 룰을 정하고 치는데, '포커 룰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죠. 사람들끼리 살면서 사는 룰을 정하고 사는 것, 그 와중에 그 룰이 최대한 공평하도록 만드는 것, 그 정도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가 아니라 무에서 올라온 존재라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는, 지금 우리가 성취한 것들만 해도 굉장한 것이고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5/12/18 01:29
정확히 얘기하면, [인간에 앞서는] 정의는 없는거겠지요. 이 지점이라면 논조에 동의할 수 있지만, 단순히 [정의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의를 기호나 합의의 산물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곹인간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관계 속에서 느슨한 형태로 호혜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기로 합의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정의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는 두가지 공백이 생깁니다. 첫번째는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두번째는 일반적 경향이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는 층위로 확장될 수 있는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추구하는가, 즉 정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대해 혹자는 공리주의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또다른 누군가는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시민성]을, 누군가는 [이 세계의 파괴를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것]을 이야기하겠지요. 이 부분은 롤스가 정의론을 주창한 이래로, 아니 그 이전부터 첨예한 논쟁이 있어왔던 영역입니다. 그런점에서 이것에 대해 정설을 논하는건 난센스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것이 두번째 공백을 이야기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는 다른 이야기로 누구는 또다른 이야기로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그 정의가 보편성-혹은 더 나아가 절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는 점이지요. 이런 것들이 정의를 정의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점으로 작용하지만, 여전히 저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정의라 일컬어지는 상호작용은 언제나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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