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당신은 당신이 태어난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테죠. 국가란 단순히 정치적 권력에 의해 생겨난 조직의 하나일 뿐, 그리고 내가 우연히 그 조직이 통치하는 영토에서 해당 국적을 가진 부모(중 한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에 태극기가 펄럭거리는 느낌을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전 한쪽에 속하는 편은 아닙니다. 굳이 꼽자면 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냉소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긴 하지요. 하지만 누군가에는 부모가 아픔뿐인 이름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존경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이 가진 기억과 경험이 그에 대한 생각을 만들고 또 바꿔나가기도 하는 것이겠죠.
저도 태어난 이래로 근 이십 오 년간을 한국땅에서 거의 지내다가, 길다면 긴 시간을 학업을 이유로 지금까지 타향살이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팔자에 이렇게 말도 서툰 곳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미국 유학파가 되어있더라고요.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스크린에서 말하던, 그런 비스름한 대학에서 지내고 있는데 제가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김태희, 김래원은커녕 낡다 못해 닳아버린 청바지 자락에 목 주위가 잔뜩 늘어난 스웨터를 입고 며칠째 깎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을 하고 복도를 배회한다는 거겠죠.
각설하고, 여간 그렇기에 이곳 게시판이나 인터넷 댓글난을 통해 많은 한국 안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그리고 토설하는 어떤 감정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쉽게 독설하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분노하게 되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난 대선에는 무려 6시간을 운전해서 30분짜리 투표를 하고 다시 여섯 시간을 차를 타고 내려오는 투표 대장정(?)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어진 선거 결과와 또 다시 이어지는 정권의 행태에 대해 분노했고, 또 그로 인해 희생된 많은 생명들 때문에 슬퍼하고도 했었고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내가 이 나라 때문에 이렇게 고민해야 할까를 또 고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몇 년을 이어왔습니다. 이어진 고민의 끝에는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혹은 내가 자라온 땅을 잊을 수 없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슬픔과 분노가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감정에 대해 어떤 측면에서는 "국뽕"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 다른 측면에서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근본적인 연민과 어떤 연결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관계없어 보일 이야기긴 하지만 제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년배의 사촌이 한 명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 동부에서 사업을 하고 있죠. 그렇지만 그 녀석은 한국에 몇 번 가보지도 못했지만, 한국에 대해 항상 어떤 "뿌리"가 연결된 감정이라는 걸 느낀다고 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제가 타국 땅에서 제가 충분히 현지화가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에 제 사촌이 말한 어떤 연결의 감정이 조금씩 명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그들의 방식에 따라 일하고 생활한다고 하더라도 내게 바뀌지 않는 어떤 나의 정체성이 있고, 그리고 그런 정체성이 유래한 곳이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 사촌도 그의 부모님인 제 삼촌과 숙모에게서 물려받은 그런 한국인의 정체성으로부터 뿌리가 연결된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자기가 원래 있어야 할 토양으로부터 다른 곳에 옮겨심어 져서 그 뿌리가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때에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한국 안에서 많은 분이 느끼시는 분노와 냉소의 감정도 이와 비슷한 데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타국에 사는 저는 강제로 식목을 당하는 과정에서 그 뿌리의 실체를 느꼈다면, 한국 안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이라는 사회가 뿌리내리고 있던 본디 토양이 파헤쳐져 가면서 그 뿌리가 드러나게 된 점이겠죠. 그 토양은 분명히 민주주의와 소통, 한국인의 정과 특유의 (e-sports?) 문화라는 여러 가지 양분들을 머금고 있든 나쁘지 않았든 땅인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많은 분이 이 게시판 안과 밖에서 소통하고 분노하고 냉소하는 감정들이 한국이라는 사회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나와 상관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다지 큰 문제를 느끼지 않죠. 제가 마치 트럼프가 제가 사는 마을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요. 오히려 제가 좀 더 바라는 건,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모으고 결집하고 실체화할 방법을 생산적으로 고민하는 필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이런 요구를 전달할 수 있을까, 기존 정치인이 힘들다면 어떻게 새로운 우리의 대표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우리의 요구를 정당하게 관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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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부분은 전에 뻘글로 적은 적이 있었어요. 정말 큰 문제인데 이 문제를 여당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그걸 연세드신 분들은 우리는 옛날에는 그거보다 더한 전쟁통에도 다 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맞장구 치시니 그게 문제죠. 세상이 바뀌고 아이 키우는 기준도 바뀌었는데 그걸 모르시니 말이죠. 오히려 그나마 당신들 손주들 봐주시는 어르신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하시니 그게 고생스럽고 어렵다는걸 아시는데, 그렇지도 않으신 "어버이" 분들은 참, 뭐라고 해야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