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고 하는 것은 늘 그것을 교묘하게 우회하고자 하는 인간의 머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서도 소형 픽업트럭을 놓고 이런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태의 출발은 1960년대에 유럽 여러 국가들이 미국에서 수입되는 닭고기에 대해서 관세를 물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미국산 닭고기에 관세를 매긴 것은 당연히 자국의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일방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러자 미국 측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1963년 12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여러 가지 물품에 대해서 역시 보복 관세를 물리도록 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미국으로는 닭고기가 수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똑같이 할 수는 없어서 그 대신 다른 수입품목들에 관세를 물리도록 합니다. 이것 때문에 관세 폭탄을 맞게 된 제품들은 브랜디, 공업용 전분, 공업용 덱스트린, 그리고 소형 픽업트럭이었습니다.
소형 픽업트럭과 닭고기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도 없었지만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회사들이나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은 이러한 대통령의 조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존슨 대통령 입장에서도 64년에 있을 대선에서 이들 단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었던 거지요. 보복조치라는 핑계로 은근슬쩍 미국 내 자동차업계들을 도와주는 조치가 이루어진 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픽업트럭에는 25%의 관세가 붙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형 픽업트럭의 가격은 풀사이즈 픽업트럭이나 거의 비슷해 졌습니다. 거기다가 휘발유 가격도 떨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너도 나도 풀 사이즈 픽업트럭을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나요? 1973년 중동발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두 배로 뛰자 미국 사람들이 이제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소형 픽업트럭이 잘 팔릴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64년에 시작된 수입 소형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가 그때까지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들은 곧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허점을 찾아내기에 이릅니다.
우선 픽업트럭을 통째로 수입하는 게 아니라 앞의 차량 부분과 뒤의 적재함 부분을 분리해서 수입을 합니다. 이럴 경우, 각각의 차량과 적재함은 완성차가 아니라 자동차 부품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관세부과대상에서 제외가 되었습니다. 서로 별개의 경로로 완성차를 위한 부품이라고 하고 수입을 해 와서는 미국 내에서 그 두 부분을 딱 조립만 하면 바로 소형 픽업트럭이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회사들은 토요타나 닛산 같은 일본 회사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소형 픽업트럭에 관세 매길 때 그렇게 좋아했던 GM, 포드, 크라이슬러 역시 일본 회사들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이 일에 참여를 했습니다. 이 소위 말하는 빅 쓰리들은 일본 회사와 계약을 맺어서 일본에서 "부품(!)"을 제조하고 그것을 미국으로 수입하도록 해서 미국 시장에 소형 픽업트럭들을 공급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들여온 차들은 일단 미국에 들어오면 포드, 닷지, 쉐보레의 엠블럼을 달고 시장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런 차량들을 몇 종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 이스즈 모터스에서 만든 쉐보레 LUV
일본 마쯔다에서 만든 포드 Courier...
미쓰비시에서 만든 닷지 Ram 50...
편법 아니냐고요?...편법이면 뭐 어떻습니까? 이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회사들과는 달리 이런 와중에도 정직하게 완성차 형태의 차를 수입했던 회사도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 회사인 스바루(Subaru)가 그런 회사였습니다. 스바루에서는 브랫(Brat)이라는 완성차를 미국에 수입해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바루 역시 이 차를 수입하면서 소형 픽업트럭에 부과되는 관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스바루에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브랫은 완성차 형태로 들어왔지만 짐칸에 좌석이 두 개 장착이 되어 있었는데 스바루측에서는 이것 때문에 이 차는 픽업트럭이 아니라 "다목적 승용차(!)"라고 주장을 했고 그렇게 수입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브랫에게는 소형 픽업트럭에 부과되는 관세가 붙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짐칸의 두 좌석은 나중에 손쉽게 "탈착(!)"이 얼마든지 가능했지요...
스바루의 "다목적" 승용차(!) 브랫..."뭘 번거롭게 따로따로 수입하고 그래...한꺼번에 해도 되는데..."
이분들 일 참 잘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