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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0/22 09:08:22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죽어가는 콜벳을 살려라!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스포츠카 가운데 콜벳(Corvette)이라는 차종이 있다고 합니다. 콜벳은 지금도 쉐보레에서 생산해서 판매하고 있는 2인승 스포츠카입니다. 미국에서는 젊음, 자유, 스피드, 미국적인 것, 뭐 이런 것을 상징하는 자동차로서 열혈 팬들을 가지고 있는 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판매가 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찾아보니 미국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모델이 약 55,400달러 (약 6천 5백만 원) 정도 하는 것으로 나오네요. (마눌님 결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금액대로군요...거기다가 2인승 컨버터블이라면 더더욱...--;;;)



2016 Corvette Z06


그런데 이 콜벳이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카로 남지 못하고 탄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자유진형의 맹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되었고 미국인들의 자존심은 높아질 대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역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람들은 품질만 좋다면 얼마든지 비싼 차에도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미국 사람들을 만족시킬만한 품질을 가진 스포츠카를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지요.

반면에 유럽의 스포츠카들은 당시에도 높은 품질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의 스포츠카들이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럽에서 활성화 된 많은 레이싱 대회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스포츠카 생산 분야에서는 이런 레이싱 대회들을 통해서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이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게 다시 양산차의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품질 향상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콜벳은 이전에 라살의 디자이너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제너럴 모터스의 할리 얼이 이런 유럽의 스포츠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회사의 엔지니어들에게 개발을 지시하면서 탄생한 차였습니다. 얼은 이제 미국인들도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스포츠카를 가질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할리 얼은 1952년에 콜벳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해서 당시 GM의 회장이었던 할로우 커티스와 쉐보레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에드워드 콜에게 선 보였고 세 사람은 다음 해에 있을 모토라마(Motorama)라고 하는, GM이 자신들의 차들을 가지고 진행하는 모터쇼에서 이 프로토타입을 공개해서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즉, 모토라마에서 대중들의 반응이 좋으면 이 프로토타입을 양산하기로 한 것이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1953년 1월 17일에 열린 모토라마에서 단연 최고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바로 콜벳의 프로토타입이었던 EX 122였습니다. 유려한 곡선의 매끈한 차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모토라마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에 한껏 고무된 쉐보레는 1953년 12월에 정식으로 콜벳을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콜벳을 그리면서 말입니다.



1953년형 Corvette...다 좋은데 차문은 어떻게 열지?...


콜벳의 출시 타이밍 역시 더없이 좋아보였습니다. 한국전을 끝으로 긴 전쟁의 시간이 끝나고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는 베이비붐 시대가 개막했고 스포츠카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도 점점 높아져가는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품 자체에 있었습니다. 쉐보레에서 만든 콜벳은 스포츠카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엔진이 문제였습니다. 초기 콜벳에 들어간 엔진은 평범한 6기통짜리 블루 플래임 식스(Blue Flame six)였습니다. 이 엔진은 이름은 그럴싸했지만 성능은 그렇게 대단할 게 없는 엔진이었습니다.

변속기도 정확한 변속을 위해서 스포츠카라면 응당 들어가야 할 수동 변속기가 아니라 성능이 떨어지는 2단 자동 변속기였습니다. 출발해서 시속 60마일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11초나 걸렸는데 이는 평범한 세단이 내는 성능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콜벳의 최초 모델은 스포츠카라고 불리기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디자인적인 실수도 있어서 차문의 외부에 손잡이가 없어서 차문을 열려면 사람이 차문 위로 몸을 숙여서 차 안쪽에서 차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어차피 컨버터블이라 측면이 개방되어 있으니 그냥 그렇게 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을 잘 배려한 세심한 디자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한 마디로 비유하자면 콜벳은 아이폰이라고 주장하는 옴니아였던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가격이라도 착했으면 모를까 콜벳의 가격은 3,254달러로 책정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쉐보레에서 팔고 있던 패밀리 세단 가격의 2배였습니다. 히터와 라디오는 옵션이었고 그걸 달려면 차 가격은 3,500달러는 넘어가야 했습니다. 컨버터블의 탑은 차체와 완전하게 들어맞지가 않아서 비가 오면 빗물이 차체로 들어왔습니다. 일부 차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 바닥에 구멍(!!!)을 뚫어 배수구를 만들기도 했지요. 차는 “당연히” 안 팔렸고 대리점에는 팔리지 않는 콜벳들이 부모 잃은 강아지마냥 처량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자신들을 사갈 구매자들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경쟁사인 포드에서도 썬더버드(Thunderbird)라는 2인승 스포츠카를 출시하면서 콜벳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1954년 상반기에 포드의 썬더버드 판매량이 제너럴 모터스의 콜벳 판매량을 앞질렀습니다.



1954년형 포드 썬더버드 컨버터블...


누가 봐도 콜벳은 실패작이었습니다. 이에 제너럴 모터스는 콜벳의 단종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때 죽을 위기에 처한 콜벳을 구하기 위해 제너럴 모터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던 한 사람이 전면에 나섭니다. 그의 이름은 던토프(Duntov). 그는 러시아계 부모를 가진 벨기에 출신의 엔지니어로서 나치 독일을 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자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1953년 모토라마에서 콜벳의 프로토타입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제너럴 모터스에 입사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Zora Arkus-Dontov...


콜벳이 단종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은 던토프는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는 편지에서 "지금 콜벳을 단종 시키게 되면 외부적으로 실패를 자인하게 되는 셈이고 제너럴 모터스 제품 전체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또 만약 라이벌 포드사가 썬더버드로 우리가 실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성공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는 포드에게 자신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되어 장기적으로도 회사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던토프는 "그들(포드)이 우리를 아프게 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던토프의 주장에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진들은 콜벳의 단종 계획을 보류하고 그에게 콜벳의 개발을 이끌도록 기회를 줍니다. 한마디로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직접 한 번 해봐!"라는 것이었지요. 때마침 콜벳의 엔진 문제를 해결해 줄 해결사도 등장합니다. 쉐보레의 수석 디자이너 콜이 드디어 8기통짜리 엔진을 개발해 낸 것이었지요. 1955년형 콜벳의 모델부터 6기통 대신 이 새로운 8기통짜리 엔진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의 8기통 엔진은 포드의 썬더버드의 엔진보다 더 가벼웠고 파워는 오히려 더 뛰어났습니다. 비록 3단짜리였지만 수동 변속기도 장착되었습니다.

던토프는 56년형 모델에서는 더 많은 개선을 이루어냅니다. 더 좋은 서스펜션을 장착해서 예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브를 돌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엔진 성능도 더욱 개선했습니다. 콜벳의 판매량은 2년 전에 비해서 다섯 배가 상승했습니다. 그는 1957년 모델에서는 새로운 연료분사시스템을 개발해서 엔진의 마력수를 283마력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옵션으로 4단 수동 미션도 장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는 콜벳을 가지고 유럽의 레이싱 대회에도 참석하여 인상적인 성능을 선보였습니다. 다 죽어가던 콜벳이 완벽하게 소생한 것이었습니다.



1963년형 Corvette Stingray...Corvette들 가운데서도 희소성이 매우 높은 차라고 알려짐...



L88 Corvette...


던토프는 그 뒤로도 은퇴할 때까지 더 나은 콜벳의 개발과 생산을 위해 헌신을 했고 현재는 "콜벳의 아버지(Father of the Corvette)"로 불리면서 콜벳을 사랑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1996년 그가 사망했을 때 조지 윌이라는 칼럼니스트가 "만약 당신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좋은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글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스포츠카 콜벳은 유럽에서 온 한 이민자 엔지니어가 없었더라면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을 뻔 했습니다. 한 사람의 굳은 신념과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역사 속에 잠깐 등장했다가 곧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뻔 한 명차를 살렸다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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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약선인
15/10/22 09:18
수정 아이콘
명품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것도 아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기도 이런것을 좀 더 생각 해 봤으면...
몽키.D.루피
15/10/22 09:26
수정 아이콘
53년형 디자인이 멋있긴하네요..
Neanderthal
15/10/22 10:59
수정 아이콘
매끈하게 빠지긴 했죠...단 성능은...ㅠㅠ...
Love Fool
15/10/22 10:03
수정 아이콘
신형 스팅레이 파주에서 한번 봤는데 포스가 장난아니더군요. 미국 현지가격 7만달러 대비 병행수입 가격도 어마무시 하지만...
도들도들
15/10/22 10:28
수정 아이콘
콜텍인 줄 알았습니다..
Philologist
15/10/22 10:48
수정 아이콘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시는 겁니까 출처를 말씀해 주시죠 크크
Neanderthal
15/10/22 10:53
수정 아이콘
[Engines of Change: A History of the American Dream in Fifteen Cars]라는 책인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더군요...흐흐...
15/10/22 10:56
수정 아이콘
53년식이 굉장히 세련됐네요.
Neanderthal
15/10/22 11:00
수정 아이콘
디자인은 놀랄 정도로 잘 빠진 것 같습니다...
-안군-
15/10/22 11:20
수정 아이콘
스팅레이는 삼성 자동차 박물관에서 실물을 봤는데... 으와... 아름답습니다. 진짜.
Neanderthal
15/10/22 11:32
수정 아이콘
저도 제주도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을 우연히 갔다가 위에서 언급한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15/10/22 12:07
수정 아이콘
V8 V8 V8!!! 전 언제 살 수 있을까요... 4기통 똥차 따위 ㅠ
제 어머
15/10/22 12:44
수정 아이콘
현재의 콜벳보다 미국스러움이 녹아있는 옛날 콜벳들이 간지네요
페마나도
15/10/22 12:51
수정 아이콘
정말 미국 머슬카는 유럽 스포츠카와는 다른 매력이 있죠.
미대륙을 개척한 미국인들의 차라서 그런지 뭔가 야성미와 자유가 느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갠적으로 Mustang Shelby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Corvette도 요 몇년간 침체기를 털어버리고 장족의
발전을 하기 시작해서 가끔 길에서 신형 모델을 보면 우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Neanderthal
15/10/22 13:03
수정 아이콘
머스탱도 제가 읽었던 책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던 중요한 차더군요...
제 처남 아들(초4)의 드림카이기도 하고...--;;;
15/10/22 14:25
수정 아이콘
53년형은 영화처럼 점프해서 착 하고 타는 거 아닙니까 크크
Neanderthal
15/10/22 18:26
수정 아이콘
그럼 저는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못타겠네요...ㅠㅠ...
Madjulia
15/10/22 14:38
수정 아이콘
친구중에 190이 넘는친구가있는데.. 제차를 줘도 못탑니다. 제 차가 좀 작아요.
그놈차는요. 머스탱입니다. 그 등치가 차에서 내릴때의 위압감이란 정말 딱 어울리더군요.
미국차는 그맛으로 타는거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큰차를 안좋아해서 제가 타거나 살일은 없겠지만. 간지는 진짜.. 머스탱 까마로 콜뱃 3총사 확실히 미국머슬카만의 맛이 있습니다.
후천적파오후
15/10/22 20:05
수정 아이콘
닷지 챌린저가 갖고싶습니다 엉엉
tannenbaum
15/10/22 20:21
수정 아이콘
해군 출신이라 그런가 자동차보다는 호위함을 먼저 생각하고 들어왔네요 헤헤
스포츠카치고는 저렴하네요.
하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순간 억단위가 훌쩍 넘어가겠지.... ㅜㅜ
루크레티아
15/10/22 22:45
수정 아이콘
멋쓸카는 그야말로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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