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셨나요? 윤복이가 구두를 닦으며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때로는 쫓기기도 하는 그 이야기 말이에요. 전 그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걸 읽을 나이가 아니었고, 나중에 만화책으로 나왔을 때 읽었어요. 윤복이가 거지들에게 붙잡혀 고생하는 걸 보면 ‘음 역시 등 따뜻한 집이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데. 저는 어른들 없이,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 모습만이 머리에 남았어요.
사실, ‘가출, 혹은 집에서 떠나는 것’과 ‘여정’은 어린이문학에서 아주 흔한 소재죠. 단순히 보고 ‘집이 최고!’라고 생각할 뿐이라면 그 이야기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오지는 못했을 거예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말고 그때 정말 좋아하던 책이 한 권 더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꼬마천사 다이시’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신시아 보이트의 ‘여정’이에요. 정신이상이 걸린 엄마가 쇼핑몰 자동차에 다이시 남매를 버리고, 다이시는 다른 주에 사는(미국이 배경이니 어마어마하게 먼) 이모할머니에게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공사 중인 집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토마토를 실컷 따고는 품삯도 못 받고 쫓겨나고, 그렇지만 때로는 모닥불을 피우고 엄마가 알려준 노래를 돌아가면서 부르는, 그런 이야기죠.
“역시 꿈이 아니었어.” ‘꼬마천사 다이시’에서 다이시의 남동생, 제임스가 길거리에서 하루를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하는 말이에요. 사실 집은 일상생활 그 자체잖아요. 그곳에서는 먹고 자고 눈을 뜨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언제나 비슷하게 흘러가요. 집은 단순히 콘크리트나 나무로 지은 그 건물만이 아니라 거기 안에서 나와 늘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의미하는 것 같아요. 윤복이의 아버지가 돈을 벌러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윤복이의 집은 더 이상 집이 될 수 없었어요. 엄마가 떠나버리고 아예 집이 아닌 쇼핑센터 한복판에 버려진 다이시와 제임스, 동생들에게도 집은 사라졌어요. 집밖에 발을 디디고 나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고, 뜻밖의 모험속에서 아이들은 두려워하거나 여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거나, 그전까지 이어왔던 삶과는 어쩐지 단절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지요. 아마, 제가 동경했던 건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어요. 그때 선생님에게 무척 미움을 받았죠. 엄마는 촌지 같은 걸 주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한마디로, ‘택도 없었’죠. 그 동네가 그리 잘 사는 동네가 아니라 서울 평균으로 보면 중간에서 밑쪽이었던 우리 집이 잘 사는 축이었죠. 그러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제가 촌지를 탁탁 드려야 하는데 촌지는 무슨, 남들 다 한다는 케이크 상자 하나도 하지 않았거든요. 전 사소한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면 야단을 맞곤 했어요. 그것도 아이들 많은데서 의자에서 일어나서요. 선생님이 무서우니까 준비물이고 뭐고 괜히 더 못 챙기게 되더군요. 정답을 아는데도 대답을 못 하고요. 아이들도 선생님이 누구를 싫어하는지 알게 된 다음부터 제게는 별로 친절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청소함 구석에서 더러운 실내화 하나가 나왔어요. 그건 분명 제 거가 아닌데도 다 제 거라고 하더군요. 제 책상 위에 올려진 더러운 실내화. 모두 칠칠맞은 제 거가 확실하다고 말하는 더럽고 냄새나는 실내화. 전 두고 온 준비물 가져온다는 핑계로 책가방을 맸어요.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삼 교시 쉬는 시간, 나만 책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파트 화단에 뱀딸기가 있더라고요. 어린이 식물도감에서 본 건데, 저거 독 있다던데. 뱀딸기 먹고 콱 죽어 버릴까. 전 책에서 ‘독이 있다’라고 하면 ‘끔살’ 정도로 이해했어요. 동화책에서 독 먹고 ‘아 배가 조금 아프군’ 하는 거 보셨어요? 이게 다 학습 효과라니까요. 하여튼, 뱀딸기 앞에서 좀 망설이긴 했지만 전 오래 살고 싶어서 결국 무시하고 집에 갔죠.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러 나간 집은 텅 비어있었어요. 어차피 저녁 때까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심장이 뛰었어요. 그래도 침착하게 옷장에서 소풍 배낭을 꺼냈어요. ‘꼬마 천사 다이시’에서 다이시가 짐을 챙기는 것처럼요. 걔네는 샌드위치도 만들고 그러던데 집에는 빵이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전 샌드위치를 별로 안 좋아했고요. 냉장고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아침에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이번 김치가 참 맛있게 됐지?’ 살얼음이 살살 얼어 있는 김치 맛이 기가 막혔거든요. 소풍 배낭에 김치통 하나를 넣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한국인은 김치 힘으로 산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다른 건 안 챙겼어요. 제일 중요한 걸 챙겼으니까요. 더 이상 가져가기엔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했고요.
방에 들어가서 돈이 얼마나 있나 봤어요. 심부름 값으로 받은 걸 다 그러모아도 이천오백원밖에 없더라고요. 제겐 꽤 큰돈이었지만 이 돈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되었어요. 다이시는 미국에 살아서 낚시도 하고 쇼핑백도 들어주고 그러던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그게 안 될 거 같았거든요. 저는 족대는 다룰 줄 알았는데 낚싯대는 못 만져보기도 했고요. 게다가 아빠가 잡은 민물고기에서는 흙탕물 맛이 났어요.
그때 머리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요, 윤복이처럼 구두 통을 챙기는 거예요. 제 주 수입원이 엄마 아빠 구두 닦아 주는 거였거든요. 전 신발장에서 구두 통이랑 구두약이랑 구두 닦는 수건을 챙겨서 배낭에 어떻게든 집어넣었어요. 이제 이천오백원이 떨어지면 구두닦이로 살면 되는 거예요. 학교는 야간 학교를 다니면 되겠죠. (집에 굴러다니는 야학 책을 뜻도 모르고 읽어 대서 야간 학교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거든요.)
배가 잔뜩 부른 배낭을 어떻게든 잠근 뒤, 어깨에 멨어요. 좀 무거웠지만 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다이시랑 윤복이처럼요. 하얀 체육복은 벗지도 않고 여벌옷은 단 한 벌도 없이, 김치와 구두 통만 가지고서 그렇게 모험이 시작되었어요.
왠지 길어질 것 같아서 적당한 곳에서 끊고 갑니다.
다음 글에서 마무리지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