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 술자리에서 멋지게 가오를 잡은 몇일 뒤 드디어 문돌이는 목표 금액을 채웠다. 그렇게나 바랐던 타입원을 입을 생각에 왠지 심장이 두근 거린다. 아x다스 트랙탑에 본 x치 모자 거기에 켈빈 x라인 백팩 등 그 시대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다 구비했지만 타입원은 갖추지 못해 늘 마음에 걸리던 문돌이였기에 내일의 쇼핑이 더욱 기대가 되는 터였다. 물론 여유만 있다면 타입원 청자켓도 세트로 사서 청청간지를 내뿜고 싶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쉽지만 자켓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그러던 중 문자수신음이 '띵동'하고 울린다.
"뭐하노? 집이가?"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이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낸 사실에 문돌이는 조금 의아하다. 사실 문돌이와 그 녀석은 관계가 조금 애매하다.
술만 먹었다하면 항상 어깨동무를 하고 '친구야'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지만 술이 깨고 맨정신에는 어색한 사이. 친구들이랑 다같이 보면 친하지만 둘이서 따로 만나거나 연락은 주고 받지 않는 사이. 혹시나 서로 할 말이 있으면 다른 친구를 통해서 하는 사이. 그 녀석이랑 둘이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릴때면 굉장히 어색하고 뻘쭘해서 속으로 빨리 친구들이 와줬으면 하는 사이다. 말하자면 가끔 친할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안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 집이다. 니는?"
"나도 집, 저기 미안한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부탁?? 문돌이의 가슴이 철렁한다. '설마.... 에이 설마....' 하면서 답장을 보낸다.
"무슨 일 있나? 무슨 부탁인데"'
"진짜 미안한데 한 십만원만 빌려줄수 있나? 진짜 급해서 부탁 좀 할께. 3일뒤에 꼭 줄께 진짜"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걸까? 문돌이의 심정은 복잡해져 간다. 빌려주기 싫지만 그러자니 그 녀석이 자기를 쪼잔한 새끼라고 흉 볼거 같고 빌려주자니 내일 옷을 사러 갈수 없고...무슨 핑계를 대야 그럴듯하게 보일까 고민을 하던 그 순간 문돌이는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이 정말 비겁하고 졸렬하게 느껴진다.
'저 녀석은 몇일전에 술자리에서 십만원이란 돈을 아무렇지 않게 냈는데 왜 나는 십만원에 벌벌 떠는 것인가?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3일뒤에 준다는데 왜 대범하게 빌려주지 못하는 것인가? 그래 쿨하게 빌려주자.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것이라고 어디서 본거 같다. 대범하게 빌려주고 나의 쿨함과 대범함을 널리 알리자.' 생각을 마친 문돌이가 답장을 보낸다.
"아 미안 답장이 늦었제? 갑자기 택배가 와가지고 잠깐 나갔다 왔다. 계좌로 보내줄까? 어차피 좀 있다 은행 들려야 되는데"
있지도 않은 택배를 핑계삼아 빌려줄까 말까하고 고민한 사실을 숨기는 문돌이. 허세부리는건 역시 잊지 않는다.
"그래주면 고맙지. 진짜 3일뒤에 꼭 줄께"
"알겠다. 천천히 줘도 되니까 계좌나 불러도^^"
"아니다 진짜 3일뒤에 줄께 고맙다 진짜 부산은행 xxx-xx-xxx......"
문돌이는 대충 옷을 입고 은행으로 가서 그 녀석의 계좌로 입금을 한다. 만나서 빌려줘도 되는데 왜 굳이 문돌이는 수고스럽게 은행으로 가서 입금을 하였을까? 가까운 부산은행이 없어서 농협에서 타행이체 수수료까지 줘가며. 그 해답은 아마 무통장 입금 영수증을 지갑에 고이 넣는 문돌이의 행동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문돌이는 법적 근거를 확보 한것이다.
'3일 뒤에 주겠지. 안주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근데 사람새끼가 아닐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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