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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7/20 19:46:45
Name Realise
Subject [일반] 너네 아버지는 에어콘을 장식용으로 샀나보다.
요즘 한창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절전이 이슈다. 매년 여름 이맘때만 되면 절전이 항상 이슈가 된다. 여름과 절전, 바로 이 두 단어의 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바로 '에어콘'  이놈일 것이다.  하...진짜 에어콘 없으면 이 여름 어떻게 보내나 싶을 정도로 정말 대한민국의 여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목숨걸고 지켜야 할 소중한, 바로 그런 문명의 산물이 아닌가.  

근데 이 에어콘이라는 놈은 정말로 크나큰 문제가 있다. 바로 '전기세',  아무생각없이 틀어놓다 보면 정말 말 그대로 전기세 폭탄을 맞는다. 하.. 맘놓고 틀어댔던 오피스텔 살던 시절이 좋았지...  일반적인 가정용 전기를 쓰는데 있어서 에어콘 사용량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관리해야 한다. 이 에어콘 사용량에 대한 관리를 자칫 잘 못 했다가는 기도하면서 영접해야할 치느님에 대한 신앙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만큼 정말 크고 중요한 일이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봤다. 나는 28살 먹은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냥 엄마,아빠라고 부른다. 고칠려고 해봤지만 그냥 포기했다.

"엄마, 요즘 안덥나? 경남에는 비도 안온다는데..."
"아이고, 안덥기는, 진짜 집안에 있어도 찜통이다. 좀 움직이다 보면 진이 다 빠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그럼 에어콘이라도 켜지 왜? 집에 에어콘 있잖아?"
"아 글쎄 니네 아버지는 에어콘 틀 줄을 모르는 사람인갑다. 무슨 에어콘을 집안에 장식할려고 샀나 내가 진짜 너네 아버지 에어콘 트는 꼬라지를 못봤다. 이렇게 날이 더운데 틀 생각도 안한다. 그냥 하루종일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지낸다. 아이고 내가 참"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을 하는 내 친구들에게 아버지를 소개할때에는 항상 '옛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옛날 사람' 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고집스럽다, 꽉막혔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속칭 꼰대라고들 이야기한다.  이 꼰대라는 단어는 아들인 내가 남들에게 소개하면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최대한 부드럽고 연하게 표현한다고 기껏 생각해낸 단어가 '옛날 사람' 이다.  

이러한 '옛날 사람' 들의 근검 절약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집요하다.  이쑤시개도 반으로 부러뜨려서 4번을 사용하고 버리며, 휴지도 반으로 나눠 두번 사용한다. 쓰고 남은것은 무조건 어디든지 보관해서 다음에 찾아서 쓴다.   요즘 국가는 매일같이 앵무새처럼 전력량이 부족하다고 절전,절전 외치고 있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니 국가를 위해서 전기를 아끼는 것일 수도 있다. 옛날 사람들이 가지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지금의 젊은 세대보다는 월등히 높으니까.하지만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 에어콘을 틀지 않는 진짜 핵심적인 이유는 전기세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사실 이제 에어콘 전기세, 휴지, 이수씨개 같은 것을 아낄 만큼 부족하시지도 않고, 주위에서 부러움을 받을 만큼 풍족하다면 풍족한데 여전히 저렇게 아끼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저 역시나 '옛날 사람' 이라고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시고 회사에서 퇴근하면 무조건 칼같이 집으로 돌아오시는 사람이다. 게다가 형제중에서도 막내에 시골에 아버지와 어머니 단 둘만 사시기 때문에 집으로 초대할  손님도 없다. 말 그대로 집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근데 그럼 에어콘은 왜 비싼 돈주고 집에 사 놓으신 거지? 정말 엄마 말대로 장식용으로 산건가?


6월 초에 일요일에 부모님 집에 갔었다.   점심시간에 가기로 했었는데 잠시 일이 생겨서 저녁에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다. 아들 점심때 오면 삼계탕 먹을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이렇게 늦게 왔냐고.나랑 대화도 잘 안하실려고 하셨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약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한테 달라붙어서  
"아 아빠 미안, 오늘 잠깐 할 일이 있어서 헤헤헤, 대신 오늘 자고갈게"
라고 살랑살랑 꼬리치며 넘어갔었고, 아버지는 치킨이나 시켜 먹자며 치킨을 시켜서 저녁을 먹었다.

초여름이었고, 저녁이었다.  매우 덥다고 할만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 무덥고 찝찝한 그런 날이었다.

그 때 배달 온 치킨은 시원한 에어콘 바람에 오자마자 식었다.
내일은 집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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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0 19:57
수정 아이콘
재밌는게 가족, 친지 주변인물중에 이런분들이 꼭 에어컨은 비싼 1등급으로 사시더라구요
바람모리
13/07/20 19:59
수정 아이콘
아들 도착할 시간맞춰서 미리 틀어두시고..
그렇죠.. 뭐..
아케르나르
13/07/20 20:02
수정 아이콘
대개 그렇죠. 오십대 이상인 분들은 대부분 우리가 이야기하는 '옛날 사람' 의 범주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거의 유일하게 그런 신념(?)을 꺾으시는 때는 당신 아들, 딸들을 위할 때 고요.
13/07/20 20:06
수정 아이콘
저희집인듯...
10년동안 똑같은 집에서 에어컨 3대 바꿨는데
3대 합쳐서 20번도 안 돌렸을겁니다.....

저도 처음엔 제발 좀 틀자고 그러다가 20년을 넘게 집에서 사실상 에어컨 없이 살다보니
그러려니 하고 선풍기 끼고 삽니다
tannenbaum
13/07/20 20:15
수정 아이콘
아부지 보고 싶다... 뭐 그리 급하시다고 빨리 가셨는지
방과후티타임
13/07/20 20:20
수정 아이콘
저희집은 좀 반대네요. 겨울에 난방이고, 여름에 에어콘이고간에 아버지는 펑펑 쓰려고 하고, 어머니는 줄이라고 싸우고......크크;;
자기 사랑 둘
13/07/20 20:22
수정 아이콘
저희 부모님은 에어콘을 어찌 그리 좋아하시는지...
주말에 피서가자고 해놓고 집 가니...수박들고 아버지 사무실로 에어콘 바람쎄러~ 크크크
저는 개인적으로 에어콘 바람을 싫어해서 선풍기 틀고 삽니다~
하카세
13/07/20 20:32
수정 아이콘
제가 그래서 집에 있던 컴퓨터를 가게에 뒀습니다. 가게에서는 에어컨이 항상 틀어져있어서 -_-;;
박하선
13/07/20 21:07
수정 아이콘
저희 집도 십여년 넘게 에어컨 거의 안켜다가 재작년즈음해서 그냥 막 돌립니다..
네.. 여름엔 제가 그냥 전기세 냅니다..
Go_TheMarine
13/07/20 21:58
수정 아이콘
저희집도 에어컨은 거의 월 1회 정도 트는듯.....
답답하더군요
Paranoid Android
13/07/20 22:28
수정 아이콘
에이그냥시원하게지내고 몇십만원 낼란다 하고틉니다 ㅜ ㅜ
모지후
13/07/20 22:31
수정 아이콘
저희집은 5-6월에 덥다고 해서 에어컨 샀는데,
결국은 옛날 선풍기를 돌리는 중입니다(.....)
자기 사랑 둘
13/07/20 23:02
수정 아이콘
훈은 요즘 기량이 절정에 오른 느낌이에요
(롤 챔스 보다가 엉뚱한곳에 댓글달았는데 삭제가 안되네요.)
13/07/21 00: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근데 보통 에어컨을 더운 시간대(2~4시즈음)에 1~2시간씩 매일틀면 일반가정집에서 얼마가 나오나요 ? 20만원넘게 나오는지?
물론 누진세라서 다른 가전기기까지 다 포함해야겠지만..
자기 사랑 둘
13/07/21 00:52
수정 아이콘
평소에 전기세가 별로 안나오는 집이면 크게 문제될건 없는데
어느적정선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완전 바가지 요즘나옵니다.
누렁이
13/07/21 01: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입니다. 아버지 보고 싶네요.
13/07/21 01:55
수정 아이콘
지금 오랫만에 집에 왔는데 찡하네요..
저희 집도 오늘 오니 에어컨에 커버가 그냥 씌워져 있어요 크크 모델도 제 기억에 15년은 된듯?
그렇게 아끼시는 아버지가 작년에 너무 더워서 투정을 부렸더니 제 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달아 주셨습니다-_-너무 더워서 물량도 없고 한여름에 사서 엄청 비싸게 주셨어요.. ㅠ
설치하고 나서 하시는 말씀 에어컨 트니까 시원하고 좋긴 좋구나
그럼 아빠도 좀 틀고 살어
아빠는 별로 더위 안 타잖아
안 타긴 뭘 안타 거짓말 아빠도 더위 엄청 타잖아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맞아 아빠는 옛날 사람이니까 ^^하고 웃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자식이 온다니까 언제 오냐고 몇 번이나 전화해서 기다린다고 얼른 오라고 하시는 아버지
부모가 되어야 어른이 되나 보네요
13/07/21 14:18
수정 아이콘
저희 집도 거실 에어컨 산 지가 10년 가까이 된 거 같은데 튼 적이 손에 꼽을 정도네요.
부모님이랑 할머니께서 워낙 검소하셔서 아주 특별한 일 없으면 거의 안 트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익숙해져서 집에서 별일 없는데 큰 에어컨 틀기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네요. 대신 안방에 있는 작은 에어컨을 자주 틉니다.
종이사진
13/07/21 15:44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께서는 손주가 집에 오면 카페 수준의 냉방을 하십니다.

평소엔 어림없죠 크크
안산드레아스
13/07/21 18:17
수정 아이콘
에어콘은 저희 집도 장식용.. 그런데 그 당시 최고가.. 무리해서라도 엄청나게 큰 대형 에어콘이었죠.
고장 안났을려나?
천진희
13/07/21 23:23
수정 아이콘
굳이 에어컨 틀 필요 있나? 절약하면 좋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올해 여름은 다르네요. 지금 있는 포항이나 고향인 전주나...에어컨을 안 트는건 정말 살인행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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