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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1/03 11:22:48 |
Name |
The Siria |
Subject |
World E-Sports Games 16인의 시인에 대한 단상(2) - Sweet〔Saint〕, 천정희 |
파멸이라는 단어는 잘 나가던 어떤 것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멸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자신의 재능을 함부로 낭비하는 모습이 파멸을 이끄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유혹에 빠져 자신을 잃으며 파멸로 가는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파멸.
치명적인 파멸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멸이 워낙 극적이니까요.
단 한 순간에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모습.
한 순간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모습.
그리고 그 남아있는 처참한 풍경.
혹자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오는 것이 파멸이고, 혹자에게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다가오는 것이 파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얻고자 하는 모습이 파멸의 모습으로 비춰질 때도 있는 것이며,
때로는 유혹에 모든 것을 맡기고 몽환에 빠지는 모습이 파멸로 비칩니다.
치명적인 유혹.
파멸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치명적인 유혹을 다루고 있으며, 뻔한 스토리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인기를 끄는 스토리입니다.
잠시라도 주는 애정과 틈에 빠져들면, 어느새 그는(혹은 그녀는) 덫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덫에 걸려서 자신이 덫에 걸렸음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아니, 어쩌면 그는(혹은 그녀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자신이 유혹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요.
치명적으로 걸려 있는 유혹에 그대로 있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발버둥쳐도, 어차피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체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달콤함.
그렇습니다.
덫에 걸리게 하기 위해 쓰는 전형적인 유혹의 기술이 달콤함이지요.
그러나 그 달콤함은 겉으로는 참으로 예뻐 보이고, 첫 맛은 참 좋습니다.
한 번 맛을 보면, 빠져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러나 그 끝 맛은 참으로 씁쓸합니다.
자신이 덫에 걸려서 모든 것을 잃는 그 황량한 풍경의 맛.
독하고, 쓴 맛입니다.
달콤한 유혹은 유혹을 행하는 당사자에게는 냉정한 판단의 모습이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덫을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달콤한 사람.
지금까지 유혹의 이야기를 주절거린 이유는 아마 그의 모습이 유혹과 많이 관련이 되는 것 같아서 입니다.
그가 경기로 보여주는 자신의 시는, 유혹의 노래입니다.
유혹의 노래를 듣는 당사자는 잠시라도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남는 것은 황량한 폐허의 모습뿐입니다. 그가 유혹의 노래임을 알아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상대를 철저하게 파멸시킬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잠시 그의 노래가 소리가 가늘고, 곡조가 힘이 없다고 해서, 그의 노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유혹의 노래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적은 목소리로 부른 노랫가락 속에 상대는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덫에 걸려서 황량한 파멸의 풍경을 되 뇌일 뿐이지요.
달콤한 노래를 부르며, 그의 칼끝이 상대의 머리를 겨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종의 서늘함도 스칩니다.
달콤한 사람. 무서운 사람.
달콤한 유혹의 세레나데, 치밀한 파멸의 미미지악(微微之樂).
그의 시는 그래서 치명적입니다.
아름다운 곡조이지만, 그것은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아름답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이별을 말하는 노래가 이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픈 것처럼, 그의 시는 그가 갈구하는 대상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잠시라도 그의 시에 귀를 열어주면, 그것은 파멸이라는 선물로 둔갑해서 찾아갑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무서우며, 달콤하지만, 아주 쓰디쓴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들리는 인어의 노랫소리에 귀를 막아야만 배가 벗어나는 것처럼,
그의 노래에 잠시라도 귀를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면, 도망치라고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잠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여도, 그것은 모두 허상일 뿐입니다.
파멸을 시키려는 그저 허상일 따름입니다.
달콤하다? 그에게는 참으로 달콤하지만, 보고 듣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달콤하지만, 그가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에게는 달콤하지 않습니다. 지긋지긋한 악마의 노래일 뿐이지요.
그래서 세상이 그에게 악마언데드라는 이름을 붙이나 봅니다.
스컬지의 언어로 사랑을, 참으로 파멸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지요.
서정시인이지만, 그의 시가 사람을 파멸시키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황금 비녀로 머리를 다듬으며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
노래는 신비로와 사공의 마음을 사로잡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넋을 잃은 뱃사공
뱃길 막는 암초는 보지 못하고
언덕 위만 바라보네.
끝내 사공과 그 배는 물결에 휩싸였으니
로렐라이의 옛 이야기는 노래의 요술.」
스컬지의 언어로 그는 치명적인 사랑을 갈구합니다.
어쩌면 이기적일 수도 있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파멸의 미학을 갈구합니다.
그의 노래를 막을 오르페우스의 수금을 가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오르페우스의 수금이 있더라도, 노래는 계속 아름답게 파멸을 말하니, 악마의 연가는 계속 울려 퍼지네요.
스컬지의 언어로 아름답게 퍼지는 ‘달콤한’ 사랑의 노래.
Sweet〔Saint〕 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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