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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3 06:37
참 좋아하는 철학자이긴 한데, 사실 명제에서 가치 명제를 이끌어내는 데는 이사람도 딱하니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한 것 같진 않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결론이었습니다. 기독교적 윤리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고 나니 위기감을 느껴서 뭔가 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던 것 아닌가 싶은데, 사실 상대적인 걸로 끝이어도 아무 문제는 없지 싶어요. 내가 나를 극복할 생각이 없다는데 왜 님이 나한테 위버멘쉬가 지향점이라고 명령함? 이런 느낌이랄까요... ??? 해서 저는 히피나 비트족이 더 와닿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제 개인 취향일 뿐, 보편타당한 지향점은 아니고요. 저한테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19/10/03 06:53
아무래도 가치가 상대적이라면 내가 스스로 존재해야 할 가치를 창조자의 태도로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라 이러한 자기극복의 원리를 제시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니체가 자살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니체가 혐오하는 것은 타성적으로 이유를 묻지 않고 관습에 따르는 자세인데. 자살을 한다고 해도 위버멘쉬로서 스스로 주체자의 입장으로 행한다면 상관이 없죠. 하지만 자기극복이 없다면 타성에 휩쓸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인데.. 님이 스스로 왜 명령함? 이라고 질문하는 태도가 이미 위버멘쉬의 지향점하고 어떤 면에서 닮아있는거라..
19/10/03 20:29
타성에 젖어 사는 건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 이런 류 주장의 효시가 이 양반이긴 하죠. 어디까지나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약간 응? 스럽다는 거지, 19’세기 철학자로서 니체의 위대함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19/10/03 07:29
조금 위험한 번안이지만 한국에 빗대어서 설명하면 제법 적실성을 띨 것 같아서 대충 끼적여 보자면..
니체 세대 이전까지, 그러니까 헤겔로 대표되던 세대까지만 해도 독일 지식인들의 기본 정서는 프랑스를 배우자, 프랑스를 이기자입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에게 개발려봤고 그러면서 금마들이 얼마나 선진적이고 트여 있는지도 겪어 봤거든요. 아무리 미워도 나폴레옹 법전과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식 제도와 사상과 문화가 독일보다 훨씬 우월하단 건 부정할 수가 없던 겁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것'을 만들고 구축하고 프랑스식 방식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합니다. 양자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죠. 결국은 베끼든 배척하든 프랑스에 대한 대자적 존재로서 독일의 정체성을 형성한 거고 머릿속엔 온통 프랑스만 가득 찼던 겁니다. 마치 과거의 한국인들이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일단 일제면 마쓰시타면 코끼리표 밥솥이면 무조건 금돼지 팔아서 사갖고 베끼고 그러다가도 닭도리탕 같은 건 일제 잔재니 용납할 수 없고 다 뜯어 고쳐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것처럼요. 이럴 때 흥하는 담론은 '국개론'이죠. 독일 국민이 지금 개새끼니까 빨리 정신 차려서 계몽주의 배워서 자유주의 배워서 프랑스 같은 '선진국' 따라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대적인 조류 자체가 엄청 통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이고 그렇죠. 우리의 소원은 통독~ 꿈에도 소원은 통독~ 근데 니체 세대엔 독일이 프랑스를 개작살 내버립니다. 황제를 포로로 잡고 파리를 포위 끝에 점령하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남북통일한 직후에 한일 무역전에서 일본이 관광업 망했다고 GG치고 항복 선언한 거죠. 그러면 그동안 열등감 속에서 언제 분출될지 기다리고만 있었던 386식 민족주의와 국뽕이 일제히 분출 되는 겁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어쩌구 하면서 자아도취에 젖는 거죠. 워낙 잘나가니까 귀족적이고 도회적인 퇴폐적인 예능과 쾌락이 산업적으로 형성되며 너도 나도 퇴행적인 모양새를 보이고요.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고루한 기독교식/동유럽식 전통이 퇴행적으로 남아 있죠. 말하자면 도시 한쪽에는 나영석 식 포르노 예능을 보며 힐링힐링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농촌 가보면 양반 가문이니 쌍놈 가문이니 돼먹지도 않은 옛날 소리 해대면서 정감록이니 예수니 뭐니 하는 미신과 전통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모두를 뒤덮는 시대 정신이 독일 국뽕 코인이었던 거고요. 그게 니체가 맞닥뜨린 세태였던 겁니다. 니체 같은 사람 입장에선 개같은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이 독립적인 판단의 단위가 되는 '개인'이 없어요. 다 죄다 나영석 예능 보는 개돼지나 월드컵 4강 신화 가지고 딸잡는 국뽕러나 통일 이룩하고 만주땅까지 우리가 먹어야 한다는 환빠나 예수천국 불신지옥 부르짖는 개독이나 뭐 그런 천박한 작자들이 기득권 쥐고 있다고 갑질을 하고 있던 것이죠. 이런 NL 비슷한 휴거 비슷한 갬성으로 가득한 미개한 천것들하고 얽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던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남에 의지해서 빌빌대지 않는, 집단과 이념과 자본과 기성관념 등등 개돼지식 노예도덕에 놀아나지 않는 진짜배기 개인이 되어야 한다, 남의 욕망에 세뇌 당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에서 달아오르는 진솔한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거죠. 그 모든 걸 어절 단위로 응축한 게 결국 위버멘쉬고 권력의지인 건데, 결국 개념 자체가 거창한 게 아니라 핵심은 갬성에 있는 거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거 아니면 죽음 진짜~ 주독프군 주한미군 몰아내자 이딴 거 말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인 겁니다. 이게 결국 따지고 보면 '예술가 마인드'인 거고요. 정치병자들 몰아내고 인생 자체를 예술로 빚자는 캐치프레이즈의 출발이죠.그런 면에서 니체는 개돼지는 취급 안 해주는 '(정신적)귀족/계급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주의자로서 자유주의자이자 '누구든지 남에게 선동당하지 않고 자기 원하는 바를 충실히 행하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로움이다'는 명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민주주의자기도 한 거고요. 우리 모두 오연하고 고상한 개인이 되자는 것이죠. 실상 언급하신 비트닉들이 니체 워너비였다는 점까지 고려하고 보면 니체가 독자에게 전해주는 해방적인 의미는 좀 더 재미있게 뜯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9/10/03 09:30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철학이란 주제가 아쉽게도 글쓰는데 고생만 하고 반응은 없는 심심한 것임에도 이렇게 끝까지 연재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한 가지 저도 의견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잘 알고 하는 말은 아니니,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니체의 방법론 중에 낙타의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에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낙타의 단계는 타인의 명령에 대해 복종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자기가 참을 수 있고 견디어내는 것을 시험할 뿐입니다.' 첫 번째로, 여기서 저는 '타인의 명령'이 아니라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낙타란 것이죠. 다만 이를 훈련하기 위해, 타인의 명령을 수단으로 할 수는 있겠고요. 두 번째로, 저는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기뻐한다는 점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왜 기뻐하는지도 중요하다 생각하는데요. <차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봤습니다. 의지에 대해 써주신 글과 연결하여 보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만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어 있는, 강하고 참을성 있는 정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정신의 강함과 무거운 것과 가장 무거운 것을 갈망한다. 가장 무거운 것이란 무엇인가? 참을성 있는 정신은 이렇게 물으며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무거운 짐을 싣기를 바란다. 그대 영웅들이여, 내가 짊어짐으로써 나의 강함을 기뻐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참을성 있는 정신이 묻는다.'
19/10/05 09:48
그것도 좋은 해석인 것 같네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참을성 있다는 것을 통해 정신의 강함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스스로 무거운 관념과 규율을 생성해서 자신을 억누르게 한다? 그런 해석이신 것 같은데, 씨앗님의 말이 니체의 낙타정신을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 도 같습니다.
19/10/05 10:31
아뇨. 아쉽게도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거운 관념과 규율을 생성해서 자신을 억누르게 한다?' 관념, 규율, 억누름 세 단어 모두 안 맞다고 생각해요. 그건 니체를 칸트식으로 해석하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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