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립은 자(字)가 공연(公淵)입니다. 형주 무릉군 임원현 출신이지요. 유비가 형남 일대를 지배하며 형주목으로 있을 때 벼슬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사태수로 임명되었는데 미처 서른 살도 되기 전이었지요. 태수란 관직이 관질 2000석에 달하는 고위직일 뿐만 아니라 지역의 군사권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젊은 나이에 태수가 된 요립이 얼마나 높게 여겨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단 유비만 그를 높게 본 건 아니었습니다. 손권이 보낸 사신이 제갈량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형주의 여러 선비들 중 재상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가 누구냐고 말이지요. 이때 제갈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방통과 요립은 초(楚) 땅의 훌륭한 재사로 제왕의 업을 도울 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요립은 방통에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신뢰받았던 요립은 215년, 손권이 형주를 공격해 오자 태수의 신분으로 군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그럼에도 유비는 그를 심하게 문책하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219년에 한중왕이 되자 요립을 시중(侍中)으로 삼습니다. 시중은 천자를 수행하면서 질문에 대답하는 관직인데 업무는 고되지 않은 반면 명예는 높고 향후 출세할 가능성이 높아 사람들이 선호하였던 자리입니다. 그러나 딱히 실권이 있지는 않았지요. 이후 유선이 즉위하자 장군(將軍)에 오르고 장수교위(長水校尉)로 전임됩니다.
그런데 요립은 워낙 젊어서부터 인정받았던 탓인지 자아가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자신의 재주와 명성이 제갈량에 이어 둘째 간다고 자부했지요. 그런데 자신의 지위가 아주 높지는 않은 데다 별다른 권한마저 없으니 성질이 뻗쳤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갈량을 찾아가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내가 어째서 여러 장군들 가운데 있어야 합니까! 경(卿)으로 삼지는 못할망정 기껏해야 장수교위 따위라니요!”
경(卿)은 이른바 삼공구경(三公九卿)이라 일컫는 한나라 시대 최고위 관료에 해당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장관쯤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왜 이따위로 대접하느냐고 대 놓고 짜증을 낸 거죠. 제갈량도 아마 기가 찼을 겁니다. 심지어 고명대신인 이엄조차도 아직 경(卿)이 되지 못했는데 네가 어떻게 경이 되겠느냐고 대답하지요. 그러나 요립의 불만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커지기만 했습니다.
결국 요립은 그 불만을 크게 터뜨립니다. 북벌을 앞두고 승상부의 인사담당 부서장에 해당하는 서조연(西曹掾) 이소와 동조연(東曹掾) 장완이 그를 방문했을 때, 요립은 다음과 같은 장광설을 늘어놓습니다. 과장과 비약을 섞고 양념을 좀 쳐서 의역했습니다.
[ “바야흐로 군사들이 멀리 출정하려 하고 있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예전에 선제께서는 한중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급히 동쪽으로 달려가 오나라와 형주의 세 군(郡)을 다투었지. 그리고 끝내는 그 세 군을 고스란히 내주었다네. 관리와 병사들만 헛되이 수고롭게 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오히려 하후연과 장합이 파 땅 깊숙이까지 쳐들어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익주마저 통째로 내줄 뻔했지. 그리고 결국 한중을 차지하니 그때는 어떻게 되었지? 그 사이에 형주의 관우가 죽고 병사들은 몰살했으며 형주에 이어 헛되이 상용마저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야. 그러할진대 승상도 그런 꼴이 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는 게야.
물론 그게 선제 폐하의 잘못만은 아니야. 관우가 어리석었던 탓도 크지. 자신의 용맹만 믿고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인솔하다가 자멸한 것 아니겠나. 하지만 그를 책망할 수만은 없어. 관우도 그저 범속한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상랑이나 문공처럼 말이야.
왜 그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느냐고? 그야 물론 모두 멍청이들이니까 그렇지!
문공은 치중(治中)이랍시고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제대로 기강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지. 상랑은 대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무려 장사(長史)씩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예전에 마량과 친해서 그런 게 아닌지 모르겠군. 승상이 마량과 친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까 말이야.
아. 맞아. 곽유지도 있군그래. 그가 시중(侍中)이라니 참으로 말세로군. 그 자는 남이 뭘 시키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할 줄이나 알지, 큰일을 경영하지는 못 할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작자를 중히 쓰다니 승상의 속내를 당최 알 수가 없군.
하기야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지. 왕련을 생각해 보게. 지금은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혔지만 살아 있을 때도 형편없는 작자였어. 철이니 소금이니 하면서 각박하게 세금이나 거두며 백성들을 괴롭히던 자가 아닌가 말일세. 그런데 그 따위에게 무려 승상장사를 맡겼으니 나라의 꼬락서니가 이 따위가 된 게지! 만사에 통달한 현명한 선비는 이렇게 골방에 처박아 놓고 그런 허수아비 같은 소인배들만 높게 임용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앞날도 아주 어둡구먼!”]
자신을 발탁해 준 유비부터 까기 시작해서 뒤이어 관우를 까고, 다시 상랑과 문공을 까고, 곁들여서 마량을 까고, 또다시 곽유지를 까고, 죽은 왕련까지 연달아 까 버리는 말솜씨가 가히 대단합니다. 깜짝 놀란 이소와 장완은 승상부로 돌아가 제갈량에게 이 일을 고하지요.
그간 숱한 불만 제기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있었던 제갈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의 중임을 맡은 사람들을 싸잡아 헐뜯으면서 내부 결속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대 황제인 유비마저 비난하는 등 도가 지나쳤던 까닭입니다.
제갈량은 유선에게 표를 올려 요립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유선은 그를 서민으로 폐한 후 산골짜기로 유배를 보내지요. 이로써 한때 방통과 견주어질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던 요립은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립은 제갈량이 자신을 다시 불러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갈량의 부고를 듣자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이 처지를 벗어날 수 없겠다고 한탄하지요. 결국 그는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피터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사람들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지위까지 승진하는 바람에 결국 무능을 극대화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즉 능력 있는 직원이 승진한다 해서 반드시 능력 있는 상사가 되는 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립이야말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인 셈입니다. 젊었을 때의 그는 그야말로 눈부신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이십 대의 나이에 태수까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요립은 막상 위기에 빠지자 자신의 의무를 팽개치고 도망쳐 버립니다. 그야말로 무능의 상징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한심한 작자가 어떻게 그토록 인정받았었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사건은 요립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뛰어난 인물인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비록 지위는 높으나 실권이 적은 자리에 배치합니다. 그러나 요립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인해 너무나도 비대해진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제갈량을 찾아가 자신의 지위가 왜 이 따위냐고 항의하였고,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러내 놓고 불만을 폭발시키면서 어깃장을 놓기까지 합니다. 그게 얼마나 심했던지 조직 전체에 피해를 줄 정도였습니다. 제갈량이 그를 내쫓아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말입니다.
요립은 분명 어느 정도의 능력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 능력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는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확고했습니다. 그러한 실제 능력과 자만심 사이의 불일치가 결국 그를 파멸시키고 말았지요. 그런 요립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좋은 반면교사,혹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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