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역 클럽에서 흥청망청 놀다가 술이 잔뜩 취했지만, 그 와중에도 사는곳인 역삼동까지 심야택시를 타는건 [그돈이면 국밥이 몇그릇인데...]라는 생각에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다가 어느 호텔앞을 지나는데, 클럽에서 막 나온듯한 나랑 비슷한 차림의 놈팽이가 여자한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싫어요오~ 저 술 못마셔요~" 라는 어설픈 한국말이 들리길래, 가만히 지켜봤더니 모르는 사람인거 같아서 술취한 남자 특유의 의협심이 발동했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하면서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때의 나는 동호회야구를 하던 사람들과 1주일간의 해남지옥특훈을 다녀온 상태였기 때문에 온몸이 탄데다가 술이 잔뜩 올라서 흉신악살같은 모습이었다. 놈팽이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사라졌고 그녀는 고맙다면서 술을 산다고 했다(?).
우리는 빈대떡을 시켜 넣고 여러 대화를 했다. 일본인인 그녀는 샤이니의 열성팬으로 6개월간 한국어 학원을 다니면서 말을 배웠고, 샤이니 콘서트를 보려고 한국에 온 모양이었다. 말을 나눠보니 우리는 놀랍도록 비슷한 점이 많았다. 보통 일본에서 여자들이 소프트볼을 하는것과 달리 경식구로 야구를 한 그녀는 나랑 똑같이 포수출신이었다. 여름이면 니쿠션을 찬 곳에 땀띠가 올라서 베이비파우더를 뿌려줘야 하는것도 알았고 ,어설프게 프레이밍을 하다가 공을 잘못 잡았을때 엄지가 꺾이면 대문에 손 찧은것과 유사한 고통을 느끼는것도 알았으며, 아직도 비만 오면 그곳이 시리는것 마저 똑같았다. 심지어 투수들이 엿같이 굴어도 웃으면서 참아줘야하는 애환도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그녀가 한국에 놀러온 4일간 샤이니 콘서트시간만 빼고는 계속 같이 있었고, 만나는 동안에도 다가올 기다림이 싫어서 돌아가는 공항에서 일본에 갈 티켓을 예매했다.
그녀는 내가 만나러 간다고 하자, 3박 4일간 자기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고 심지어 모든 여행코스도 계획해주기로 했다. ‘아니?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가족들이 있는 집에 3일이나 묵고 가라고?’ 생각했지만 대학생 신분에 지갑이 얇았던 나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캐리어에 글러브랑 옷가지만 넣어서 쫄랑쫄랑 일본으로 향했다.
그녀가 사는곳은 ‘귀를 기울이면’ 이라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이었다. 사실 그 애니를 안 본 나는 감흥이 1도 없었지만, 10회독한 명작만화 H2에서 히로랑 히데오가 살던 동네랑 비슷한 느낌의 주택가였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와서 신난 그녀는 집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면서 5월이 되면 강변에 수국이 핀다고 말해주었다. 그거 말고도 이것저것 동네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사랑에 눈먼 나는 청바지에 베이지색 니트 차림으로 해질녘 노을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사람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초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장미꽃 한다발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선물했는데, 엄청나게 좋아해 주셨다. 10년만에 처음으로 남자한테 꽃을 받았다나 뭐라나? 정작 우리엄마한테는 어릴때 카네이션 사드린거 말고는 꽃한송이 사준적이 없었기 때문에 양심에 찔렸다.
가족들과 함께 스키야키를 먹고 모녀와 함께 둘러 앉아서 한류 드라마랑 아이돌 이야기를 잔뜩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사의품격을 보면서 한국의 40대는 모두가 장동건이나 김민종같은 스타일인 줄 아는 착각을 하고 계셨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관계로 이종현같은 아들이 갖고 싶었는데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한류드라마로 배운 어설픈 한국말과 아마짱으로 배운 어설픈 일본어로 밤 늦게까지 수다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수면양말과 내의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매일밤 잘 시간이 되면 목욕물을 준비해 주었다. 심지어 아침 일찍 디즈니랜드로 놀러가는 우리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도시락을 싸주기까지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때, 극진한 대접을 해주신게 감사해서 꼭 안아드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 Out of sight, Out of mind. 죽고 못사는 관계였던 사이도 장거리연애의 벽앞에 1년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가 어학당에 다니면서 한국에서도 계속 사귀었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 돌아가게 되었고 나도 취업준비가 바쁜 나머지 서로에게 소홀하게 된 것이었다.
여느 커플들처럼, 서로의 흔적을 지우고 추억을 가슴 한켠으로 애써 밀어놓은채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윈도우에서 프로그램을 삭제 했지만 남아있는 폴더명과 잔여파일같은 사이가 되었다.
어느날, 방구석에서 롤챔스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톡이 왔다.
5년전에 헤어진 그녀.
내용인 즉, 어머니께서 암으로 2년전부터 투병중이신데 지금은 이미 뇌까지 전이된 상태로 기식이 엄엄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동안 나보다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도 있었고, 집에 초대한 친구도 많았는데 유독 나를 그리워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신다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연락하기 어려운 사이라고 했더니 그걸 계속 마음에 걸려했다고 했다.
고민했지만, ‘누군가 죽기전에 나를 보고싶어하는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또 그 기대를 저버리는게 인간의 도리일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러 하이터치나 콘서트도 보러 갔는데 못갈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휴가를 써서 시간을 만들고,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어머니는 몇일 지나지않아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뒤, 그녀의 집에 도착해 안방에 차려진 불단에 인사를 드렸다. 방 한켠에는 그분의 살아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속에 그분은 힘든 투병중에도 5년전에 보여줬던 상냥한 미소를 잊지 않고 계셨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를 배웅해주면서 “아내의 마지막 가는길을 배웅해줘서 고마워. 전에 내 아내를 안아줬을때, 평생 처음으로 나 이외의 남자에게 안겨있는 모습을 봤어. 잠깐이지만 아내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게 생각해” 라고 말해주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다리를 건너는데 강변에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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