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중학교 졸업도 아니고 중학교 수준만 되는 한국인이라면 형이상학, 혹은 형이상학적이라는 단어 정도는 알기야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비교적 이 단어에 상세한데, 많은 분들이 모를 만한 부분이 있겠구나 싶어서 얘기를 해 봅니다.
이 단어가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번역어이되 번역어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동양 문화권에서 그 기원이 있습니다.
주역의 계사 편에서는,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가장 앞에 형이상과 형이하가 한문으로 쓰여 있습니다. 형 이상의 것은 일러 도라 하고, 형 이하의 것은 일러 그릇이라 한다가 이 구절의 뜻이라는 것 같습니다.
한편, 근대 개화기 시절 일본의 학자들이 많은 서양의 단어를 동양식으로 번역하느라 힘을 쏟았고, 그것이 한문문화권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사실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과학, 사회, 문명 등등의 기초적이지만 그래도 좀 있어 보이는 한자어가 그에 해당합니다.
형이상도 그런 번역어의 하나에 속합니다. 영어의 metaphysics를 한문어로 형이상학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metaphysics란? meta - physics, 즉 physics(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요즘 분류로 하자면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기상학, 생리학에다 자연철학이나 형이상학 등등 온갖 것들의 논문들이 뒤섞여 있는) 다음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런 명칭이? 그것은 옛날 어떤 학자가 편집할 때 붙인 이름입니다.
당시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문들을 편집하고 어떤 논문들을 하나로 묶을지, 하나로 묶는다면 그 순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정리하는 일도 했습니다.(요즘에서도 뭐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8권은 사실 3권이 되어야 한다던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은 2권으로 읽어야 맞다던가 이런 순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얘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이 때 두껍다면 두껍고 두껍지 않다면 두껍지 않은 일련의 논문들이 뭐라 이름붙이기 요상하지만 하나로 묶여야 한다고 생각되었는데, 그 이름을 그냥 자연학 다음(으로 읽어야 할) 것, meta-physics라고 붙였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저는 형이상이라는 번역이 꽤 잘된 번역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meta - physics라는 의미도 어쩐지 형이상과 통하고, 서양에서도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이라는 근-본에 속하는 단어인데 이걸 동양에서도 근-본에 속하는 주역에서 따와서 번역을 했다는 점이 멋있는 것 같은 그런 것입니다.
헌데 약간 생소한 한자어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뜻을 짐작할 수 있는 탓인지, 형이상과 형이하의 대비가 현대 사회에서 좀 쓰일 만한 부분이 있는 구석인지, 형이상이라는 단어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도입되었음에도 현대 한국에서 그 뜻과 쓰임이 유래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와 다음 국어 사전에서 검색해서 예시를 들어 볼까요?(제가 생각하기에 예를 들어서 뭐 플라톤이라던가 후설, 이데아 등등에 대한 언급이 있는 등 전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제외했습니다.)
포로 궁(宮)을 막고, 졸(卒)을 움직이려는 포석은 결코 웃음이라는 형이상학과는 거리가 먼 것인 것이다.
너저분한 세상사를 보지 않으니깐 형이상학적인 것에 정신을 더 잘 집중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요.
설화 속의 물고기는 모두가 형이상학적인 상징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전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물고기도 있다.
비극이든 교향악이든 예술 감상의 감흥에는 어떤 종류의 형이상학적 고양감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가 가르치려 했던 것은 형이상학적인 공론(空論)이 아니라 괴로운 현실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예문들을 통해서 볼 때, 형이상이라는 단어의 우리말 용례는 형이하라는 말에 대비되어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우리 말로는 현학적, 추상적, 관념적이라는 말로 바꾸어 써도 좋을 만한 맥락에서 형이상이라는 단어가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형이하라는 단어와의 대비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이상이라는 단어를 활용하는 맥락에서 볼 때, 그 단어는 서구에서 쓰이는 metaphysics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번역어로서 근현대에 들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간단히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metaphysics를 검색한 후 그 예시를 들어 볼까요? 귀찮으니까 한국어로 번역이 된 부분만 몇 개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think that we are in the realm of metaphysics when we start talking about rights not being legally enforceable.(나는 우리 권리가 법적으로 시행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 했을 때 형이상학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Metaphysics attempts to expand upon existing cognitions effectively making synthetic judgments(형이상학은 종합적 판단을 효과적으로 하는 존재하는 인식을 확장하려고 시도한다.)
But the true essence of Epicurean philosophy is not in speculative metaphysics.(하지만 에피쿠로스 철학의 참된 본질은 이론적인 형이상학에 있지 않다.)
an alliance between logic and metaphysics(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유사점)
Metaphysics is a difficult and deep field of study.(형이상학은 난해하고 깊은 학문 분야다.)
예문의 선정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아니 우리말 예문은 비전문적인 용례들을 선별해서 선정했으면서 왜 영어 예문은 전문적인 것으로 보이는 분야를 선별해서 선정했느냐? 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네이버에서 한국말로 번역된 예문은 거지반 다 이렇습니다.(물론 영어권에서도 metaphysics가 우리말에서 쓰이는 것처럼 단순히 공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비실재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오컬트적이고 신비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간단한 구글 검색 같은 것을 봐도 그렇고 한국에서 쓰이는 것보다는 좀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서구권에서 쓰이는 metaphysics와 우리 말에서 쓰이는 형이상학의 차이점에 관한 대비를 좀 더 분명하게 해 볼까요?
https://en.wikipedia.org/wiki/Metaphysics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형이상학 항목에 들어가면 몇 가지의 중심적 질문들이 나열되어 있는 항목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Causality, 우리 말로 옮기면 인과관계에 대한 항목이 있네요.
우리 말로 쓰여지는 맥락에 있어서는, 누가 요상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을 때, 야 형이상학적인 얘기 좀 하지 마 라고 얘기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덧붙여서 그냥 형이하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거북할 것은 없겠죠.
하지만 인과관계라는 것은 우리말로 옮기면, 그건 그야말로 철저하게 형이하에 속하는 것이잖아요? 내가 흰 당구공을 쳤기 때문에, 빨간 당구공에 충돌했다. 이것은 우리말 혹은 우리의 현재 인식에 따르면 철저하게 형이하에 속하는 것이 될 겁니다.
또다른 중심적 질문 가운데 존재론이라던가, 개체의 변화와 정체성(배를 수리하다 보니 그 배를 구성하는 판자를 다 갈아끼워도 그 배가 똑같은 배냐 이런 테세우스의 배 문제 같은 것)이런 것은 우리 말이나 우리 용례의 형이상학에도 속한다고 보겠지만,
시간과 공간, 가능성과 필연 같은 것은 반드시 우리가 쓰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것들 가운데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논의의 주된 개념들은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많겠지만, 물질로 구성된 것들이 논의의 재료가 되니까요.
앞서의 한국어 용례에서는 너저분한 세상사를 보지 않으니 형이상학적인 것에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런지도, 와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해 봤을 때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과관계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필연과 가능이란 어떤 것일까? 이런 것에 대해 연구했다는 얘기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형이상이란 단어는 외국어를 번역하기 위해 고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례들에 비추어서 생각해 봤을 때, 형이상이라는 단어는 번역어이되 번역어가 아니고, 고전이되 고전이 아니고, 자생적으로 근현대에 그 생명력을 획득한 재미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