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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5 15:27
친일행적이 뚜렷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학도병 징집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질적이기까지 한데, 말년에 본인 행적을 부끄러워하고 불명예로 여겼다는건 좀 재미있네요. 다른 노골적인 친일 인사들이 입 싹 씻고 나는 잘못 없다, 시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게 과연 자기 행적이 누가봐도 빼박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진짜로 본인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19/06/15 15:55
학도병 모집할때 김석원은 무조건 1빠따로 연단에 세워야 할 인물이었죠. 일본인 기준에서 조선인출신 영웅이었을테니까요.
그 기대를 져버리지도 않았고요. 친일파 선정에서 빼박 부분일겁니다. 그리고 해방 이전부터 부끄러움을 감추지도 않았던 사람인것 보면 선배나 동기들을 보며 복잡한 맘을 가지고 계속 살았던듯.
19/06/15 15:27
사람은 늘 복잡합니다.
우리가 왕좌의게임에서 제일 열광했던 부분은, 아마도 수많은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하며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눌수도 없고, 계속 바뀌는게 우리 현실 속과 닮아서일거 같아요. 이 분도 공과 과가 있네요. 각각 평가했음 좋겠고, 과를 뉘우친 점에서 좀 더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19/06/15 15:28
다 훌륭하다고야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멋있는 점이 많은 사람이네요. 부득이하게 좋지 못한 길을 걸었던 대부분은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자기세뇌를 시작하곤 하는 데, 그런 게 없으신 분이었네요. 어쩔 수 없었다는 시대는 항상 있지만, 항상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지금 사람들이 '아 그땐 어쩔 수 없었다니까~'라고 해주려면 꼭 자기세뇌의 결과로 시대 자체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추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데(그것도 사람의 본능이긴 하지만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분 같습니다.
19/06/15 16:06
김석원 회고록 같은걸 다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맘으로 저런 반성을 한건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전쟁 이후, 예편하고 교육사업말고는 별 감투를 얻지않았긴 하네요. 사학재단을 운영한것 까지는 아는데 이후 어떻게 운영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06/15 15:43
이사람의 인생 경로나 훗날의 회한등을 봤을때 드는 생각은 성장 과정에서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보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에 의해 식민제국의 2등국민으로서의 삶에 순응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자신처럼 동화되어 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는것이 후의 '조선인'들 입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거라 생각했을거구요. 물론 2등국민일지언정 인정받고 싶고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방향이었던 명예욕같은것도 있었겠지요. 아무나 갈수있던 일본 육사는 아니니까요. 그와중에 자기 자신은 안될거라 생각하는 길에 인생을 바치는 선후배들을 보며 자괴감과 부채의식도 들었겠지요. 소위 말하는 노덕술같이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을 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악한사람은 아닌것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19/06/15 16:15
딱 홍사익과 비슷하죠. 대한제국은 망했고 일제식민치하에서 열심히 살면 조선인들도 똑같이 대우를 해주지 않을까. 뭐 이런..
실제 본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고.. 대신 민족의식이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님 말 처럼, 안될것 같은 독립운동에 목숨거는 주변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게 아니라, 대단한 일을 한다.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고 다만 자기는 이미 일제에 인정받는 삶을 연장하고 싶었고 힘들게 살지는 않았죠. 부채의식은 있으니 지원은 해주고 광복후에도 49년에 입대한건 좀 스스로 자숙은 했던것 같습니다.
19/06/15 15:45
뭐 일단 반성을 해야 용서를 해 줄 것인지 말지 고민이라도 하는데 끝까지 입다물고 괘변을 늘어놓는 동물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19/06/15 16:18
반성은 했지만, 여전히 친일파 딱지는 붙었죠. 광복이후 30여년간은 괜찮은 삶이었던것 같은데, 광복이전 30여년을 일본군에 있었으니..
19/06/15 15:48
사회 지도층 원로 분들 중 그나마 이런분들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반대로 자신의 친일 행적에 떳떳하신분들이 훨씬 많아보여 씁쓸합니다.
19/06/15 16:21
용서까지는 모르겠고, 본인은 짐을 덜고 간듯 합니다. 판단은 역사가 할듯한데 다시 판단하려면 재평가를 해야하는데
친일이란게 너무 크다보니 좀 힘들거같아요. 어느정도 이미지를 만들어 놨지만, 친일파로 선정되어서
19/06/15 16:09
이전부터 알던 사람이지만 참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이죠. 어느 정도의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되지만 악질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참작은 가능.
19/06/15 16:24
따져보면, 광복이후에도 본인스스로 속죄할 기회는 잡은것 같습니다. 무게감이 친일을 한국전쟁참전으로 덮긴 그렇지만..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학생들을 지지한것은 본인이 대좌일때, 학생들이 무장투쟁시도 재판을 방청하며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던게 아닐런지
19/06/15 16:49
위관급도 아니고 대좌까지 갔으니 정말 일제에 도움을 많이 줬죠. 물론 억지실드 치자면 주로 중국이랑 싸워서 공을 세웠다지만,
중국군 내에 조선인이 없던것도 아니고.. 사후세계가 있다면 형량이 좀 줄어들겠죠 뭐..
19/06/15 17:01
그냥 저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괜찮은 평으로 살았을 거 같은 행적이네요.
그런 점에서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것을 예견했던, 허소(조조의 인물평을 했던)의 말이 이럴때마다 기억에 깊게 남더라구요.
19/06/15 18:05
암울했던시기 본인의 능력을 펼쳤고 득을 보았으니, 평가를 받는것도 본인 몫이죠. 학교도 군인으로의 공과 포상금이 있었으니 설립할 수 있었고
19/06/15 18:12
거기까지는 생각 안해봤는데,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중, 본인이 친일파가 아닌데 친일파 선정에 불만을 가진 분들은 있더군요.
저는 친일파로 합쳐놓지말고 민족의 반역자를 따로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쪽입니다.
19/06/15 19:03
그분에 대한 연구나 평가가 많기때문에 저같은 사람이 평가하기는 그렇고,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한 인물의 공과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 봅니다.
19/06/15 19:45
이런거 보면 사과문 해석법 같은 글.. 유병재씨가 썼던 것 같은데..
그런 글들이 사람들이 글을 받아들이는 태도들을 싹 다 오염시켜버린 것 같아요. 살펴보면서 이유야 어쨌든의 맥락을 판단해야하고 그 부분에 들어간 다양한 이성적, 감정적 요소들을 생각해봐야하는데 일단 다 조건반사 시켜버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저거면 반성 충분한거로도 보입니다. 반성이 자기 삶의 100 전부를 부정하라는건 아니거든요.
19/06/15 20:02
저 정도면 정말 반성을 한 축이고 인정해줘야죠. 당장 현대 한국에서도 높으신 분들이 서민은 고사하고 중산층한테도 소속감 전혀 못느끼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저 시대면 오죽하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쨌든 죄책감이라고 가지고 살던 사람인 것 같은데요. 이광수처럼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는 축 아니고서는 마지노선을 김성수 정도로 두고 그 안쪽으로는 어느정도 인정해주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이상적이고 교조적인 관점에서 보면 식민모국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한 나라같은건 이 세상에 없고요.
19/06/15 20:21
김성수 이야기 나와서 예전 기억 나는데
어떤 30년대생 노기자가, 50년대부터 기자했는데 해방되고 언론이나 정치인이나 독립운동쪽에서도 김성수를 친일파라고 까던사람 못봤다고 그를 지금관점에서 친일파로 선정한걸 비판했던 기억 나네요. 이렇게 말하면 저도 친일옹호가 되다보니 남의 말을 빌어서..
19/06/15 21:25
625때도 후퇴작전 등 무너지는 전선 속에서도 상당한 공적도 남기셨고, 미군과의 트러블로 인해 빨리 예편하지 않았다면 김홍일 장군과 함께 노병의 진면목을 보일 수 있었던 분이죠.
본인의 과오를 반성하며 6.25, 4.19 다 뜻있게 살다 가신 분이니 공과를 다 봐야 하되 공이 더 큰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19/06/15 21:56
김석원은 일본군지휘관, 김홍일은 중국군 지휘관으로 야전지휘해봤던 군인인데.. 50대 후반인데 한국전쟁때 계급도 좀 낮았던것 같아요.
아예 안쓸거면 몰라도, 필요해서 썼다면 확실하게 쓰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인재풀도 없던때... 나름 경력직들인데 둘은 정말 말그대로 적군들이었는데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것 같아요. 그닥 언급하기 싫지만 이응준도 포함해서. 다만 다른 장성들과는 관계가 좋기가 어려웠을것 같긴 합니다. 한 세대 앞선 사람들이라..
19/06/15 23:24
흥미롭고 인간적으로 매력적일 것 같은 분이네요.
일제 부역자에 대한 재평가가 의미 있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진솔한 반성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반성도 없는 기회주의자들을 승자의 논리로 긍정하는 건 미래를 잘못된 방향으로 비트는 일이라고 봅니다.
19/06/16 00:31
요즘 일본 육사 출신인물들 보고있는데,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은것 같아요.
참 여러 관점에서 그시절에 살아보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네요. 이게 육사라서 특별한건가 싶기도 하고..아 근데 독립운동으로 빠지지 않은 사람중 반성이란걸 한 인물은 김석원뿐인듯해요.
19/06/16 03:49
김석원은 1893년생입니다. 백선엽이랑은 27살 차이가 나요. 한일합방 당시 17살. 그게 어떤 일인지 알만한 나이였고, 부끄러움을 느낄만하죠.
맹장이었고 김석원 밑에 가면 산다고 의용병들이 김석원에게 몰려갔다고까지하니 인망은 훌륭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9/06/16 09:27
김석원이 대한제국 유년무관학교 졸업하고, 무관학교가 폐지되면서 일본육군사관학교 27기로 유학갔죠.
일본육사 26기, 27기들이 마지막 무관학교 생도들이고 그들과 교류하며 아마도 여러 이야기들을 했을겁니다. 육사 동기들 회보 편집장도 했고, 광복이후 일본군 출신모임 회장으로도 추대된것 보면... 그들은 일본육사에서 배운 후 독립운동 하자고 약속했었고, 일부는 약속을 지켰지만 일부는 지키지 않았죠. 김석원도 선배,동기들과 저런 이야기를 안나눴을리는 없고, 하지만 자기는 남았습니다. 홍사익 이응준 이런 사람들.. 본인의 선택. 그런데 독립운동과 일제부역으로 나뉜 후에도, 연을 끊어버린건 아니고 감정들이 남아있었다는게 제 흥미를 끌어요. 뒷이야기 보면 홍사익, 이응준 같은 사람들도 일화들이 몇개씩은 있고.. 무관생도관련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일본 육사 출신이라고 친일파 선정된건 아니고, 엄청난 전과를 올린데다가 이응준과 함께 태평양 전쟁 학병모집 강연도 했죠. 아마 똑같은 사고체계로 한국전쟁때도 병사들을 모집하고 전쟁을 수행했을겁니다. 이때는 우리편이었다는게 다른것이고... 한국전쟁때 학병 모집할때도 김석원 이름을 내세워서 모집했었다고 합니다. 불과 몇년전에 전쟁영웅으로 내세우며 학병모집을 했었으니 뭐.. 일본식 코디에 콧수염 기른 50대 야전장군이 지휘하니, 일제 부역 군인이었지만 어떤전과를 올렸었는지는 들어왔었을테니까요. 저사람이 우리편일때 주는 안도감 같은건 컸을거라 봅니다. 백선엽이야 20대 만주군 중위였을 뿐이죠.
19/06/16 10:50
개인적으로는 이해되는 측면이 많고 내가 같은 처지였어도 이 분보다 더 잘 처신했을까 싶지만 대한민국국민으로선 인정해
줄 수 없는 인물이네요
19/06/16 20:57
천수를 누리고 살면서, 후회할 짓도 하고 영원히 꼬리표가 붙겠지만 어쨋든 각 시대를 겪으며 원하는걸 이룬 삶이죠.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걸 우리가 찬양해주기엔 좀 억울하죠
19/06/17 08:58
능력은 있었고 친일매국쪽에 붙어서 누릴거 잘 누리며 살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애국(?)심은 있었고 말년에 자기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함도 있긴 했다. 라는 거네요. 음.. 인간답네요.
19/06/18 09:00
일본육사 간 사람들, 처음엔 대부분 독립운동을 생각했지만 1919년쯤을 계기로 선택의 기로에서 나뉜것 같더군요. 몇명만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남은 다수의 생도들은 일본군에 복무. 마음의 짐이있다보니 독립운동으로 떠난 사람들의 가족을 돌봐주고.. 저게 애국심도 애국심이지만 몇년간 같이 지낸 동기애도 큰게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김석원은 회고록에서 반성을 했다는 점에서 약간 참작해줄만 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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