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가 단기방학이라 3박4일 남해안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여섯 시간을 운전해 가니 힘들더군요.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자 아내는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나가기 귀찮으니 숙소 옆에 있는 횟집에서 먹자네요. 딸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흐음.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어 보입니다. 아내와 딸아이를 설득했습니다. 이런 집은 회전이 안 되어서 음식이 오래되었기 십상이다. 봄철 해산물은 위험하니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낫다. 인터넷 검색하니 통영에서 나름 유명한 데가 있더라. 차 타고 20분이니 나가자.
아내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이는 대 놓고 짜증냅니다. 그야말로 억지로 달래서 차에 태우고 갔습니다. 손님이 많은 가게입니다. 아내도 아이도 음식이 맛있다며 희색이 돕니다. 특히 아이는, 아직 회를 못 막지만 대신 먹을 게 많아 좋다네요. 내심 으쓱했습니다. 거 봐라. 내 말 듣기 잘했지 않냐. 자화자찬하며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피로에 지친 아이가 쿨쿨 자는 동안, 저와 아내는 새벽 세시까지 식중독으로 인한 토사곽란에 시달렸습니다.
변기통을 부여잡고 위액까지 토해내며, 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토하는 식으로 교대근무를 해 가며 죽어라 토했습니다. 아이가 멀쩡했던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회가 문제였나 봐요. 잊지 않겠다 H식당.
그렇게 토하는 와중에도 저보다 아내의 상태가 다 나빴습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119불러서 응급실 가자. 그랬는데 싫답니다. 애 자는 걸 깨울 수는 없대요. 기가 탁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존경심마저 듭니다. 당장 반쯤 죽어가는 자기 몸상태보다도 아이의 숙면이 중요하다니. 과연 엄마의 빠워는 대단합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난리친 후 다음날, 팔팔한 아이와 좀비 두 마리가 일어났습니다. 남자좀비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 아침식사를 먹인 후, 숙소에서 쉬다가 체크아웃 시간 맞춰서 나갔습니다. 친구들이 병원 갔다가 진단서 받아서 영업배상 청구하라기에 여자좀비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바로 도리질칩니다. 귀찮대요. 너무너무.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됩니다.
아직도 꾸륵대는 배를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통영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전망대 식탁에 엎드려 졸다가 다시 내려와 처음으로 식사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메뉴는 당연히 죽이었죠. 간신히 가게를 찾아 들어가 먹은 죽은 참 맛있더군요. 혹시라도 또 탈이 날까봐 반그릇만 먹은 후, 바로 다음 숙소로 갔습니다. 세시에 체크인하고 들어가서 또다시 번갈아 가며 잤네요.
저녁시간이 되자 입맛이 고급진 딸아이가 숙소에 있는 호텔부페를 먹겠답니다. 배 상태로 보아하니 저나 아내는 저녁식사는 무립니다. 이야기했죠. 아빠 엄마는 먹지도 못하고 너 혼자 먹어야 하는데 돈이 엄청나게 든다. 가지 말자.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엄마아빠가 아프다고 퍼자는 동안 착하게 혼자 논 아이다. 상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 음. 생각해보니 또 그럴듯한 이야깁니다. 그래서 결국 아내는 저녁 거르고 저만 아이와 함께 부페에 갔습니다. 근데 막상 가니까 억울한 마음이 들더군요. 아무리 식중독이라도 내가 육만원이나 내고 들어와서 아무것도 안 먹으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
마구 처먹었습니다. 네 그릇이나.
돌아와서 꾸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스스로의 우둔함과 무식함에 한탄했습니다만, 다행히도 '생각한 것보다는' 상태가 괜찮았습니다. 아무래도 위장은 남들보다 튼튼한 모양이지요. 그리고 다시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불 끄고 자면서, 가족여행은 그렇게 이틀째가 끝났습니다.
오늘은 사흘째 아침. 화장실 변기에 앉아 쿡쿡 찌르는 듯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이 글을 씁니다. 이제 잠시 후면 아내와 아이 깨워서 아침 먹으러 가야겠네요. 부디 뱃속이 평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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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희가 불체자 단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 사장님이 좀 막무가내 노인네라서, '내가 불체자 쓰는 데 니들이 뭔 상관이냐'며 대판 싸웠다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무실까지 쫓아와서 또 큰소리더군요. 그 때는 저랑 싸웠죠.
단속현장/사무실에서 모두 사장 딸이 사장과 함께 했습니다.
차마 같이 싸우지는 못하고, 아버지를 말리긴 했습니다만...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수백인가 천인가를 맞았으니 저희에 대한 감정이야 뻔하죠.
얼마 뒤. 저희 직원 둘이 식당에서 뭔가를 잘못 먹고 거의 쓰러지다시피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간호사가 갑자기 말을 걸더랍니다.
'나 모르겠어요?'
바로 그 불법고용주 딸이었던 겁니다!
마침 식중독이라서 항문에서 가검물까지 채취해야 했는데...
간호사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