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 가서 스티븐 킹 단편집을 대출해왔다. 그동안에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을 대출기간동안 다 읽지 못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름대로 나와의 약속으로 규칙을 만들었다. 자기 전에는 핸드폰 안 보고 책 보다 자기, 쉬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할 것 없으면 책 보기.
처음 본 단편의 제목은 안개였는데 보다보니 영화 "미스트" 와 내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미스트가 안개잖아? 아 크크크 미스트 원작소설 작가가 스티븐 킹이였구나! 하면서 읽다보니 나름대로 읽는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오늘 문득 용변이 마려워졌는데, 핸드폰이 없던 어릴적엔 화장실에 갈때 책을 들고 갔던 것이 기억났다. 좋아, 규칙을 하나 더 추가했다. 대출기간 동안엔 화장실에 핸드폰 없이 들어가기. 나는 스티븐 킹 단편집을 들고 화장실에 입성했다.
변기에 앉아 책을 펼치니 왠지 익숙한 느낌과 함께 향수(냄새 때문이 아니다)가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옛날엔 화장실에서 지루함을 참기 위해 꼭 무언가 읽을거리를 들고 들어갔었다. 주로 소설이나 만화책이였는데 그중엔 일명 '화장실용 만화책'도 있었다. '슬램덩크 산왕전' 이나 '만화 삼국지 60권' 이 대표적이였는데 만화책을 하나 집어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머니께서 변비냐고 놀리곤 하셨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은 변비에 걸렸던 적이 없습니다. 좁은 화장실 작은 변기에 앉아있었지만 그 머리속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구요.
군대에서 검은 집이라는 호러소설을 본 기억도 난다. 검은 집을 읽을 당시 우리 부대는 예비군 훈련 실시를 위해 자대에서 떨어진 동원장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이 생활관에서 분리된 야외 화장실이였다. 그래서 책을 보다 취침시간이 되었는데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화장실에 가서 계속해서 읽었다. 한참을 읽다 결국 끝까지 봤는데 한밤의 인적없는 야외 화장실에서 훌륭한 호러소설을 본 기억은 지금도 내 인생 최고의 화장실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인적 드문 한밤의 야외 화장실에서 읽을거리를 들고 이상하리만치 화장실에서 오래 있다 나온 분대장' 이 불침번 후임녀석에게 어떻게 비쳤을지가 아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스티븐 킹 단편을 하나 읽었다. 역시 화장실에서는 책이 진리인 것 같다.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서 나오니 어머니께서 변비냐고 놀리셨다.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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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어머니께 변비냐고 놀림받은 이야기니까 [8] 붙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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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때 학교에서 똥을 싸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집에서 무조건 변기에 15분은 앉아있다가 갔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좋아하는 삼국지와 초한지를 번갈아 들고 들어가 화장실에 앉아서 아침마다 읽었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엄청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보는 참재미에 푹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