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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4 07:05
알츠하이머란 참 슬픈 병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을 앗아가거든요. 단순한 기억 뿐만아니라 주변인과의 관계까지 파괴해 버립니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저의 할머니께서도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몇년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죠. 그치만 전 할머니 장례식때 그리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한 할머니의 고통보다 할머니를 모시며 받았던 우리 가족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으니까요. 인간이란 참으로 영악하죠. 어릴땐 그렇게 할머니를 따라 다녔었는데. 마지막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시기 전까진 계속 집에서 할머니를 모셨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저는 그때, 말로만 듣던 고부갈등이 우리집에도 존재했단걸 알게되었죠. 할머니께선 1시간, 2시간마다 밥을 달라하시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굶겨죽이려 한다'셨습니다. 장식장 바닥, 기울기를 맞추기위해 끼워놓은 화투장을 보시고는 '왜 화투장이 거기 있느냐'며 '남의 집구석 말아먹을 년'이라고도 하셨죠. 제가 집에 없을 때, 어머니 앞에 칼을 들고 나타난 적도 있으셨다고. 그제야 어머니한테서 과거의 얘길 들을 수 있었죠. 제가 어려서, 사춘기여서 차마 해 줄 수 없었던 고부간의 갈등. 그것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점점 할머니를 모시는게 힘겨워지면서 제가 생각하던 유복하고 단란하던 우리집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동네에 효자로 유명하던 아버지가 할머니께 화내는걸 처음 봤습니다. 누나가 할머니 흉보는걸 듣고 전 거기에 동조했죠. 알츠하이머란 병은, 그냥 할머니의 기억만을 가져간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할머니께 가졌던 좋은 감정과 기억까지도 뜯어갔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뒤로, 집에 소동은 줄었지만 그 감정이 나아지진 않았죠. 병원엘 가서 할머니께 안부를 드릴때에도 차마 '오래오래 사세요'란 말이 입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습니다. 네. 전 나쁜놈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이젠 그때의 할머니처럼 아버지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갑니다. 그걸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시면 난 어떻게 하지?' 꼭 할머니가 그랬을 때 처럼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원망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미워하고 욕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제 인간성의 바닥을 볼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요즘 저는 아버지께 안부를 여쭐 때, 세배를 드릴 때, 이렇게 말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19/05/04 09:15
;_; 이런 아침부터 안타까운 글을 봤네요.
정말 이 글이 픽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업 축하드려요. 할머님도 많이 기뻐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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