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한 어느 여름날.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서있을 때였다. 하도 신호가 안 바뀌어서 신호등이 고장 났나 하고 성질을 내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내 옆에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에 기대어 서있는 한 중년의 남성이 눈에 띄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두꺼운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배틀그라운드 속에서 현실로 뛰쳐나온 캐릭터 같아 매우 인상 깊었다.
그는 사이클 동호회의 일원인듯했다. 길을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그 아저씨의 동료로 보이는듯한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다들 왜 굳이 이런 쪄죽는 날에 사이클을 타려는 걸까 어휴 사서 고생이네 " 그렇게 세상에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느끼며 집에 돌아와 상쾌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왜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고 이런 공상을 굳이 글로써 적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최근까지 했던 내 고민 때문이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중,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대학교 학부생 시절까지의 내 삶은 항상 시험의 연속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스스로 주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시험이라는 퍼즐 조각들을 맞춰 나가는게 내 목표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물론 그런 목표에 대해 심오한 고민을 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비관적인 생각으로 굳어버린 나 자신이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길, 표지를 따라가려 할 때마다 "네가 그런 거 한다고 한들 성공할 수 있겠어?", "그 시간에 공부를 더하는 게 너 자신을 위한 일이지"라는 부정적인 회의감들 때문에 시작도 해보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공부밖에 없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고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랐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 경쟁. 시험에만 목매다는 나 자신이 마치 노예처럼 느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손과 발에 수갑을 채워 도서관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고통의 굴레 속에서 너무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도망쳤다. 악몽에서 벗어나 내가 처음으로 향했던 곳은 서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고 싶은데 대체 뭘 해야 할지 몰랐고 지성인들이 쓴 책 속에 왠지 내가 찾는 해답이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책에 푹 빠져 살았다. 각종 자기 계발서, 역사, 철학, 수학, 과학 지식 책 등등. 그러한 지식서들을 섭렵하며 읽을 당시에는 왜 내가 여태 이런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을까 하는 순간적인 감탄에 사로잡혔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었다. 책을 덮고 집에 돌아와 홀로 침대에 누워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볼 때면 내일은 뭘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드는 것은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생각들 때문에 잠 못 들던 어느 날 밤. 문득 무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끌고 가던 군단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아스팔트 위에 놓인 고기가 익을 정도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사이클을 타러 나가는 그들의 불타는 열정은 어디서 탄생한 것일까? 뜨거운 햇볕 때문에 정신마저 불타버린 탓일까?
또한 왜 나에겐 그런 열정이 없을까. 어째서 나는 사이클을 타며 느낄 수 있는 흥분감과 짜릿함보다 더위를 피해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얻는 안락함이 더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걸까.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기를 쓰면서 얻은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나는 항상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거의 없었다. 실질적인 행동으로 인해 얻어질 결과까지도 머릿속으로 예측하면서 결국 행동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버릇을 키웠기에 나에겐 무언가를 향한 열정이 불붙을만한 땔감이 존재하지 않았고 때문에 생각을 행동으로 즉시 옮길수 있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왜 나는 행동할 수 없었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막상 행동을 해야할 순간이 다가왔을때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두려웠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내가 첫발을 담그는 게 죄를 짓는 거 마냥 두려웠고 주변 사람들에게 뒤처질까 두려웠고 그 일을 하다가 실패해서 나중에 굶어죽을까 봐 두려워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이러한 두려움이 내가 무언가에 도전해보고자 할 때마다 나를 족쇄처럼 옭아맸고 이런 사고방식이 습관이 되자 나는 어느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수 있을까. 이 즈음 나는 우연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게 되었는데 그 소설 속에서 실마리를 얻을수 있었다. 제발 그 개뼉다구 같은 잡생각들은 다 집어치우자는게 내 결론이었다. 배고프면 밥을먹고 졸리면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무언가 해보고싶고 도전해보고 싶다면 생각이고 뭐고 할것없이 그저 그 욕구에 맞춰 즉시 실천하는 거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이제 나는 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깨자마자 가장 먼저 오늘 하고 싶은 일 1가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먼저 나의 욕구를 상기시키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떠오르면 다른 건 일체 생각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나 자신이 변화해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인생이란 두려움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앞으로 인생을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험한 일을 겪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또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작용 반작용의 법칙(A 물체가 B 물체에 힘을 가하면 B 물체 역시 A 물체에 똑같은 힘을 가한다)을 따른다면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러한 두려움에 대항할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의 내면 속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두려운 순간과 마주하더라도 어차피 내 내면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포기하지 않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그러한 두려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느끼게 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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