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공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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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루트에리노입니다.
이번 겨울에 CES2019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이번에 미국판 교통학회라 할 수 있는 TRB(Transportation Research Board) 연례미팅에서 학술발표를 하는데, CES도 같이 껴서 간 거에요.
갔다온지가 하도 오래돼서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뭔가 후기 한번 정도 남기고픈 마음에 적당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정말 개인적인 글이에요. 이래저래 바빠서 벌써 엄청 늦었지만, 그래도 남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CES2019
CES는 매년 유수의 전자회사들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는 행사로 유명하죠.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 행사인데, 이게 미국의 전국적인 행사라고 하면 사실상 세계 행사가 되잖아요. CES도 딱 그런 느낌입니다.
일단 교통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CES의 화두는 확실하게 자율주행이었습니다. 원래 "스마트시티"라는 세션이 따로 있었는데, 그냥 자율주행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생각보다 자율주행은 굉장히 가까이 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연구실에서 "자율주행이 언제 될까"라는 얘기를 한적이 있었는데, 사실상 이미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된다고 보자는 결론이 났었거든요. CES에서 나온 수준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이젠 실험 상황에서는 자율주행이 되는데, 이를 상용화 하기 위해 점점 그 수준을 끌어올려서 여러 상황에 대비를 한다거나, 센서를 최소화하는 식의 발전 단계가 남은 듯 합니다. 현재는 여러 장비를 덕지덕지 붙이고 자율주행이 되는 수준이거든요.
오히려 아쉬웠던 점은, 이 자율주행이라는 주제에 묻혀서 교통에 대한 다른 주요 현안들에 대해선 크게 볼게 없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자율주행이라는게 그만큼 크고 대단한 얘기긴 합니다만...
젊은 교수님께선 CES에 가면 대단한 영감을 얻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게 없다고 하시더군요. 특히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교통이라는게 "자동차"에 관련된 거라, 우리나라에서 교통이라고 하면 마땅히 나올 법한 대중교통에 관한 내용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는 점이 아쉽네요. 특히 스마트시티 관련 기술이라고 나온 것들 역시 자율주행 베이스 이야기라, 아직은 할 게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하드웨어 쪽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느끼셨을텐데, 저같은 플래닝이나 오퍼레이팅 쪽 엔지니어들은 약간 김 빠진다고 느꼈을 듯 해요.
위에 이야기했던 자율주행의 발전을 생각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부스는 엔비디아였습니다. 엔비디아에서는 오로지 카메라와 레이더 장비만 가지고 현재도 시험 자율주행 차량을 일반 도로에서 돌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LiDar(보통 라이다 라고 합니다. 자율차들 천장에 빙글빙글 도는 기구가 이거에요.)이라는 레이저 레이더가 달려있는데, 이것 없이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차용 특수 보드를 만들었더군요. 뭔가 하드웨어 회사임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율주행을 제외하고 교통쪽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기술은 닛산에서 제시한 AR을 이용한 기술이었는데요, 예를들어 AR을 이용하여 안개 등의 악천후시에 평시와 같은 시야를 제공하는 등 AR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현재는 컨셉트에 지나지 않겠지만, 향후 차량에 AR이 적용될 거라는 점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라 상당히 기대가 되는 기술입니다.
앞으로는 보행안전이 상당한 화두가 될 텐데, 여기에 대한 기술들도 좀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외려 교통과 무슨 상관이지 싶은 퀄컴에서(...) 5G시대엔 이런 기술이 가능해요! 하면서 차량의 비디오 센서로 보행자를 검지하는 기술을 선보였더군요. 이것도 국내에선 어느정도 연구가 된 상태인지라 약간 부심 비슷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교통하는 사람이야! 라는 정체성을 빼고, 그냥 박람회 보러 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재밌긴 했습니다. 교통 외의 분야 얘길 좀 해볼까요.
이번 CES에서 최대 화두는 "스마트 홈" 이었던것 같습니다. 잘 나간다는 유수의 기업들이 전부 스마트 홈과 관련된 제품을 내놓았죠.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가정용 스마트 봇들을 일제히 내놨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국처럼 집에 넓은 곳에는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꼭 필요한 개념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뭐 예를들어서, 샤워를 하고 있으면 수건을 자동으로 가져다 주는 기능 같은게 있던데, 사실 대한민국의 가정이면 그냥 걸어가서 수건을 가져오는게 그다지 큰 무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미국은 집들이 워낙 크니까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CES라는게 미국 행사다 보니, 그리고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영향력이 큰 시장이다 보니 미국 위주의 제품들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미국이니까요. 사실 어떤 제품이든, 미국에서 성공하면 국제시장에서 딱히 성공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만큼 미국 시장은 막강한 영향력이 있죠.
다만 집의 보안이라든가, 가전제품이라든가, 이런 거에 도입되는 스마트 홈 개념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 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가전제품 등 집안의 조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 어느정도 현실화가 되어 있죠.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었던건 VR위주였던 게이밍 기어 코너나, 중소기업박람회(...)분위기의 중소기업 부스 같은게 더 재미있었어요. 예를들어 여행용 캐리어에 킥보드를 달아 나온 괴상한 물건이 기억에 남네요. 아마 여기 나온 스타트업 들 중 반은 나중에 못 보겠죠. 여기에 한양대 학생들이 출품한 부스가 있었습니다. 또 사람의 시각을 트레이싱해서 이걸 e스포츠 코칭에 사용하겠다는 기술이 있더군요.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제끼고 제일 멋졌던 부스는 LG 부스였어요. 우리 디스플레이가 이만큼 쩔어준다, 하는 커다란 디스플레이 벽+롤링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시그니처 TV시연까지. 특히 LG 부스는 정문 쪽에 있었는데 시작부터 굉장히 압도적인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삼성, 소니 부스였구요.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게 샤프 부스였는데, 소니와 삼성의 화려하고 사람 많은 부스 사이에 끼여서 얘들이랑 너무 대조가 되더라구요. 디스플레이 패널 두께도...
이밖에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게, 네이버였습니다. 저는 네이버가 CES에 출품을 할 지도 몰랐는데, 구글의 거대한 단독 부스 바로 옆에 꽤 규모 있게 단독 부스를 차렸더군요. 미국인들은 네이버가 뭐 하는 데인지도 모를텐데, 네이버 랩스를 통해 본인들이 최신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또 하나 CES 개최의 이점은, 미국 출입국심사가 굉장히 쉬워진다는 게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들어가면 일렉트로닉 쇼? 하고 통과시키더군요. 물론 이건 제가 학생연구자 신분인 것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친구들 얘기론 어디서 코믹마켓을 하면 비슷하게 무사통과한다고...
2. TRB2019 Annual Meeting
TRB는 미국에서 가장 큰 교통 관련 학회입니다. 교통 관련한 모든 분야를 총 망라한 학회죠. SCI저널로 TRR(Transportation Research Record)를 갖고 있고, TRB에서 채택된 논문들은 TRR에 실어줍니다. 정말 별의 별 분야가 다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교통운영, 교통계획을 포함해서 철도, 포장, 도로, 교통 관련 교육, 심리학 등등 정말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죠. 덕분에 TRR의 임팩트 팩터는 한국토목학회 국제저널(이래봬도 SCI저널입니다)만도 못한 수준이라는게 단점이죠. 저 같은 경우엔 저널은 실패했습니다만...ㅠㅠ 여튼 포스터 발표는 됐기 때문에 잘 다녀왔고, 발표도 잘 치렀습니다. 요즘은 항상 워싱턴DC에서 진행하죠.
이번에 가서 느낀 점을 요약하자면...
1) 이것이 천조국이다!
2) 생각보다 한국 교통공학계는 꽤나 전선에 서 있습니다.
3) 생각보다 학계에선 자율주행이나 딥 러닝 얘기가 잘 안나옵니다.
4) 중국/인도계 학생들이 정말 많네요.
일단 정말, 정말 많더군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국내에서 잘 나가는 교통관련 학회인 대한교통학회나 한국ITS학회와는 비교가 잘 안될 정도더군요. 솔직히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논의를 하다니...사실 한국에서 교통관련 연구를 하면 상당히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요, 이거 하나는 부럽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공무원들이 해놓는 연구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의 경우 연방이나 각 주의 DOT(Department of Transportation, 교통부를 이렇게 부릅니다.)들이 각자 연구부서가 힘이 굉장히 강하고, 하는 것도 많다 보니 나오는 것도 많더군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공무원들은 연구보단 행정처리 등을 많이 하고, 연구는 공공 연구기관이나 대학 외주 등으로 진행되는 것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학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게 꼭 좋은 거라고 볼 순 없겠지만, 문화의 차이라고 할까요?
다만 연구 결과에 있어서 미국이라 뭔가 대단하다, 이런 느낌이 드는 내용이 크게 많지 않았습니다. 뭔가 저희 연구실, 다른 연구실에서도 하는 것에서 크게 나간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저희 연구실에서 하는 분야 한정 얘기지만 말이죠. 같이 간 동료들과 약간 억울하게 생각한게, "쟤들이 우리보다 나은건 영어 잘하는 것 밖에 없어보인다" 라는 거였습니다. 나도 한글로 쓰면 SCI논문 나오게 해줘...빨리 갓글님 갓이버님 완전 번역기 만들어 주세요...
교통의 경우 연구에 대한 국제협력이 굉장히 활발한 편입니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 말이죠. 이건 상당히 좋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겐 좋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크크. 다만 우리나라의 교통 학계가, 가장 최첨단이라고 인지되는 미국에 비해 아주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특히 교통공학은 2차 학문적 특징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패스트 팔로잉이 상당히 중요하고, 이게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10년 전에 제가 석사때는 안 이랬던거 같은데, 이젠 정말 기술의 전선에 서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름 자부심도 좀 생겼습니다. X줄 타는 느낌도 좀 들기도 하구요.
그리고 CES에서 본 바에 따르면 자율주행 얘기가 엄청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학계에선 자율주행 얘기가 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나름 굉장히 핫한 주제인 딥 러닝에 대해서도 시들한 상태더군요. 저도 요즘 열심히 하고있는데 흑흑...벌써 막차 떠났으면 어쩌죠...
여기도 미국이니 만큼, 대부분의 연구는 차량 교통 중심의 연구였습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철도 교통쪽 연구에 관해선 오히려 한국이 낫지 않나? 싶은 내용이 많더군요. 우리나라의 경우 철도교통에 대한 연구와 메뉴얼이 상당히 짜여있는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거의 걸음마 수준인 항공쪽 연구는 역시 천조국답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대충 얘기는 들었지만, 저는 이번 TRB에서 백인보다 동양인을 더 많이 봤습니다. 특히 중국인들을 많이 봤고, 그 다음이 인도인들을 많이 봤어요. 두 국가의 사람들 모두 교통 연구에서 어마어마한 권위자들이 많습니다. 예전엔 일본인들이 좀 있었다고 하던데, 저는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을 더 많이 봤습니다. 가끔씩 백인들이 질문을 하거나 하면 오 백인도 있네?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잘 모르지만, 체감적으로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중국과 인도를 어떻게 느낄 지 모르겠지만, 교통에 있어서 중국과 인도를 제끼고 할 수 있는게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은 정도입니다. 제 생각에,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나라 사람이든 색안경을 끼지 않고 교류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네요. 더이상 중국과 인도는 무시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하나, 지속적으로 최신 기술들을 팔로우 업을 해 나가는게 쉽지 않겠지만, 학문으로 먹고 살려면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 됐구나, 이게 제일 크게 얻은 교훈입니다.
3. 미국 느낌
1) 전 영어를 잘 못합니다. 뭐, 이정도 영어로도 다니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2) 여기 1인분은 저같은 파오후가 먹기에도 벅찼습니다. 여기 살면서 비만이 안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3) 팁 문화 거지같아요.
4) 누가 물가 싸다고 했던거 같은데, DC랑 베이거스 기준으로 전혀 싸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과일 정도 빼고요?
5) 카지노에서 30불 순식간에 홀랑 털어먹고 난 역시 아니구나 하고 나왔습니다.
6) 15년쯤 전에 라스베가스에 갔을땐 정말 대단한 도시다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조명도 많이 죽었고, 화려함도 많이 죽었습니다.
7) 그것보다 서울이 워낙 빡세게 발전을 해놔서, 이젠 사실 어마어마한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도 뭐 완전히 감동적이진 않네요.
8) 근데 스포츠 스타디움 하나는 진짜 지릴 뻔 했습니다. 워싱턴 캐피털스 경기 보러갔는데 스타디움의 위엄에 압도당할 뻔 했네요.
9) 정부 셧다운때문에 DC에서 거의 암것도 못 봤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