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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 22:18
고맙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서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하루라는 제목을 붙인 글에 더딘 하루님께서 첫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삶이 주는 우연에 다시 한번 놀랍니다 :)
19/02/19 21:19
추천을 누르고, 댓글을 달고 싶은데, 무어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네 삶 같은 글이네요. 달콤함과, 씁쓸함과, 짭짤함과, 비릿함과, 고소함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있는.
19/02/19 22:38
겐로쿠나 마루가메 제면이나 아는 곳이라 추리 시작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는 데 결국 네이버지도의 힘을 빌려서 어디인지 알았습니다. 크크크크
어른들 대학병원 검진 참 힘들죠. 저도 외할머니 몇 번 따라갔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검사나 면담시간이나 너무 짧죠. 다녀오면 최소 반나절은 지나고 있고. 근데 글을 보면 그래서 나쁘지 않은 하루인 거 같아요
19/02/19 23:05
꼭 검색해서 찾아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치열하게 님이셨군요 :)
좋은 병원입니다. 그 병원 다니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19/02/19 22:41
진료실 책상 위의 벨을 누르면 환자가 들어옵니다. 인사를 하고, 필요한 것을 말하고, 간단한 신체검진 후 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다시 나가는 데 까지는 평균 5분이 채 안 걸리는 것 같습니다. 환자가 일어나 문고리를 잡으면 저는 다시 벨을 누르고 다음 환자를 만나죠.
“띵동”이전, 그 이후의 순간에 대해 상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 글을 읽고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내일부터는 한번 더 눈을 마주치고, 한 마디 더 건네면서 진료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9/02/19 23:09
환자도 5분도 채 안 걸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만 의사를 만나죠.
저도 자몽님 글을 보고, 종종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들어오세요" 이전과 이후를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19/02/20 13:50
어머님 모시고 하루 병원 다녀오신 기록인데요.. 긴 하루를 보내신 듯 느껴집니다.
저도 시어머니(작년에 89세로 돌아가심) 모시고 숱하게 병원 다녔었지요. 시어머니라 그런지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 커피 한 잔, 우동 한 그릇 함께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군요. 늘 며느리로서 의무감만 가진 채 열심히 병원을 드나들었을 뿐,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점이 후회로 남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난 일을 담담히 써내려간 글이 좋습니다.
19/02/20 16:52
그러게요. 정말 긴 하루였어요.
지켜보는 것 말고는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길게 느껴졌네요. 아무리 잘해드리려고 해도 지나고 보면 항상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남는 듯해요. 저도 의무감의 발로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 때가 많고,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며느리이신 유쾌한보살님이 계셨으니 고인께서 더 행복한 말년과 덜 불행한 병원 생활을 하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19/02/20 15:34
추천만 하나 남기고 갑니다.
조미료 듬뿍, 달고 짜고 맵고 자극적인 글이 대세인 요즘 넷에서 보기 드문 담백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근디.. 그래서 댓글로 남길 말이 별로 없.... 크크크
19/02/21 12:53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네요.
바쁘셔서 만나 뵙기 어려우시다면, 조만간 시간이 나시길, 더는 직접 만나 뵈실 수 없으시다면, 꿈속에서라도 만나시길 빕니다.
19/03/12 13:03
저는 아직 어립니다. 아직은 제 나이지긋한 부모님께서 손을 잡고 제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시지요.
두분께서 일을 하느라 바쁘시니, 이제 가끔은 제가 할머니를 모시고 움직입니다. 앞으로는, 이 글 덕분에, 더 진중하게 그 순간들을 맞지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손자라고 촐싹거리는 일을 줄이고요. 저는 병원이라는 장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골기질이 만충할때, 군병원에 오래 있는 일도 생겼고, 그 병원에서 "숨결이 바람될 때" 그리고, 이름을 까먹어버린 "아미쉬"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기계 앞에,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전능한 신을 섬기나, 스스로는 전능하지 못한) 의료-사제 앞에, 옥음을 기다리고 허리를 조아리는 환자들에 대한 연민의 글이 들어있는 책들이었지요. 마치 백인 지배자를 섬기는 원주민들처럼, 화물 신앙을 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기뻐하고 고집을 부리며, 의사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반항하게 되는, 정신적인 변화과정, 모종의 종속, 낙인에 대한 공증, 낙인 없음에 대한 공증... 간호사 없이 '간호 장교'가 있는 장소에 왜 그런 책을 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마도 책을 정하는 사람이 간호와 같은 계통에서 일하지 않으니 그런 참사가 일어났겠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백발이 성성하신 제 피터팬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약봉지를 보시고는 맘에 쓰라리신지 툴툴툴툴 정겨운 소리를 내십니다. 제가 반골기질을 가진 이유는 아버지의 화법을 말을 하는 방법으로 배웠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을 말로 정리하시면서, 모든 것을 저주하시지요. 한국에 심취할 부두술이 없는게 정말 다행 아닐까요. 언젠가는 나 또한 약을 저렇게 많이 사겠지. 그리고서는 한 알 한 알 마다 유의미하게 건강이 늘어난다고 믿게 될 거야. 돈 몇 푼이, 소중한 삶 찰나를 몇 푼어치나 사줄 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야기를 믿지 못해 지금 불행하고, 나중에 생명이 궁하면 이야기를 믿게될 것이라 불행하다. 그래서 저는 일상글을 어떻게 적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복잡한 삶의 타래 중 하나, 가장 예쁘지도 않은 타래를, 하지만 제가 감히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19/03/19 20:28
저는 어릴 적에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할머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약국 다닐 때가 많았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굉장히 바쁘셨거든요. 돌이켜보건데 어린 시절 제 세상 속에서, 아버지는 난폭한 폭군이었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따뜻하지만 약하고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는 두 분의 병간호를 해야겠습니다. 병원에 간다는 것은, 약을 사러 다니는 것은, 환자와 산다는 것은, 솔직히 고백하건데 다만 한 순간도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살다 보니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생각보다 더 중한 환자였음이 밝혀졌으며, 실은 저도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되어 환자와 함께 살아야한다는 것은, 역시나 다만 한 순간도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환자와 함께 하는 삶이, 저를 슬픔을 줌으로써, 저를 더 사려 깊고 친절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환자로서 사는 삶이, 제게 고통을 줌으로써, 저를 더 강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환자로서 환자와 함께 사는 삶은 제게 무엇을 주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비하면 조금 더 삶을 살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삶에 살아지는 대신에요. 아마쉬에 대한 책은 모르겠지만, 숨결이 바람될 때는 저도 읽어봤습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어떻게 사느냐와 같은 의미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결국 기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같은 의미라는 느낌도 받았고요. 행복이란 뭐랄까요. 니체의 말로 갈음하겠습니다. Man does not strive for happiness; only the Englishman does that. 불행해도 괜찮지 않을까, 정도의 주제 넘은 말씀을 드립니다 :) 군대에서 다치신 데는 요즘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주제 넘지만 그 주제로 일상글을 써보시면 어떨까 싶긴 하네요. 모든 글이 그렇듯, 쓰기 어려운 주제를 고르면 상대적으로 글쓰기는 쉽지 않겠습니까? :)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을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다. 조홍스러운 얘기를 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더라도, 죽지 않는 한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라는 말씀을 드리고는 싶습니다. 다음에 또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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