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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17 19:51:04
Name 22
Subject [일반] 친하지만 솔직히 안 친한 친구
3~5명 규모의 친구들 모임이 있으신지요?

저에겐 서로의 찌질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찌질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정한 욕설을 주고받는 한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은 남자 셋, 여자 둘로 구성된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입니다.


얼마전 저와 그 멤버 중 한명과 그 친구의 남편, 이렇게 세명이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애매할 수 있는 비대칭 만남이 성사된 건 왜냐? 그 친구의 남편과 저의 성향이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공통점이란건 뭐 대단한건 아니고

비슷한 나이에 골수 스덕으로 살아왔으며 결정적으로 둘 모두 이현경 아나운서의 팬이다, 이 정도?


아무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처음으로 셋이 모인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들은, 아니 우리 ‘둘’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역사, 행갱이의 나날이 성장하는 외모와 인터뷰 실력, 그리고 그동안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어느새 우리 모두는 만취상태가 되었습니다. 껄껄




그때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 친구와 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랄까?

다짜고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사실은 술을 많이 마셔서 맥락은 기억 안 나고 이 당시의 대사만 기억이 납니다.)

“형 사실 소오오오오오오오올직히 말하면 뿅뿅(친구 이름, 가명)이랑 저랑 별로 안 친해요.”

그리고 다같이 껄껄 웃었습니다.

저 말을 내뱉고 혹여나 갑분싸 될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뿅뿅이도 격하게 공감해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최근 다른 친구의 결혼식장까지 뿅뿅이와 동행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뿅뿅이와 저는 같은 지역에 삽니다. 그래서 그 날 지하철을 타고 함께 이동하는데, 아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서로 대화는 해야되겠는데 솔직히 할 말 없는거.

맨정신에 서로 어설픈 대화를 주고 받으며 힘겹게 이동했던 그 시간들.

항상 빠르게만 느껴졌던 빨간색의 신분당선이 그날따라 왜 이리 느리게 느껴지던지.


그런데 신분당선이 느리다고 느낀건 저 뿐만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하철의 느려터짐에 함께 공감하며, ‘솔직히 안 친한’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아무튼 저 말을 내뱉고 순간 괜히 하면 안될 말을 한건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 이야기로 서로 공감하고 한참 웃고 나니 답답함이 뻥 뚫렸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신하의 마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그리고 다음 날, 술에서 깨니 전날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아 너무 솔직했나? 근데 우리가 XX(굉장히) 친하니까 할수 있는 말 아니냐?”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뭐냐?

솔직히, 소오오오오올직히 안 친한건 팩트라는 겁니다.

즉, 저는 뿅뿅이와 XX(굉장히) 친하지만 솔직히 안 친한 아이러니한 관계라는 거네요.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가 과거에도 없던건 아닙니다만, 요즘들어 특히 많아진것 같다고 느끼는 건 저뿐인가요?

왜 요즘들어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가 많아지는 걸까요?


저는 그 원인이 요즘의 연락 메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2g폰 쓰던시절 ‘문자 메타’때는 문자메세지 글자수 맞추려 띄어쓰기도 안(못) 하며 1대1로 대화를 나눴었는데..

어느순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카카오톡이 등장하면서 ‘단톡방 메타’가 시작됩니다.



1대1로 연락할바에 그냥 단톡방에서 얘기하고 다같이 대화하면 좋잖아?

이런 얘기를 둘이서만 하면 이 정보를 모르는 다른 친구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우리 둘이 이 얘기 하고 나중에 친구들한테 다시 알려주는것도 귀찮은데 그냥 단톡방에서 얘기하는게 더 편하잖아?

친구 목록에서 해당 친구 찾아서 대화하는 것 보다 그냥 최근 단톡방 들어가서 말하는게 더 편하잖아?



‘단톡방 메타’가 등장하면서 동시에 친구들과 1대1 대화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고 1대1로 대화를 하는게 불가능하냐? 껄끄럽냐? 그건 아닙니다. 그냥 단톡방에서 말하는게 더 편할 뿐이죠.

그런데 아무리 똑같이 친한 친구들이라고 하더라도 친함의 장르가 다른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누구와 친하다는게 정량적으로만 평가되는게 아니잖아요. 그 친함의 장르라는게 있는건데 그거와 상관없이 단톡방에선 모두가 같은 대화를 공유하게 되는것이죠.


그러고보니 막상 1대1로 만나게 된 상황에서는 평소와 다른 서로의 모습에 당황하며 껄껄 웃게 되는 그런 상황.


이런 상황이 늘어난게 그냥 기분탓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톡방 메타’의 출현으로 우리 현대인들의 그룹대화 능력은 올라가지만, 1대1 대화는 점점 어색해지는거죠.


매번 칼바람만 하다보니 1대1 라인전이 약해지는 그런 현상이랄까요?

헌터 팀플만 하다보니 질럿 드라군 말고는 다른 유닛을 뽑는게 어색한 그런 기분이랄까요?



군인시절 친구들과 연락할 수단이 전화밖에 없었을 때, 오히려 친구들과 더 돈독해진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게 생각나네요. ‘단톡방 메타’가 편하고 그 나름의 장점도 많지만, ‘문자 메타’의 낭만을 잃어가고 있는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친구들과 1대1 대화의 비중도 조금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인전도 중요하고 한타도 중요한데 우린 너무 한타만 하고 살고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뿅뿅이의 남편과의 1대1 만남을 서둘러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행갱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타싸움 보다는 라인전에 가까우니까요.

XX(굉장히) 친하지만 솔직히 안 친한 뿅뿅이는 잠깐 나가있으라고 하구요.

뿅뿅이가 “뭐지 이 10덕들은?” 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은 부끄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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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7 20:07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 친구 있습니다
너무 친하고 죽마고우인데 소오올찍히 좀 미묘한... 크크크크
19/02/18 09:04
수정 아이콘
역시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크크
19/02/17 20:1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결국 인간관계의 밀도는 1:다가 아니라 1:1 관계를 어떻게 쌓아가느냐가 결정하지요.
그리고 그 1:1 관계를 능숙하게 이끌어나가는 친화력은 타고나지 않는 이상 쉽게 학습되는 부류의 능력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쓸데없는 노력 안 하고 그냥 코드 맞는 사람들이랑만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9/02/18 09:09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모든 1대1관계를 잘 이끌어나가는건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단톡방의 존재 덕분에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친구와 둘이선 어색하더라도 그 친구가 빠지면 또 더 이상하거든요 크크
김우진
19/02/17 20:19
수정 아이콘
너무 과열되어있던 게시판인데 이런 행복함이 느껴지는 글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02/18 09:11
수정 아이콘
그렇게 표현해주시니 제가 다 감사하네요 ㅠㅠ
Locked_In
19/02/17 20:19
수정 아이콘
친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자가 친한거죠.
죽고못살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별것도 아닌걸로 연락도 안하고 사라진 친구들도 있고...
자주는 만나도 그렇게 친하다고 못느꼈는데 10년 넘게 만나고있다보니 어느새 고등학교친구들보다 더 편한 친구도 있고...
19/02/18 09:12
수정 아이콘
살아남은자가 친한거다 되게 와닿는 표현이네요. 결국 다 소중한 존재인건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윌로우
19/02/17 20:22
수정 아이콘
오래 되었고 누가봐도 친하지만 둘만 있으면 어딘가 불편한 관계 - 말이 됩니다. 어차피 파장도 안맞고 만날 이유가 사라지면 멀어질 관계죠.
19/02/18 09:13
수정 아이콘
거꾸로 단톡방의 존재 덕에 관계가 더 유지되고 좋은것도 있는 것 같아요.
후마니무스
19/02/17 20: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빠와 아들 중에 이런 관계 많죠
19/02/18 09:17
수정 아이콘
저는 아니지만 주변에 은근 많은것같습니다.
볼빵빵청년
19/02/17 20:48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네요. 3명이지만 서로 취향도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한데, 나머지 둘이 유유상종인데 서로를 피곤해하는 성격이에요.
3인은 좋고 저만 빼고 2인이면 미묘해져버리는 관계. 문제는 10년넘게 잘 만나고 다닌다는 거.
19/02/18 09:15
수정 아이콘
이게 다 볼빵빵청년님께서 윤활유역할을 잘 해주셔서 그런거 같읍니다 껄껄
저팔계
19/02/17 21:28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요즘은 군대에서도 제한적으로나마 휴대폰 사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던데, 개선되어야 될 사항이었음은 맞지만, 예전처럼 친구끼리 편지 주고 받고 하는 그런 건 점점 없어지겠네요.
19/02/18 09:20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군대시절 쌓아놓은 편지들 가끔 읽는 재미가 있는데
카루오스
19/02/17 21:30
수정 아이콘
둘이있으면 불편한건 아닌데 좀 어색하고 뭔가 애매하고 묘하게 핀트가 안맞는 사이 크크.
홍삼모스키토골드
19/02/17 22:05
수정 아이콘
그게 그렇더라구요
닭장군
19/02/18 00:10
수정 아이콘
그렇죠. 맞아요.
그 닉네임
19/02/18 00:25
수정 아이콘
진짜 친한 사람들은 톡방안에 있어도 서로 갠톡 많이 하죠.
자주 말하는 톡방이 세 개정도 있는데, 갠톡 많이 하는 사이는 전체 인원의 50퍼센트 정도 되네요.
할러퀸
19/02/18 00:56
수정 아이콘
전 1:다 보다 1:1이 편하더라고요. 단톡방이든 현실이든 타이밍 맞춰서 말꺼내기 넘나 어려운것...
좌종당
19/02/18 09:22
수정 아이콘
저도 고등학교 친구중 좀 더 친한 2명이랑 단톡방이 있었는데, 둘 중 하나하곤 1:1로 만나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나머지 한 명하곤 약간 어색한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운동 같이하게 되니까 걔랑도 1:1로 술도 먹고 할 정도로 가까워짐...
19/02/19 11:02
수정 아이콘
그 어색한건 어색한건데 안 어색해질 소지가 있으니까 계속 만나게 됐던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크크
아웅이
19/02/18 09:55
수정 아이콘
비유가 너무 기가막히네요
칼바람만 하다보니 라인전이 약해졌다.. 크..
스테비아
19/02/18 10:35
수정 아이콘
남한테 닉값하게하시네요 22입니다 크크크크크
오호츠크해
19/02/18 12:38
수정 아이콘
다섯이서 만나지만 1:1로는 애매한 관계들이 있죠. 동감합니다.
김엄수
19/02/18 14:03
수정 아이콘
사실 다섯명이 다같이 똑같이 친한게 더 이상한거 같기도 해요.
특히 학창시절 친구들이 어떻게 처음 친해졌나 생각해보면
뭐 특별히 서로 엄청 잘 맞아서 사귄 경우도 있지만
그냥 하다보니 옆자리, 앞자리여서 친해지기도 하고 친구의 친구라서 친해지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게 꼭 나쁜거냐? 하면 뭐 서로 살짝 어색한만큼 더 배려하거나 챙겨주기도 하고요. 크크

개인적으론 단톡방 아니었으면 아예 연락 끊어졌을 친구들도 많다고 생각해서
그나마 단톡방 메타가 다행인거 같아요. 특히 남자들끼리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야 일대일로 굳이 할 얘기도 별로 없고...
19/02/19 11:03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 부분이 단톡방의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괜히 1대1로 연락하기 애매한 친구들과도 대화를 자주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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