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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20 03:29:52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삼국지 이후 - 동진 왕조 백여년의 역사



오호십육국 - 남북조시대 자체가 워낙에 난잡한 시대라서 이어지는 연대기의 그림을 그리는것조차 혼동스럽고, 대부분은 싸이코패스들의 시대 정도로 간단하게 묘사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유목민에 대한 묘한 로망 - 더불어 이후에 탄생한 '북위' 같은 나라가 오호십육국 시대부터 이어진 혼잡한 왕조들 중에서는 그나마 내실이 있기도 하고, 사실상 수-당이라는 제국이 여기서부터 탄생한 만큼 '북조' 는 그나마 씩씩한 상무정신.. 이런 이미지가 있는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남조' 는 그냥 '엽기!' '잔혹!' '섹슈얼!(?)' '호러!' 정도로 요약되는 느낌이구요. 그 외에 전체적인 이미지가 북방에서 깨지고 내려온 사람들이 약빨고 귀족놀이 했다-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북조시대에서 남조는 동진-유송-남제-양-남진으로 이어집니다. 유송이 59년, 남제가 23년, 양나라가 55년, 남진이 32년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첫번째인 동진이 103년을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화북에서는 전진이 서진 멸망 후 60여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통일을 이뤄냈고, 10년도 못 되어 다시 무너진 후 서진 멸망 훼서 따지면 123년이 지난 후에야 화북을 통일 합니다. 당시 남조는 동진이 100년 넘게 이어진 후 멸망하고 난 뒤에 들어선 유송 시대였습니다.




오호십육국 시절에 정말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나라들이 10년, 아니 5년도 안되어 무너진 경우가 부지기수라는것을 생각하면 동진은 극 초기부터 굉장히 오래 버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동진의 여건이 그렇다고 안정적이었다거나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호십육국의 난립이 벌어지는 북방 만큼이나 굉장히 혼란하고 아슬아슬했지만, 정말 묘하게 외줄 타기를 하고 버티면서 이어진 인상입니다. 동진의 뒤를 이은 남조 왕조들은 결국 동진이 이룩해 놓은 기본적인 틀에서 이어진 셈입니다. 더 불안불안 하거나, 혹은 더 퇴폐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실 이 시기는, 특히 서진 붕괴 후 근 50여년 가량은 다른 무엇보다도 '살아남는다' 는 것 자체가 어떻게든 버티기만 해도 장하다, 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례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면에서 그런 엄청난 대혼란기가 다 펼쳐진 후에 등장한 북위 등의 성공적인 모습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 이전에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5년 버티는 것조차도 어려웠던 수많은 북조의 정권을 생각해보면, 동진이 남쪽에서 만만찮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길게 정권을 유지하며 안정(?)을 확보한건 어떻게 보면 인정받을만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동진이라는 국가에 대해 언급될 떄를 보면 대부분 '막장 왕조'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해 받는 면도 있다고 보는게, 동진 왕조의 바로 앞인 '서진' 말기는 유례없는 세기말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남북조 시대 남조의 역사 역시 유례없는 막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남조 황실엽기사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유송' 시절부터 이어진 이야기들 입니다. 위태로운 시절에 동진이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난 뒤, 그 뒤에 왕조만 갈아끼워져서 등장한 왕조들에서 펼쳐진 일입니다. 그런데 서진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다른 남조 왕조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덧씌어지는 측면이 있구요.




또 다른 면으로 '황제들이 아무런 실권도 없었다' 는 점도 있습니다. 사실 동진 왕조의 황제들은 초창기부터 본인보다 오히려 신료들이 더 눈에 띄였고, 나중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심지어 아예 그냥 사리 분별 안되는 정신장애아까지 즉위하여서 단 한명도 정상적으로 권한을 휘두른 황제가 없다싶이 합니다. 때문에 '절대황권을 휘두르는 군주' '그게 가장 정상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비정상적 상황이며 많은게 잘못되어가는 상황' 이라는 전제에 매우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그 이상 더할 나위 없는 막장 상태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점도 앞서 이야기한 다른 남조 왕조와 혼동되는 측면이지만 군주들이 힘 없고 심지어 정신장애아가 즉위했다고 쳐도 후대 남조, 혹은 동시대 후조의 석호 같은 사이코패스 황제가 있던것은 또 아니고, 또 동진의 탄생 배경을 보면 "아...이건 황제가 당연히 힘이 없을 수 밖에 없구나." 그리고 더 나가서 "애초에 황제가 정치의 중심인 나라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처음부터 굉장히 복잡하고 다단한 세력들이 뭉치기도 힘든데 뭉쳐서, 정말로 아슬아슬한데 기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건드리면 툭 터질것 같은데, 그리고 실제로도 몇번 터졌는데, 어떻게든 메꾸고 겨우겨우 매순간 매순간을 버텨냈다, 그리고 그걸 100년을 넘게 했다, 이런 인상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가 버티기만 해도 장한 시대였고, 실제로 동진의 상황이 그렇게 버티는것만으로도 힘들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렇게 동진이 버틴 기반 아래에서 이후 남조 정권들이 유지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어느정도 인정 할만하지 않나 싶어요.





사설은 그 정도로 하고 동진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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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왕의 난, 영가의 난 같은 혼란으로 서진이 붕괴 수순으로 향하던 당시, '왕도' 라는 인물은 황족 중에 한 사람인 '사마예' 에게 서둘러 남쪽으로 몸을 피할 것을 권했습니다. 북방은 이미 끝없는 내전과 이민족의 유입으로 지옥문을 열어제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예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지옥같은 북방에서 몸을 피해 '건강' 지역을 수도로 한 동진 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사실 이 무렵에는 황족들의 대립이 너무나도 극심해서 사마예는 본래 거의 억류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비바람이 치는 것을 틈타 간신히 도망쳤고 그마저도 문지기의 검문에 걸려 잡힐뻔할것을 측근의 도움으로 정체를 숨겨 간신히 벗어났던 것이니,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그 직후에 북방은 유연의 이민족 군단에 의한 낙양의 포위, 거기서 낙양을 빠져나가던 10만 명이 석륵에게 습격 받아 학살 당하는 사건, 살아남은 황제는 잡혀와서 술 따라주고 옛 신하들은 무릎 꿇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등등, 문자 그대로 지옥이 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악몽 같은 북방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남쪽의 사정은 어떨까요?



 이 남방 지역은 삼국지의 오나라에서부터 볼 수 있는 토착 호족들의 세력이 아주 강했는데, 반면에 정권의 중추가 되는 사람들은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은 '북방을 수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는 대의명분이 있습니다. 반면에 토착 호족들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냐. 여기가 내 고향인데.' 라고 할법 하구요. 




 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그것도 먼저 내려와 정권의 중추에 이른 사람, 나중에 내려와 빨대 꽂아보려는 사람, 본래 현지에 있던 호족들, 우호적인 호족, 적대적인 호족, 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애초에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 이민족 출신 등등.... 



 생각만 해도 복잡하고, 애초에 같은 이념 같은게 없는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들입니다. 더군다나 호족들의 세력은 강하고,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세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설사 남방에 왕조가 새로 생긴다한들, 그것이 꼭 북방인을 군주로 섬기는 정권이 되라는 법은 없었던 셈입니다.






1. 북방에서 내려온 정권의 중추
 〔 적극적 북벌론자
 〔 미온적 북벌론자
2. 남부의 현지 호족 - 애초에 북벌 생각도 안함
 〔 북방에서 내려온 귀족들과 사귀며 뻐기는 유력한 호족
 〔 자립성향이 매우 강하고 중앙 호족들에게 무시받아 불만 있는 지방의 호족들
3. 무리를 이끌고 개별적으로 내려온 사람들
4. 이민족 출신

5. 북방에서 이빨을 번득거리는 오호들
6. '풍요로운 강남' 같은 강남 개발도 덜되어 시골 벽지가 더 많던 상황





가히 요즘 양안 관계 뺨치는 상황으로, 애초에 서로 엮일만한 공통점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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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인물이지만, 사실상 이 인물이 손에서 남조 정권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여기서 사실상의 동진 개국자나 마찬가지인 왕도가 절묘한 수를 부립니다. 그는 강남 호족들을 섣불리 전부 제압하려 하기보다는, 교묘하게 이간질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호족이라 해도 세력과 명망에 따라 성향이 다른 법입니다. 특히 훗날의 소주(蘇州)로 유명한 오군 같은 경우는 장(張), 주(朱), 육(陸), 고(顧)으로 불리는, 삼국지에서도 이름을 들어봤을만한 유명인들이 즐비한 '오의 사성' 같은 명문가들의 본거지이기도 했기에 소주-회계 지역은 호족들이 지식도 많고 명망도 높고 따라서 그만큼 명예와 출세욕 역시 강한 편이었습니다.



 왕도는 이런 호족들을 특히 우대하고 잘대해주는 한편, 그 외에 좀 더 명망 낮고 후진적인 지방의 호족들은 의도적으로 푸대접 했습니다. 애초에 지방의 깊은 곳으로 가면 갈수록 조정의 영향은 약하고 현지인들의 입김이 강한 것은 많은 나라들이 비슷합니다. 동진 정권의 힘으로는 지방 곳곳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힘들고, 자연히 그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것도 공염불에 불과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니, 중심지에 살고 있는 거대 호족들은 자연스레 동진 정권에 적극 협조하면서, 동시에 지방의 호족들에 대해선 '우리와는 수준이 다른 촌놈들' 이라며 무시하고 깔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남인들은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창자(傖子)라고 부르며 '잘난듯 뻐대면서 우리를 무시하는 놈들' 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되니 몇몇 사람들은 저들이 우리를 하층민처럼 여기고 무시한다, 고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나도 여기에 줄을 서서 상층민처럼 되고 싶다' 고 마음을 먹게 되는 겁니다. 



 왕도는 이렇게 일부는 적당히 우대하고. 일부는 적당히 천시하고, 나눠주면서도 동진의 기반 자체가 넘어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식으로 왕도의 절묘한 정세 조절 능력 속에서 호족들과 연횡 관계를 맺으며, 강남 호족들이 단압하여 저항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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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동진의 수도는 잘 알려졌다시피 바로 건강 입니다만은, 동진에는 수도 건강 외에도 제 2 국도라고 할만한 지역이 있었습니다. 바로 형주 지역, 특히 무창(武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애초에 그 이전의 강남 정권인 오나라도 건강(건업)과 무창을 수도로 번갈아 썻을 정도니, 이 두 지역이 강남의 가장 중심지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수도 건강 지역은 황제인 사마씨를 비롯하여 여러 유력 호족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왕도가 머물며 호족들간의 복잡 미묘한 문제를 처리하며 조정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여기에 반해 무창은 일종의 군사도시 였습니다. 왕도의 사촌인 왕돈(王敦)이 여기서 군정(軍政) 대권을 맡고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건강이 유비가 있는 촉 지역이라고 하면, 왕돈은 형주의 관우 같은 입장이었던 셈입니다. 




 양주 지역의 건강은 행정수도로서 기능하고 있고, 좀 더 군사적으로 위급한 형주의 무창 지역은 군사도시로서 따로 독자적인 총독이라 할만한 인물이 지키고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중심적인 인물은 같은 왕씨 일족인 왕도와 왕돈이었구요.




 동진은 사실상 북에서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방 이주민들과 현지 호족들의 느슨한 연합을 왕도의 수완으로 엮어 만든 연합 정권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이 와중에 왕씨의 힘이 너무 크다고 느낀 사마씨 황족이 섣불리 견제를 하려고 하자, 분개한 왕돈이 무창의 군사를 이끌고 수도를 뒤짚어 엎어버리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다만 이건 왕돈의 독자행동이었지 왕도는 여기에 동조한 적도 없고, 반란이 일어났어도 왕도는 처벌을 안 받았으며 왕돈 역시 거병하고 난 후에도 왕도를 사촌이라기보다도 조언을 얻기 위해서 그대로 두고 손을 쓰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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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간




 이 왕돈의 반란과 전횡은 왕돈 본인이 급사 하면서 끝나게 되었지만, 군사도시인 무창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군사 실력자인 왕돈이 죽은 뒤에도 또다른 군사 실력자를 두어 관리하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왕돈 사후에 이 역할을 부여 받은 인물이 바로 도간(陶侃) 입니다.



 형주자사가 된 도간은 나중에 대장군으로서 조정에서 '구석' 을 제안받기도 할 정도로 동진 최고의 실력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다만 도간 본인이 사양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삼국지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양호' 에 이미 당대에 비견 되고, '총명함은 조조에 버금가고 충성심은 제갈량을 떠올리게 하니 육항 같은 인물조차도 비견될 수 없다' 는 평을 들을 정도의 인물이었기에 군정을 장악하고 있다손 쳐도 달리 사건이 벌어지진 않았습니다.




 여하간에 왕돈에 이어 도간이 형주를 도맡으며 사실상 독립세력처럼 군사를 부리며 자치를 했는데, 수도 건강에서 보면 이쪽은 서쪽 입니다. 즉, 동진 제국의 '서부군단' 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이 서부군단이야말로 동진 제국을 수소하는 '제국의 최정예 방패' 인 동시에, 왕도 같은 인물을 제외하면 동진 최고의 실력자가 도맡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동진에는 가장 핵심적인 서부군단 말고도 개별적인 군대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대들은 대혼란 동안 북에서 내려온 집단들이 뭉친 일종의 유민(流民) 군단으로서, 똑같이 북에서 내려왔지만 지금 건강에서 조정의 중추를 이루는 사람들과는 별개의 집단이고 사실상 사병 군벌 집단입니다.



 일단 이들 역시 북에서 도망쳤고 북방의 오호(五胡)에 적대적이니 만큼 감투 하나씩 주고 군사력으로 써먹을 수는 있지만, 사병 군벌들이 많은게 조정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습니다. 다만 건강에서 조정을 이끌어 나가는 왕도는 워낙에 수 많은 정치세력들을 한 데 엮는데 중점이다 보니 '무리하지 않는 것' 이 가장 큰 목적이라 함부로 손을 대는 걸 꺼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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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량




 그런데 이때 새로 즉위한 황제는 겨우 다섯살 짜리였고, 황태후의 오빠인 유량(庾亮)이 조정의 중추로 대두했습니다. 당시 왕도는 여전히 존재감이 강했지만 예순살이었기에 젊은 외척인 유량이 아무래도 건강의 조정에서 더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세설신어에 따르면 유량은 얼굴이 아주 잘생겼고 위풍은 당당하기 그지없었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무게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부러 폼 잡으려고 저러는거 아니냐' 는 말이 없지는 않았지만, 외척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여러모로 패기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할만 합니다.




 여하간에 이렇게 자신만만한 유량에게 있어 매사 모든 일을 균형을 잡고 안정을 유지한채 처리하려는 왕도의 방식은 답답하기 그지없게 보였습니다. 왕도는 동진이라는 이 정권이 얼마나 위태롭게 서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러했던 것인데, 유량은 겁이 없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바로 유민 군단 문제였습니다.




 유량은 유민 군단 중에서 세력이 커서 1만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있던 소준(蘇峻)이라는 인물을 견제하고자 조정에 불러들였지만, 오히려 소준은 이에 분개해 반란을 일으켜서 수도 건강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나름대로 막아보려고 했던 유량이었으나 인망이 부족해 소용이 없었고, 결국 유량은 어쩔 수 없이 도망갔습니다. 이윽고 건강을 장악한 소준이었지만, 소준 역시 명망 높은 왕도는 손을 대지 못하고 달리 위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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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실패와는 별개로, 세설신어에 따르면 유량이 도주할 적에 이런 폼나는 일화도 있긴 합니다.





 도망간 유량은 자기와 친한 온교(溫嶠)라는 사람에게 의지했습니다. 세설신어에 따르면 온교는 왕년에 '노름중독자' 였는데, 노름을 좋아한것과 별개로 잘하지는 못했는지 상인들과의 노름에서 걸핏하면 다 털리고 내줄 돈이 없어서 팔려나갈 신세가 되었고, 팔려나가다가 옆에 지나가는 유량을 보고 "날 좀 빼줘!" 하고 소리를 질러 유량이 노예로 팔려나갈 온교를 돈을 주고 구해준게 한두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튼 건강이 함락당한 상화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동진 최후의 방패, 서부군단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간은 유량이 너무 독단적으로 설쳐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탐탁치 않아 하며 "유량의 목을 베어 천하에 사죄해도 시원치 않다." 면서 군사를 움직이기를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유량에게 도박빚을 여러번 구원받은 온교가 수차례 설득하자 결국 도간도 마음이 움직여 4만 군단을 이끌고 수도로 진격했고, 격렬한 싸움 끝에 결국 소준의 난을 진압했습니다. 서부군이 동진을 구원한 셈입니다.




 
 한편, 이런 실력자인 도간이 사망한 이후 서부군의 총 책임자는 바로 유량이 맡았습니다. 




 그 전까지 무창은 군사기지라는 느낌이 더 강했지만, 유량 시대부터는 건강 같은 귀족 사회로 변모해갔습니다. 유량 본인부터가 귀족 자제였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건강에서 밀려난 입장의 사람들도 이곳으로 몰려왔고, 여러모로 무창은 건강 못지 않은 정치, 문화, 산업 전반에서 강력한 기반으로 변모했습니다. 앞서서 지방 군단의 발호를 경계해 소준의 난을 유발한 사람이 유량이었는데, 묘하게도 유량 본인이 서부군단의 기반을 더 견고하게 만들며 건강 못지 않는 독자세력으로서 확립시켜버린 겁니다.




 아무튼 유량은 군사권을 손에 쥔 만큼 마음에 안드는 왕도를 타도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짓은 안하는게 낫다." 며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아 방법이 없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유량 답게 "이젠 북벌을 합시다." 고 주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대신, 유량은 다른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그전까지 동진에선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머물고 있는 토착 지역의 '적' 같은게 없으니만큼 자연스레 '면세' 대상이었습니다. 토착 강남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차별이기 때문에 기분 나쁜 일이었고, 국가 입장에서도 세수가 적어질 수 밖에 없었던 문제 입니다.



 다만 맨몸으로 탈출해 왔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는다면 반발이 극심할 것 같았기에 뭐든지 안정을 추구하는 왕도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이미 남쪽으로 이동한지 30년도 지난만큼 유량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 '토단법' 을 밀어붙혔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유량이 왕도보다 더 성과를 냈다고 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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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온




 유량이 죽은 후 서부군단 수장의 자리는 동생인 유익에게 이어졌습니다. 유익은 천하의 부도(副都)인 무창의 주인이었지만, 그 유익이 죽을때 아들인 유원지는 나이가 아주 어렸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유원지가 이를 이어받아야 하겠지만, 건강의 황제라면야 나이가 어려도 어쩔 수 없지만 서부군단의 후계자가 나이가 어린건 곤란했기에 실력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추천된 인물이 바로 환온(桓溫) 입니다. 환온은 본래 서부군에서 유익의 지인으로서 여러차례 정국에 대한 의논을 맡이하고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무장으로서도 유능했고, 문에도 재주가 있어 당대에 유행하던 청담에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 환온은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서부군단의 수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촉으로 원정해 당시 사천 지방에 할거하던 성한(成汉)이라는 지방정권을 멸망시켰습니다. 형주를 지나가는 양자강의 상류가 사천에 있는것을 생각하면 동진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승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망명 정권으로서 북방 수복을 바라는 동진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쾌거라고 할만한 성공이었습니다.



 때문에 여러모로 들떴지만, 생각을 해보면 이는 좋지 않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동진이라는 국가는 여러 정치 집합체가 정말로 미묘한 균형으로 이어진 국가인만큼, 환온 같은 인물이 갑자기 확 튀는것은 결국 바로 국가가 뒤집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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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서부군단' 과는 또 다른 '북부군단' 입니다.



 삼국시대 오나라와 위나라를 생각하면 형주 방면과, 합비를 위시로 하는 서주 방면의 전선이 생각 납니다. 형주 방면에는 바로 서부군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동 반도와 서주 쪽에서 내려오는 세력을 막기 위한 군단이 또 필요 합니다.



 앞서 반란을 일으킨 소준처럼 북에서 내려온 유민 군단 중에 치감(郗鑒)이라는 인물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조정에서 허락을 맡고 양주 일대에서 주둔했는데, 형주의 서부군단 만큼은 아니었지만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세력이었습니다. 과거에 서부군단의 왕돈 마저 치감을 경계하여 견제했을 정도 입니다.



 동진 건국 1세대에 속하는 치감은 마찬가지로 건국 원훈인 왕도와 비슷한 시점에 사망했고, 비어있는 후임 자리에 조정에서는 은호(殷浩)라는 인물을 이 북부군 수장의 자리에 맡아 환온과 경쟁시켰습니다. 서부군단의 환온 vs 북부군단의 은호 구도가 된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환온과 은호는 본래가 어린시절 죽마고우였습니다. 아니, 애초에 죽마고우라는 말이 둘 사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주로 은호 쪽에서 환온에게 강한 열등감과 라이벌 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북방의 후조가 쇠퇴하여 견고해 보였던 북조가 흔들리게 되자, 북벌의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조정에서는 은호를 중심으로 북벌군을 파견했습니다. 초반에 승승장구 하는듯 했던 은호는 결국 처참하게 실패했고, 오히려 환온은 이를 기회로 은호를 탄핵하여 서부군에 이어 북부군까지 손아귀에 쥐어버렸습니다. 환온에 대한 견제책이,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해준 셈입니다. 여기서 동진 조정을 유지하는 '미묘한 균형' 이 처음으로 확 깨져버리게 됩니다.




 반면 환온은 강릉에서 출발해 장강을 타고 올라가 관중을 정복하고 남쪽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환상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던 옛 도읍 장안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군공을 세웠습니다.



 남방으로 이주한 지 40여년,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에서나 들었을 전설의 도시 장안을 실제 눈으로 보았을 동진 장병들의 마음도 가히 터질 듯 했겠지만, 삼국시대와 서진의 멸망 이후 오호가 육박한 뒤 수십여년간 '조국' 이라고 생각하는 진나라 군사를 보지도 못했던 관중의 늙은이들은, 반백년이 흘러 청년이 노인이 되는 시간이 지나 다시금 진의 깃발이 휘날리는것을 보자 믿을 수 없어 하며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오늘날 다시 관군을 보게 될 줄이야!"




 그렇지만 야심 많은 환온은 눈앞의 장안이 아니라 수도 건강의 정치 다툼에 신경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런 환온의 귀에 동관 서쪽, 성스러운 산인 화산의 북쪽 화음편이라는 곳에 왕맹(王猛)이라는 현자가 산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동진 최고의 실력자이자 반세기만에 최대의 공적을 이뤄낸 영웅 환온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 왕맹이라는 인물은 허술한 누더기를 거리고 와서는 머리에 있는 이를 잡아가며 태평하게 시국을 논했습니다. 먼저 환온이 물었습니다.



 "나는 천자의 몸을 받들어, 잘 훈련된 병사 10만을 이끌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잔적을 제거하고자 하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삼진의 호걸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오?"



 관중에 군대가 다시 당도했으니 마땅히 관중의 영웅호걸들이 돕기 위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런 지원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왕맹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공은 수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적경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소. 그리하여 지금 장안을 지척에 두고도 파수(灞水)를 건너지 않고 있는데, 백성은 공의 본심을 모르오. 달려오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소."



 어찌하여 장안의 바로 앞까지 왔으면서도, 파수를 건너지 않는가? 사람들은 이 떄문에 그대의 본심이 다른 곳에 있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는 것이 왕맹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온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강동(강남)에는 경에 비할 사람이 없겠소."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환온은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유우부단한 면모를 평생에 걸쳐 보여주기도 합니다. 환온은 형세를 관망했지만 생각보다 내통이라던지 적의 내분 같은 징후가 없었고, 관중의 보리 역시 적이 먼저 손을 써서 베어갔습니다. 백록원이라는 곳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환온은 전진의 승상인 부웅과 싸워 1만명이나 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전진 역시 큰 피해를 입어 황태자인 부장이 전사했습니다. 



 어찌되었건 관중의 주민 3천명과 함께 환온은 위풍당당하게 귀환했고, 이때부터 환온은 서부, 북부군을 한손에 쥐고 건강에도 대적할 자가 없는 동진의 절대적 일인자가 되어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유우부단한 면이 있어 욕심은 있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황제는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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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전투



 한편, 화북을 통일한 전진의 부견은 100만 대군을 동원해 동진을 쳤으나 실패했고, 그 여파로 전진이라는 나라 자체가 망해버렸습니다. 환온의 찬탈을 마지막까지 저지하고, 비수 전투 승리를 이끌어낸 동진의 명재상 사안(謝安)이 죽은 뒤에 정권을 잡은 사람은 황족인 사마도자(司馬道子)였는데, 이 사람이 술 밖에 안 먹는 술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자치통감에 주를 달았던 호삼성은 "이때부터 동진이 망해갔다." 고 했을 정도 입니다. 




 비수 전투 이후,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북부군단은 그 위상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때문에 북부군 수장 왕공(王恭)이 건강의 사마도자에게 압박을 넣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왕공은 '북부군은 당연히 내 군대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북부군은 그 지역에 뿌리를 박은 병호(兵戶)로서 그 지역에서 가족을 대리고 세습적으로 2세, 3세까지 이어진 직업 군인들이었기에 조정에서 온 장수에게 전혀 호감이 없었습니다. 초대 북부군단장인 치감 같은 사람은 같이 이주한 사람으로서 병사들과 유대감이 아주 강했지만 이때는 북부군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귀족들이 임명 받아 장수가 되곤 했습니다.



 결국 왕공은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오히려 실패하고 죽었고, 이후 북부군단장은 북부군 출신이라 할 수 있는 유뢰지(劉牢之)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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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 주변에서 집결하는 손은의 반란군, 유뢰지의 북부군, 환현의 서부군





  그런데 이 무렵, 손은이라는 인물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바다에서부터 반란을 일으켰고 동진의 후방인 회계를 쳤다고 하니, 국경 지대가 아니라 배후에서 일어난 반란이었습니다. 이 손은의 반란은 반란 중에서도 굉장히 기괴한 광신적 반란이었는데, "아기들도 죽인다." "관리를 죽이고 소금에 절이고 처자에게 일부러 먹이고 안 먹으면 죽인다" "난교 연회를 펼친다" 등등 비상식적인 집단이었습니다.



 비수 전투가 있던 시절에서도 시간이 지나서 군사들의 실전 경험 문제도 있고, 동진의 군사력은 서부군과 북부군에 집중되어 있기에 배후의 지방군은 손은의 반란군에 힘을 못 썻습니다. 수군 전력이 강하던 손은의 군은 건강 바로 앞까지 진군해 왔습니다.



 이때 유뢰지의 북부군이 움직였고, 특히 북부군 소속 장군 유유(劉裕)가 대활약을 펼쳐 이름을 날렸습니다. 



 바로 이때, 서부군 역시 움직였습니다. 서부군의 수장은 과거 황제 자리를 얻기 직전까지 갔던 환온의 아들, 환현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환현은 평소에도 건강의 조정에 대해 별로 좋지 못한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고, 특히 지금 정권을 가진 사마도자의 아들 - 사마도자가 늘 술만 마셨기에 아들이 대신 일을 했습니다 - 사마원현에게 아주 비판적이었기에, 서부군이 진군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건강의 조정에는 기겁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서부군이 강을 건너오기 직전, 손은 군대가 대패하고 퇴각하였기에 서부군이 건강으로 진격해올 명분이 사라졌고, 건강의 조정에서는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욕심이 난 사마원현은 "이 기회에 골칫거리인 환현을 제거하자." 는 마음을 품기에 이릅니다.



 조정에서는 환현을 반란군으로 선포하고, 북부군의 유뢰지에게 제거 명령을 내렸지만, 반대로 환현에게 매수된 유뢰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반란군 선언은 했는데 막상 서부군을 막을 대상이 없어진 건강의 조정은 속절없이 무저항 상태로 서부군에게 공격 받아 사마도자, 사마원현 모두 참살 당했습니다. 서부와 북부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용하려던 동진 조정의 균형추가 여기에서 깨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이제 환현이 마지막 골칫거리인 북부군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는 유뢰지에게 군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고, 여기에 발끈한 유뢰지가 저항하려고 했지만 북부군 측근들은 "왕공에 이어 사마원훈, 그리고 이제 환현까지, 어떻게 사람이 세 번을 배반하려고 하는가?" 면서 전부 유뢰지를 버리고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결국 유뢰지는 궁지에 몰려 자살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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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환현은 여기서 굳이 자살한 유뢰지의 시신이 도착하자 관을 열어 목을 베어버려 수급을 저자에 내걸었습니다. 북부군 장병들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목 잘린 귀신이 된 자기 사령관의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유뢰지의 옛 부하였던 북부군의 주요 간부들도 환현에게 모조리 숙청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세 번 배반하냐며 유뢰지에게 협조를 거부했던 간부들도 북부군 소속이었던 것만으로 숙청 대상이 되어, 북부군 고급 참모들은 모조리 전멸할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중급 장교 이하들도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다만 유유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렇게 북부군 간부들을 제거한 환현은 자기 사촌동생을 북부군 수장에 올렸지만, 마찬가지로 일반 북부군 장병들은 오히려 환현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현은 팔자좋게 기어코 선양 형식으로 황제 자리에 올라 새 왕조인 '초' 를 건국했지만,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유유가 반란을 일으켜 환현이 임명한 북부군 수장을 참살하고 군대를 가지고 건강으로 진격, 환현을 죽이고 '유송' 을 건국했습니다. 이렇게 100여년간 이어진 동진이 멸망 합니다.




 여하간에 애초에 태생부터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굉장히 미묘하게 균형추를 유지하며 이어가야만 했던 정권인데, '황실의 힘이 약했다' 이런 점을 제껴두고 보면 오호의 위협, 수많은 정치세력의 난립으로 인한 반란 위협, 어린 황제들의 단명 같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기묘하게 건강의 조정, 무창의 서부군, 북부군의 균형으로 잘도 버텨냈다 싶은 인상입니다. 야심가들이 득실거렸지만 막판에 이르기전까지는 어떻게든 제어가 되고, 그러면서도 의외로 북벌을 하며 성과를 내는 모습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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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30세(무직)
18/11/20 03:43
수정 아이콘
대의 명분의 중요성이지요. 게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옛사람들이 생각이 없어 대의명분을 외친게 아닙니다. 게임에서야 일본이 조선을 먹으면 한 땅이 되지만 30년이 지나서도 결국 하나가 되지 못했지요. 대의명분이 없으니까.

갑자기 한나라가 위대해 보이네요. 그 7국의 정체성을 하나로 뭉치게 해서 결국 하나의 중국의 시작을 만든건 하나라니까요.
조말론
18/11/20 10:50
수정 아이콘
역시 하나라 최초의 왕조지
올리브카레
18/11/20 07:35
수정 아이콘
감사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루크레티아
18/11/20 10:07
수정 아이콘
제가 예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입문한 책이 채지충의 만화 세설신어 였는데, 거기서는 아주 인물들 평이 거의 애국충정 충의지사에 신선놀음 수준이었죠. 그런 미화 만화에서도 저래도 되나 싶은 사례들이 꽤나 있었는데 실제 사서를 보니 이게 무슨 막장의 향연인가 싶었습니다..
홍승식
18/11/20 10:54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임에도 남북조 시대는 너무 어렵네요.
저 시기를 살았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도뿔이
18/11/20 11:14
수정 아이콘
동진이 신기한게 나라 돌아가는 꼴 보면 십년도 못갈거 같은데 어찌저찌 버티는데 위에서 나오는 함양 정벌이나 비수대전 승리같이 이제 좀 사정이 나아지나 싶으면 더 엉망이 됨
열역학제2법칙
18/11/20 11:41
수정 아이콘
유...송......
웅진프리
18/11/20 12:16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봤네요 남북조시대 역사는 잘 모르고있었는데 잘보고 갑니다 크크
시나브로
18/11/20 15:03
수정 아이콘
진짜 역사는 그냥 스토리 그 자체.. 삼국지, 삼국지 전,후, 그 전의 전, 그 후의 후, 한중일, 유럽, 세계사..
불려온주모
18/11/20 22:5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동진이 진짜 그나마 서진 적통이라고 성씨만 사마씨인거지 내부적으로는 왕이 실권을 쥔 적이 거의 없었군요.
신불해
18/11/21 11:15
수정 아이콘
전 그냥 호족유민군벌 연합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18/11/21 12: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의문이 있는데, 유송 건국은 환현을 죽이고 한참 이후 아닌가요? 유유가 권력을 잡고 북벌에 계속 성공한 이후에 찬탈했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신불해
18/11/21 15:30
수정 아이콘
한참 이후 맞습니다.

전쟁사 보다는 동진의 전체 역사를 살펴보려던 글이라, 환온의 북벌도 환온이 대두한 첫 북벌만 언급하고,

북서부군 수뇌가 다 날아가고 환현 때문에 건강세력도 날아가서 완전히 유유의 천하가 되서 시간문제라 유유의 북벌등은 생략했는데, 문맥상 바로 유유가 찬탈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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