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를 자주 접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은 일본 특유의 감정과 정서가 있습니다.
특히나 영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류의 서브 컬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 감수성'은, 익숙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서입니다.
'그 감수성' 중의 하나인 소년과 소녀의 싱그러움을 묘사하는 것만 보더라도
아주 훈훈하고 공감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감정과, 중2병의 원조나라다운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정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있죠.
결국 제작자가 약간만 삐끗해도, 일본인을 제외한 타국민이 보기엔 오글거려서 도저히 보기 힘든 무언가가 되기 십상입니다.
(요즘은 자국민들도 차마 눈뜨고 못볼 작품들만 나오는 거 같지만)
이 글에서 소개할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위에서 볼까?] (이하 쏘불꽃)라는 작품은 그런 감정을 건드리고 있는데요.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일본 특유의 Boy meets girl 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물론, 일본 본국에서만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빼놓더라도, 이 주제로 한국에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도 굉장히 많습니다.
대박을 터트려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을 대표로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라거나 '타마코 러브 스토리' 같은 류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그것이죠.
말고도 이쪽 계열에서의 비슷한 작품은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이러한, 좋게 말하자면 익숙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식상한 주제로, 이 작품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2] 간단한 줄거리 소개 [스포일러]
주인공 시마다 노리미치는 평범한 중학생입니다. 반에 신경쓰이는 예쁜 여학생 오이카와 나즈나를 빼면.
슬프게도 노리미치는 말주변도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데다가 절친이 나즈나를 좋아하는걸 알기에 고백은 커녕 말조차 제대로 못 거는 형편입니다. 훌륭한 마법사의 재질이지요.
말도 못걸고 전전긍긍하던 사이, 그가 사는 마을은 불꽃 축제가 벌어지고 나즈나는 노리미치의 절친을 꼬셔서 놀러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리미치의 친구는 오히려 나즈나에게 고백을 받자 도망을 쳐버리고, 노리미치를 나즈나에게 대신 보내버리며
두 사람은 어색하게 귀가길에 오르다가 노리미치는 나즈나가 어머니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알고보니 나즈나의 어머니는 사별 후 재혼하려고 했고, 복잡한 집안사정으로 나즈나는 가출하려다 잡힌 것.
눈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노리미치는 자책과 분노에 빠지게 되어
나즈나가 떨군 어디선가 주운 예쁜 구슬을 힘껏 집어던지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 때 내가 나즈나랑 불꽃축제를 갈 수 있었다면...'
그러자 구슬이 빛을 내며 시간이 되감기기 시작하는데....
[3]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
서브컬쳐에 익숙한 분들은 시놉시스만 봐도 "그거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겁니다.
멀리 갈 필요없이, '너의 이름은.' 에서도 남주인공은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위해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유명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소재의 참신함은 없기 때문에, 대신 그러한 작품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차별성을 내세워야 하는 것인데...
일단 스토리부터 조금 더 짚어보죠.
최대한 건조하게 얘기하자면,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주인공은 나즈나와 데이트를 성사시켜 사건을 바꾸는데 성공하지만 절친에게 현장을 들키는 바람에 도망가고
전철역에서 가출하자고 주인공을 꼬시는 나즈나를 두고 갈등을 하는데, 나즈나의 부모님이 나타나 나즈나를 데려갑니다.
이것이 후회가 된 노리미치는 들고 있던 구슬을 재차 던지게 되어 다시금 시간을 되돌립니다. (루프라고 합니다)
시간을 되돌린 노리미치는 이번엔 나즈나를 성공적으로 빼돌려 전철을 타고 달아나지만
전철이 지나가던 경로에 주인공의 친구들에게 모습을 들키고, 설상가상으로 나즈나의 부모님도 차를 타고 쫒아옵니다.
두 사람은 역에서 내린 뒤 계속 도망을 치다가 등대 위로 올라가게 되고 그 등대 위에서 불꽃놀이를 보는데 (이 작품의 핵심인 불꽃놀이)
두 사람이 본 불꽃놀이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모양으로 터지고 있었습니다.
노리미치는 그것을 보고 이것이 자기가 존재하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구슬을 던지며
그렇게 다시 루프한 세상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자기 맘대로의 세상이었습니다.
전차가 바다 위를 달리고, 세상은 투명한 막으로 덮여있으며, 불꽃은 꽃모양으로 터지는 황당한 세상에서
노리미치와 나즈나는 세상이야 어떤 모양이든, 같이 있을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포지션을 취하지만
마지막 루프 전에 노리미치가 잃어버린 구슬을 지나가던 폭죽담당 아저씨가 주워서 (불꽃놀이 구슬이었음) 쏘아올리자
비현실적인 세계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세계의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그 파편들에는 수없이 많은 현실의 분기점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중학생이 단 둘이서 가출해서 자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꽃놀이의 불꽃이 평퍼짐하게 퍼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이러한 만들어진 세상에서 둘만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은 두 사람은
이별하며, 자신들의 앞에 놓인 현실은 이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어느것일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
[4] 비유와 상징
제목에도 들어있는 불꽃, 불꽃놀이의 불꽃은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작품내에서 지겹게도 되풀이하는 말이 있는데요. 주인공의 친구들의 완전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불꽃이 터지는 걸 옆에서 보면 둥근 모양일까, 평퍼짐한 모양일까?"
당연하지만 불꽃이야 어디서 보든 간에 둥근 모양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이거 가지고 논쟁을 합니다;
그러더니 결국 직접 보러 가자고 계획을 짜게 되면서 이야기가 굴러가는데
이 불꽃은 나중에 노리미치가 자신이 현실에 있는게 아님을 깨닫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위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노리미치는 불꽃이 터지는 광경을 두 번 더 보게 되는데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불꽃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구슬을 던지며 만들어낸 것이 초현실적 세계임을 알게 되죠.
그 외에도 제작사인 샤프트 특유의 연출이 종종 등장하는데
사랑의 도피(?)를 하던 두 사람이 전철 안에 있을 때, 나즈나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하면서 배경이 쫘라란 바뀌면서 여러 상징물이 나오지만
어...... 사실 별로 이야기랑 연관은 없습니다.
마지막에 노리미치가 만들어낸 세상의 막이 부서지며 떨어지는 조각들. 이것은 주목해보고 싶은데요.
저는 이 작품이 하고싶은 말이 결국 '후회'라고 보기 때문인데
우리가 살면서 사소하든, 중대하든 여러 후회를 하며, "아, 그 때 그랬어야 했는데!" 라고 무릎을 치지만
막상 그 때로 돌아가서 선택지를 바꿨을 때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말이 꼭 2, 3개가 아니라 수십에서 수백가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조각들에는 나즈나가 노리미치의 절친과 사귀는 결말, 둘이 도쿄로 무사히 도망가서 키스하는 결말 등 여러 변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장치가 다 부서져서 무위로 돌아가듯, 현실은 되돌려서 다시 할 수 없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비현실적 공간에서 이별을 하는 것은, 누군가를 잡으려면 소원을 들어주는 만능의 구슬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가서, 현실의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5] 비판
이 영화는 똥입니다. 일본인들의 기준으로 봐서 똥이고, 한국인의 기준으로도 똥이라는 감상 (주: 네이버 영화란)이 다수며,
제가 봐도 이 영화는 똥같기 때문에 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중간에 뛰쳐나가고 싶은 적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습니다.
고작 1시간 반 정도의 러닝 타임인데, 실 체감은 10시간같은 느낌...
(1) 의미없는 소재의 무한 반복
제가 건조하게 얘기해서 그렇지만, 실제로 이 작품을 보면 말이죠. 1시간 30분의 시간 중에 1시간 정도는 불꽃 얘기만 합니다. (과장)
아까 말했던 불꽃이 터질때 둥근가, 평평한가? 그거요. 아, 제발...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를 봅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초속 5cm인지는 작품 첫 장면에서 나옵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cm래" 라는 나레이션이 잠깐 말해주고, 이후로는 이거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언급하지 않지만, 연인의 마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제목이 왜 나왔는지 압니다.
근데 이 작품은 걍 시시때때로 불꽃놀이만 얘기합니다. 시간이 되감겨서 같은 장면을 또 보여줄 때도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제 친구가 "불꽃은 평평하게 터진대!" 라고 하면 "그게 무슨 XXXX야 XX!" 같은 반응만 나왔을거 같은데요.
똑같은 얘기만 주구장창 듣다보니 나중에는 그게 심드렁해집니다.
비유를 하려면 좀 은근하게 넣어야 하는데 이건 폰팔이 광고를 보는거 같아요.
(2) 이입하기가 너무나 힘든 캐릭터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노리미치말인데요. 나이대를 고려해도 (작중 학생들은 전부 중학생) 그냥 이상해요.
아니, 인물상은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남주인공 상입니다.
쑥맥에, 좋아하는 감정을 스스로 인정 안하고, 말주변 없는데, 이상한데서 행동력이 넘치는.
근데 이 캐릭터가 그냥 이상합니다. 감정 이입이 전혀 안 되요. 아, 남주인공만 이상한건 아니고, 주인공 친구들 포함해서 전원이.
예컨데... 아니 그만두죠. 주인공 행적을 되짚으니 다시 멍해지네요. 그리고 위에서 대충 얘기했고.
주변 인물들을 얘기해볼게요. 주인공 친구들은 가슴 큰 여담임을 성희롱합니다. (이걸로도 말이 많았던걸로)
그 중 가장 적극적인 녀석은 수업중에 담임을 놀리더니 책상위에 올라가면서 난동도 부리네요?
이게 하하호호 웃어넘겨서 그렇지 사실은 일본의 무너져가는 교육을 반영한 현실인 걸까요?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을 비롯해서 캐릭터들이 그냥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형의 캐릭터다보니
(말 그대로 애니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듯한 모습)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듭니다.
(3) 의미를 알 수 없는 전개
불친절한 작품이 꼭 졸작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가령 영화 인셉션은 이해하기 난해하지만 인셉션이 그 때문에 망했다는 소릴 듣진 않죠.
그런데 이 작품은 이야기 내용은 내용대로 불친절하면서 (상징과 비유로 마구 떼우면서..... 정작 그 상징과 비유가 고급스럽지도 않아요;)
전개는 한마디로 말해서 '그냥' 입니다.
가령, 주인공이 루프 한 번 하고 나서 나즈나가 집에 찾아오자 절친에게 들키기 싫어서 자전거에 태우고 도망을 가는데
이유는 '그냥'이고
이렇게 도망을 간 목적지는 결국 전철역입니다. 왜 전철역으로 갔나요? '그냥'요.
(진짜로 작품중에 이렇게 나옵니다. 어디로 도망치는지는 도망자 스스로도 모름)
나중에 전철 도망씬에서 등대위로 도망가는 것도 그냥이고. 외에도 수없이 많이 전개의 허술함을 지적할 부분이 많습니다.
전개가 어설픈건 상징과 비유, 그리고 연출로 떼우는데요. 연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4) OST만 좋았다.
노래는 정말 좋습니다. 마지막 엔딩 노래는 일본을 뒤흔들고 있다죠? 근데 거기까지입니다.
작화가 전체적으로 나쁜건 아닙니다. 나쁜건 중간중간에 삽입한 3D영상입니다...... 솔직히 저질이라 나올때마다 눈에 거슬리더군요.
연기가 그저 그랬던거 같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의 연기를 지적하기엔 좀 그렇고...
연출 얘기를 하지요. 이 영화의 제작사는 샤프트인데요. 나름 유명한 회사입니다. 대표작은 '바케모노가타리' 시리즈 등이 있죠.
제 말은, 그 '바케모노가타리' 스러운 연출을 지나치게 많이 써서 짜증이 났다는 겁니다.
저 작품을 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히타기, 주인공은 코요미의 연출을 그대로 배껴왔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16세도 안된 중학생 (정확한 나이는 안 나오더군요) 주제에 눈웃음, 섹시 어필, 남자에 대한 유혹 등등을 내보이며
주인공은 진지한 장면인데 갑자기 데포르메 된 캐릭터 얼굴로 뿅 변한다거나 합니다.
니들 대표작이 바케모노가타리인건 알겠으니 이런건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6] 총평
제가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가고 싶어졌던 시점이 영화 시작 후 1시간 정도였습니다.
그 후 30분 남았는걸 알면서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온 몸을 비틀면서 봤어요.
심지어 기승전결상, 그 남은 30분이 클라이맥스이자 절정으로 올라가는 부분인데도 말이죠.
애석하게도 이 작품은 열린 결말입니다. 문제는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선을 최대로 끌어올려주지도 못했으면서,
그 남은 감정선을 제대로 풀어주지도 못했습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을 자주 예시로 드는데,
'언어의 정원'을 예로 들자면, 열린 결말이지만 끝에는 남주인공이 신발을 만들어서 봄에는 그녀를 찾아가야지 정도의 마무리는 해 줍니다.
이 작품은 클라이맥스에서 남녀의 헤어짐이 있고나서, 학교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데 안 보이고는 거기서 바로 끝입니다.
솔직히 너무하더군요. 물론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할 여지는 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보지 마시라는 겁니다... 돈과 시간을 아끼시길 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제가 영화에 별로 조예가 안 깊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한'의 정서라고 많이들 하지 않나요?
아니면 제가 애니메이션을 묶어서 (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오글거림이라고 표현했듯이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묶어가지고 '막장'이 한국 감수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기도;
(수정됨) 애니의 원작인 이와이 슌지의 TV영화는 엄청 좋아하는 작품인데 애니화는 실패한 것 같아 아쉽네요.
스토리 중 이해 안 가는 뜬금전개(전철역에 간다든지)는 원작 영화에서는 개연성100%에 무척 공감되는 씬이거든요. 망작을 보신 것에 위로드리며 저 역시 아쉽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