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몇 살의 여름, 귀를 뚫었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커녕 대강의 시기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십대 초, 라고 기억하지만 십대 후반의 일일지도 모르고 이십대 후반의 일일지도 모른다. 몇 개를 뚫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네 개 이상을 뚫었다는 건 분명하다. 넷 아니면 다섯이었을 텐데. 의외로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귀를 뚫고 얼마 되지 않아, 당시의 긴 머리에 엉켜서, 혹은 염증으로 한두 개의 구멍이 막혔던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확실하게 세 개의 흔적이 남았으니까.
세 개도 얼마 가지 않아 막혀버렸다. 아니다. 꽤 몇년 갔나? 기억나지 않는다. 굵은 반지처럼 생긴, 금색의 링 귀걸이를 즐겨 사용했던 기억은 있다. 정치인도 아닌데 기억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의외로 정치인들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오래, 많이 산 사람들이잖아. 나도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오래 많이 살고 나니 모든 것들이 이토록 흐릿한데.
아무튼 확실하게, 내 귀에는 세 개의 막힌 자국이 있었고 그뿐이었다. 외계인이 내 귀에 이상한 시술을 한 뒤에 기억을 조작한 게 아니라면, 내가 귀를 뚫었고, 시간이 지나 막힌 것이다. 몇 개는 내가 직접 뚫었고, 몇 개는 길거리의 샵에서 뚫었다. 아팠던가?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는 건 기억나지만, 아픔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염증이 심하게 올라와서 좀 불편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딱히 아프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뚫었더라? 글쎄, 기억나지 않는다. 좋았나? 응. 귀를 뚫고 나서 왠지 그걸로 좋았어.
그렇게 세 개의 막힌 자국이 있었고 그뿐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 귀를 뚫었기 때문이다.
서른 몇의 겨울, 그러니까 어제, 그렇게 귀를 뚫었다. 한 달쯤 전에 연말연초의 자금계획을 세우고 '아, 귀나 뚫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가 가능한 최대한의 사치였다. 그래, 귀를 뚫자. 몇 개나 뚫을까. 아홉 개. 여기까진 쉬웠다. 그러면 왼쪽 넷 오른쪽 다섯으로 할까, 오른쪽 다섯 왼쪽 넷으로 할까. 여기부터 어려웠다. 좀 더 극단적인, 이를테면 왼쪽 셋에 오른쪽 여섯 같은 걸 고민하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헤매기도 쉬우니까. 한 보름을 좌4우5냐 좌5우4냐로 고민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고민이었다. 이를테면 연말 운영 계획을 세우고, 연말 자금 결재를 어떻게 조율하고, 카드와 채무를 어떻게 돌려막을 것이며, 신년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하는 고민들 사이에 저런 고민이란, 정말 즐거운 고민인 것이다. 연말 즈음에 결론을 내렸다. 좌4우5로 간다.
새해 첫 주에 새 마음 새 뜻으로 귀를 뚫어야지, 라는 계획은 보기좋게 실패했다. 염병할 통풍 발작이 오신 덕분이다. 규칙적인 조깅과 식이조절로 세 달 동안 14키로를 감량해서 건강 수준의 bmi를 만들고 복부비만에서 탈출했다 하더라도, 통풍은 온다. 물론 계절마다 발작하던 것이 일년 반 만에 왔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와버렸다. 게다가 보기좋게 병을 키웠다. 사람이란-혹은 나란-간사하고 멍청한 놈인지라, 일년 넘게 소식이 없던 통풍이 다시 올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라 발이 좀 아프네 간단한 신경통이라거나 근육통이라거나 아무튼 무슨 그런 통이 온 거겠지 자면 나을 거야'라 생각하며 술과 고기와 맥주를 양껏 먹었고 그리고 다음날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갸아악 구아아악.
게다가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보기 좋게, 작년에 교정받은 내성발톱이 통증 없이 쑥 빠져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병원 갈 일이 두 개나 생겼다. 두 의사-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며 정형외과 의사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둘 다 내가 본 정형외과 의사 중에 제일 잘 생긴 사람들이었다-는 '이거 엄청 독한 약이에요 술담배 줄이고 헛짓 마세요. 당분간 매일 드셔야 됩니다'라고 말하며 콜히친과 플루코나졸을 처방했다. 하, 이런.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고 열흘도 안 된 날 보험진료와 약값으로 십만원을 넘게 써버리고 '아 올해도 병원비 백만원 이하로 쓰기 운동은 실패인가'라는 좌절에 빠져 있었다. 제기랄. 이렇게 된 바에 귀나 뚫어야겠어. 진짜로. 원래 병원은 한 큐에 가는 거지.
서른 몇의 나는 스물 몇의 나와 다르게 간에 부하를 주는 약 두 개를 매일 먹으며(그리고 그 약에 상응하는 질병을 가지고 있으며), 술을 마시는 대신 술을 따르는 일을 하고(물론 마시기도 하며), 빚이 수십배 많아졌지만 벌이도 수배는 많은 그런 상태였다. 나이를 먹으니 신경쓸 것도 많군. 병원에서 뚫자. 대충 뚫었다가는 백프로 염증 나서 망할 각이로군. 하며 병원을 검색했다. 계획한 아홉 개의 구멍 중 두 개는 옛 자리에 다시 뚫을 생각이었는데, 왠지 어딘가 잘못될 것 같은 느낌이라 이건 병원에서 뚫고 나머지는 샵에서 뚫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옛 흔적 셋 중 하나를 지우고 싶기도 해 관련한 정보도 찾아보았다. 흔적을 지우는 시술은 비보험 성형의 영역이며(대체 왜죠. 섬유결절과 그에 따른 준 만성 표피낭종은 질병이 아닌가), 꽤 비싸고 하는 곳도 별로 없다는 우울한 결론을 얻고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옛 흔적 둘을 다시 뚫자. 하나를 지우는 건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서 뚫었다. 길에서 산 귀걸이로 쑥, 하고 내 손으로 뚫고 바로 술을 마시러 나갔던 이십대의 패기어린 나와 달리 서른 몇의 나는 초조한 얼굴로 병원 대기실에서 쓰시마 유코-그러니까, 다자이 오사무의 딸 되시는-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스물 몇의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꽤 좋아했었지. 그리고 그렇게 귀를 뚫었다. 샵에서 어떻게 뚫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병원에서는 뭐랄까 병원처럼 귀를 뚫었다. 비싸고, 아팠다. 엥. 왜 이렇게 아프지. 이렇게 아팠었나. 전혀 기억에 없는데.
게다가 피도 꽤 났다. 엥. 피가 원래 이렇게 많이 났었나. 옛날에 귀를 뚫었을 때도 이랬나. 모르겠다. 피나 고통 같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아마 마흔 몇 살이 된 나는 어제 흘린 피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므로. 두 개를 병원에서 뚫고 바로 샵에 가서 일곱 개를 뚫으려는 나의 계획은 장대하게 패망했다. 아이고 아야 아이고 하며 산책을 좀 한 나는 조용히 출근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뚫도록 하자.
오랜 친구는 '이상한 싸구려 옷을 잔뜩 사고, 다이어트 강박에, 이상한 술집에서 일하고, 연애 노래나 들으면서, 이젠 하다하다 귀까지 뚫냐. 너 무슨 가출 청소년이냐' 라는 코멘트를 했다. 그러게, 가출 청소년처럼 집도 없고 미래도 없군, 이라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한 대 얻어맞을 싸구려 농담으로 받아치고 한 대 얻어맞고 가출 청소년처럼 웃었다.
뭐, 마흔 몇에는 뭔가 같고 또 뭔가 달라지겠지. 그때 내 귀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