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린 곳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편의점이었다.
월요일 저녁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이 편의점은,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로또 판매점이다.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5등에 당첨되었다.
용지에 자동 둘, 수동 셋으로 미리 마킹을 하고 나서 당첨된 로또 복권을 내밀었다.
어라?
점원이 바뀌었다.
문득, 저번 주에 봤던 점원을 떠올리며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로또 5등이요.”
점원은 순수하게 당황한 표정으로 내 얼굴과 로또 복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한다.
“아? 네? 당첨이요? 그, 그래서 당첨번호를 그려서 오셨어요? 용지 주세요.”
점원은 로또 복권이 아닌, 내가 방금 사인펜으로 마킹한 로또 용지로 손을 내민다.
살짝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빈 용지에 당첨번호 마킹해 오기만 하면 당첨금 줄 생각인가?
“아뇨, 이건 제가 방금 마킹한 것이고 이 로또 복권을 확인하셔야죠!”
그래도 점원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니까 방금 그린 그걸 주세요.”
“아니, 이건 그냥 방금 마킹한 용지일 뿐이라니까요!”
몇 번이나 같은 대화가 되풀이되었고 살짝 짜증이 솟구쳤다.
벌써 뒤쪽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표정들이 좋지 않다.
최대한 점원이 알기 쉽게 다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이 용지는 제가 방금 그린(!) 것이고 당첨된 복권은 이거니까 이거 받고 당첨 확인부터 하셔야죠.”
점원은 당황한 것 같았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전화를 돌린다.
점주에게 거는 것이리라.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손님이 그려온 것으로 당첨확인을 하려는데 어떻게 하냐고…….
점주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점원의 얼굴은 점차 하얗게 변한다.
안쓰러워진다.
젊은 시절 매점 알바를 처음 했던 날이 떠오른다.
나도 실수를 할 때마다 저런 표정이었으려나?
이 사람은 오늘 처음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로또에 대한 프로세스는 하나밖에 외우지 못한 모양이다. [손님이 돈과 함께 마킹한 로또 용지를 주면, 기계에 넣고 돌린 뒤에 나온 복권을 준다!]
공대생이 틀림없다.(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아주 정성스럽게 실수를 하는' 모 가수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돈은 주지도 않고 마킹한 로또 용지와 당첨된 로또 복권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새로운 경우의 값에 당황한 것이다.
오류를 일으킨 점원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지자, 내가 대신 점주의 전화를 받았다.
“제가 5천원 당첨되서 복권을 가져왔는데, 점원이 잘 모르고 제가 마킹한 용지를 자꾸 달라고 하시네요. 일단 복권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전화를 다시 바꾼 점원은 더욱 위축되어 있었다.
점원이 전화로 혼나는 동안,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다른 손님들이 먼저 계산하도록 했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계산을 잘 하는 것을 보면 아예 경험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줄이 없어지자, 점원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다.
그리고 나는 점원이 전화를 통해 새로운 프로세스를 익히는 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몇 분을 더 기다리자, 마침내 모든걸 이해한 점원이 그제야 웃으며 기계에서 뽑은 복권을 내민다.
“죄송합니다. 제가 편의점 알바를 두 개 뛰는데 다른 곳엔 로또 기계가 없어서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어쩌죠? (퀘스트가) 하나 더 있어요.”
내가 내민 천 원짜리에 당첨된 연금복권에 점원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지만, 전만큼 헤매지 않고 곧 해결했다.
연신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이는 점원의 모습에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사실 저번 주에도 같은 일을 겪었었다.
편의점 알바가 처음이라던 그 점원은 불과 일주일 만에 그만둔 모양이다.
“수고하세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웃는 점원에게 인사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연 이 점원은 얼마나 버틸까?
이곳은 우리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로또 판매점.
그와 동시에 1등이 세 번 배출된 로또 명가!
오늘은 월요일이고 내가 첫 손님이었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이 되면…….
그가 부디 잘 버텨주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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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2주쯤 전에 겪었던 일이 문득 생각나 적어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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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답답한 스타일이긴 하네요. 편의점 택배 초창기에 심지어 저는 편의점 알바를 해 본 적이 없음에도 몇 차례 택배이용을 하다보니 (모니터에서 어떤 화면이 나오는지는 몰라도) 택배수령 과정에서의 처리방식은 알고있었는데 점원이 아예 모르고 있더라고요. 택배 수령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있었...
그래도 "제가 몇 차례 받을 때 보니 뭐 이걸 포스기로 찍고 뭘 처리하고 이부분은 뜯어서 보관하시고 하더라"라고 하니까 적당히 파악하고, 막힐 땐 아마도 다른타임 점원인듯한 사람에게 연락해서 잘 처리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