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나 다이어트를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해본 적은 딱 두 번입니다.
중학생 때 한번, 그리고 지금이 두번째.
#2
초등학생 때 참으로 밖으로 나가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당연히 살이 찌지 않았죠. 굉장히 활동적이고 장난끼 가득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러다 3학년 때 집에 컴퓨터를 샀는데, 그 때 제가 만난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입니다.. 크큭.. 하필이면 스타크래프트.. 덧붙여 디아블로2....
크큭.. 저를 일평생 돼지뚠뚠이 + 겜덕으로 살게 만든 범인들입죠.. 블리자드는 제 인생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살이 정말 쉽게, 정말 잘도 찌더군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그러니까 대략 두 달의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15kg가 쪄버렸습니다.
정확한 전후 키/몸무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드름만 없을 뿐 완벽한 파오후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아무런 경각심이 없었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덕택에 키도 그 이후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12살부터 15살까지는 1년에 10cm씩은 넘게 컸던 것 같아요. 해서 살이 찌는게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3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오고,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 저의 심각한 상황을 대면했습니다.
처음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중2 15살, 180cm 90kg 정도의 몸무게였어요.
수치로 보면 그리 특별해보이지 않는데, 쌀 한포대도 제대로 들지 못할 약골인 주제에 몸무게는 90대였던 겁니다.
온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어있는 지방 덩어리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참 한심하고, 때때로의 상황에서 역겨웠습니다.
그 당시 생애 처음으로 동경한다는 기분으로 한 여자 아이를 마음에 품기도 하였고... 갸는 잘 살고 있을런지..
그 시절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횡단보도를 뛰고 나서, 아주 한참을 헥헥거렸습니다.
친구가 너 왜 아직까지도 숨이 가쁘냐고 물었었는데, 그 때 느꼈던 깊은 열패감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또렷히 기억합니다.
#4
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아주 잘생긴 친구와 함께 어렵사리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운동법이 뭐 엄청나게 체계적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타의반 자의반으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오후 내내 그냥 운동장에 있었어요.
축구를 하든 농구를 하든, 할 게 없으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든 뭐라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밥을 대차게 먹은 후, 다시 학교에 가 열 두시가 다가올때까지 또 망아지마냥 뛰어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을 3개월 정도 하니, 어느 순간 육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살이 빠졌다고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왔어요.
그 때부터 운동이 정말정말 재밌어져서 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뛰어다녔습니다.
그렇게 딱 반년이 지나자, 저는 184cm에 70kg가 되어있었습니다. 4cm +, 20kg -. 딜교 이득이여. 개이득.
#5
그 이후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가면서 몸이 어느 정도의 키와 몸무게에 정착하더군요.
20대 전반에 걸쳐 저는 186cm, 70kg 후반대의 몸무게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저에게도 인생의 파도가 찾아왔어요. 재작년쯤부터인가, 취업준비생이 되면서부터 극도의 스트레스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지 못해 매일 같이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을 청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새벽에 너무 허기가 지는 겁니다..
그 때 조금만 자제했으면 좋았을텐데, 적당한 몸으로 너무 오래 살아버려서인지 제 몸이 살을 찌우는 능력을 간과했었습니다.
아주 빈틈없이 꽉꽉 쑤셔넣을 수 있는 위인인데 말입죠.
취업준비를 시작했을 때가 대략 77kg 정도였는데, 뒤돌아 봤을 때 생각보다 멀리 와있었어요. 전 혼자였고 문득 겁이 났고..
정말로 살을 빼야겠다고 느꼈던 건 취업준비를 시작한 후도 아니고, 취업에 성공하고서 직장에 적응하며 고통 받을 때도 아니고
취업 이후 대략 6개월이 지난 시점이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략 3년간 방탕한 식습관 + 게으른 생활패턴에 저를 방치한 후였습니다.
#6
몸이 어땠냐면, 아니 우선 186cm에 88kg였습니다.
몸이 어땠냐면, 가슴이 너무 튀어나와 105 사이즈의 상의으로는 유두의 돌출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뱃살이야 말할 것도 없고,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잡았을 때 손가락끼리 만나기가 슬슬 버거워졌습니다.
덧붙여 뭔 바지를 입든 사타구니 사이의 허벅지 살이 부딪혔습니다.
그냥 어깨 너비 정도로 가만 서있는데 양쪽 허벅지가 만나 우정을 나누는 촉감은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더군요.
정말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라고 느끼는 순간 오랜 연애가 끝났습니다. 이별을 맞이했어요.
아니 이별을 맞이했다기보단 실연 당했다고 표현하는게, 아니지.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다고 표현하는게 클-린하군요.
#7
마지막으로 그 친구를 만난게 9월 29일이고, 한 일주일 정도는 눈물 질질 싸느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날짜를 되짚어보면 오늘이 운동을 시작한 지 두달 정도 되는 날이겠네요.
제가 두 달 정도 운동하면 이렇게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몸은 형편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스스로를 너무 신뢰했어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믿지 마세요. 진짜 못 믿을놈임..
예전 학생때만큼 무지막지한 운동량은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없더군요.
체력도 딸렸고, 일도 해야했고, 무엇보다 저는 3교대를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규칙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대략 한시간동안 7~8km의 오르내리막을 걷고, 집에 와 스쿼트, 푸쉬업, 플랭크를 적절히 30~40분 하는 운동법을 실천했습니다.
#8
아, 저렇게 운동해봤자 쳐먹던대로 쳐먹으면 건강한 돼지가 될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에, 식사량은 엄청 조절했습니다.
예전의 제가 쳐먹던 양을 10으로 친다면 운동기간 동안 잡수신 양은 3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배가 고프다 못해 혈당이 떨어져서 눈이 띠-용할만큼 힘들었습니다. 운동보다 식이조절이 몇 십배는 더 힘든 듯 싶습니다.
중간중간 살이 빠지지 않고 멈추는 구간에선 정말 체중계를 부셔버리고 싶었어요.
체중계를 맹신하며 운동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는데 저는 하루에도 수 차례 체중계 위에 올라 두근두근 맘을 졸였습니다.
84kg에서 한번, 82kg에서 한번, 80kg에서 한번. 지독하리만치 몸이 감량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동할 땐 이런 생각을 주로 했습니다. 나를 돼지 뚠뚠이도 만든 과거의 나.. 딱 한 대만 쎄게 때리고 싶다..
#9
그래서 지금은, 짜잔. 186cm에 77kg입니다. 두 달동안 10kg 정도를 감량한 셈이네요.
겉으로 보기에 잘려나간 부위가 참으로 많은데도, 여전히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는 체지방이 눈에 띄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예전에 하던 걷기 운동은 날씨가 추워져서 stop. 대신 푸쉬업과 스쿼트, 플랭크에 덧붙여 세라밴드(thera-band)를 통한 자잘한 운동을 추가해
날마다 대략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의 운동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는 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너무 배고파요.. 지금도 배가 고파요..
앞으로도 꾸준히 배고픈 채로 최소 주 5회이상, 한달에 26일 이상 운동하는 것이 현재 지향점입니다.
#10
굉장히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살을 빼는 것보다 근육을 붙이는게 몇 배는 어렵고, 맨 몸 운동으로는 더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같은 몸 쓰레기는 괜히 PT도 안받을거면서 헬스장을 가봤자 이것 저것 들다가 부서진 몸 쓰레기가 될 것이긴 합니다만..
운동을 하고 나면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안 들기 때문에 피지알에 글을 쓰지도 못할 것 같고해서 운동 전에 똥글 한번 써봤습니다.
앞으로 몸이 변화해감에 따라 운동도, 식이도 조금씩 변경해야겠지요. 저의 몸꽝 탈출을 간절히 바라며 글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다이어트 하시는 모든 분들의 몸과 마음이, 날이면 날마다 조금씩 가벼워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