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때 부모님을 전부 다 잃고 국민학교도 채 다 마치지 못하신 우리 아버지가 그나마 돈좀 벌어보겠다고 남에 땅을 빌려
반 머슴격으로 수박, 감,포도, 도마도 등등 여러 과수원을 하시다가 결국에 모두 망해 과수원에서도 쫒겨나시고는,
결국엔 리어카 하나를 끌고 하루종일 고물을 줏어다가 팔아 어머니와 누나, 저, 그리고 막내 등 우리 다섯 식구를
먹여살리던 시절..
남에 집 셋방살이,,한겨울에도 연탄 한장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우리집에 테레비가 있을턱이 만무했죠.
그래서 생각해 낸 꾀가..나랑 동갑이었던 주인집 아들래미와 친하게 지내기.
저녁 다섯시 반(이시간부터 테레비에서 만화를 했던게 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부터 시작하는 만화 몇편을
같이 보기위해 말이 친한척이지 요즘말로 하면 거의 따까리라 불려도 무방할만큼 대장처럼 모시고 지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말처럼 쉬운게 아니라서..
술래잡기, 망까기, 다방구,,등등 무슨 놀이를 하건 져줘야만 했던 그 상황..가끔 우리 편이 너무 잘해서 본의아니게
놀이에 이기기라도 하는 날엔 뒤끝이 장난아니었던 그놈은 주인집 방문을 꼭꼭 끌어닫은채 마치 약을 올리듯이
소리만 왕창 켜놓고선 혼자 테레비를 봅니다.
소리라도 안들리면 좋으련만 크게 틀어놓은 볼륨에 머리속으로는 엄청나게 재미있을듯한 상황이 마구 마구 상상이 되고
보고싶어 안절부절하다가,,끝내 참지 못하고 주인집 안방 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갑니다.
그당시엔 지금처럼 원목으로 만든 문이 있을리가 없죠. 한지를 붙여만든 양쪽으로 밀어서 드나드는 한지 문짝..
신혼 초야를 훔쳐보는 하객도 아닐진데 혹여나 들킬새라 최대한 조심조심 다가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한개 내고서는 전투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썩소를 지으며 만화를 훔쳐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더군요.
밖에서 훔쳐볼것이란걸 예상이나 했다는듯이 바로 저는 응징을 당합니다.
제가 내놓은 구멍으로 손가락을 찔러넣어 지금 시대로 따지면 최소 전치 2주에 해당하는 테러를 가한거죠.
눈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 재미나는 만화를 볼수 없다는 실망감에 목놓아 엉엉 울며 엄마에게로 달려갑니다.
하늘을 날듯 기뻣고, 동네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자랑을 해댔으며, 그 후 보름정도를 김치와 간장뿐인 밥상에도
불평한마디 없이 한 공기를 맛나게 비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테레비가 생겼다는 흥분에 잠도 제대로 오질 않아 내일 아침엔 어떤 만화부터 볼까 하며 나름 고민을 하던 오밤중,
우리 형제들 몰래 끌어앉고 우시던 부모님은 왜 저렇게 우시나..하며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그 다음해 딸랑 이불 한채만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할때도 재산목록 1호였으며.
서울 상경 13년만에 무당이 살던 집을 사서 새 칼라테레비를 들일까지도 저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 흑백테레비.
어린시절 최고의 친구였으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던 그 테레비젼..
울 아부지 하루종일 힘들게 고물모아 팔아모든 두달치 댓가인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그래도 그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철없는 아들래미 쥔집 테레비 몰래 훔쳐보다 손가락에 찔려 벌겋게 충혈된거 보시곤 앞뒤 생각안하신채 바로 저를 업고
한달음에 읍내까지 달려가셨던 우리 어머니.
그 추운 한겨울에 하루종일 얼은 손,발 비벼가며 힘들게 고물모아 모은 돈을 상의한마디 없이 테레비 산거 아신 후에도
오히려 타박보단 없는자의 설움에 어머니 끌어안고 자식들 몰래 소리없이 흐느끼시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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