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당제국, 당나라의 고조는 이연이지만, 그 왕조를 이룩한 인물은 바로 태종 이세민이었다. 중국 역사상 통일 왕조는 여럿 있었고, 따라서 개국 군주들도 여러명이었지만 그들 중 이세민 만큼 존귀했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은 북주 팔주국(八柱國)의 일원으로 세습되어 온 당국공(唐國公) 지위에 있었으나, 수나라 황제 양광과 이종 사촌이었다. 이세민의 어머니 두씨는 신무공(神武公) 두의(竇毅)의 자녀로서 그 가문은 북주 황실과도 인척 관계게 있었다. 이세민은 태어났을 때부터 선택 받은 인물이었다.
그 막강한 가문의 공자가 당나라를 세웠고, 그를 공신들도 이와 비슷한 인물들이었다. 일찍이 소면(蘇冕) 등은 전한 왕조를 이룩한 고조 유방, 상국 소하와 조참, 회음후 한신과 양왕 팽월을 일컫어 "이들을 어찌 등급으로 (우리에 견줘)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소우, 진숙달, 배구, 우문사급, 두항, 배적, 당검, 장손순덕, 굴돌통, 유정회, 두궤 등의 수당시대 영웅호걸들은 모두 명망 있는 귀족의 후예였다. 이에 비해 고조 유방은 맨 땅에서 일어나 삼척검을 들고 천하를 평정했고, 소하와 조참은 도필리였으며, 한신은 남의 가랑이 사이를 걸어갔고 팽월은 도적 때의 일원이었다. '본시 출신부터가 미천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어찌 영웅호걸들의 자식이자 후예인 자신들에게 비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태어나서부터 선택받은 존재들은 당제국을 이끌어 갔다. 학생들 역시 부모의 지위에 따라 손에 넣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달랐다. 국자학은 3품관 이상의 자제, 태학은 5품관 이상, 사문학은 7품관 이상의 자제가 배우도록 규정되었다. 제국의 중후반기가 되자 귀족 출신과 진사 출신의 관료들이 맞 붙은 우이의 당쟁(牛李黨爭)이 있었다. 그러나 '명문이 아닌 집안' 이라는 것도, 하늘 위에 있는 세상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오대의 시대가 다가오며, 이러한 세계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황소의 반란은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으며, 여기에는 후량의 태조였던 주전충이 있었다. 주전충의 본명은 주온이다. 그는 황소의 난에 참가했으나 훗날 당으로 귀순, 선무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전충이라는 이름도 그때 하사받은 것이다.
주전충은 탕산의 빈농 출신이었다. 구오대사의 기록에 따르면 주온의 아버지는 주온이 장성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여러 자식들의 입과 아녀자 혼자 남은집안은 빈곤해졌고, 주전충의 어머니와 네명의 형제는 지역의 유지인 유숭의 집에서 머슴 살이를 하며 지냈다. 속에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주온이었지만, 그는 늘 자신을 게으르게 여기는 주인 유숭에게 욕과 매질을 당하며 지내야만 했다.(崇以其慵惰,每加譴) 매일매일 폭언과 구타, 매질과 욕을 먹으며 주온은 분을 삼켰다. 단지 유숭의 늙은 어머니 만이 이 오기가 가득찬 꼬마 아이의 머리를 직접 빗겨주면서 안타까움을 표시 했을 뿐이다.
그런 주온은 천하에 대란이 일어나자 결국 뛰쳐나왔고, 황소의 부하로 일하며 공을 세웠으며, 종내에는 황소마저 배반하고 당나라에 붙어 주전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강력한 사타 튀르크족 이극용의 세력과 여타 제후들을 계략으로 누르고 조정에서 자리를 잡아 한때 세계제국이라 일컫어지던 당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는 잔혹무도했고, 적대자들에게 아량이라고는 없었다.
당제국의 몰락을 뒤에서 무너뜨린 세력 중에 하나가 바로 환관들이다. 궁정의 깊은 어둠 속에서 음습하게 활보하는 그들은 정보를 차단하고 온갖 흉계와 계략을 꾸미며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였다. 당나라의 문종은 환관들의 장난감이 되어 눈물을 흘리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조정에 빌붙은 환관은 강력하여 제거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전충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농민 출신으로 태어나 군대와 실력을 키워 힘으로 수도를 압박하는 그에게 조정의 권위라던지, 환관의 저열한 계략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환관들은 최후에 황제를 납치하여 봉상으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주전충은 장안을 장악하고는 봉상의 실력자 이무정을 군대의 힘을로 눌러 항복시켰다. 이무정 역시 난세의 실력자로서 10도 12주를 지배하고 당나라 황제의 힘을 빌려 선양 받으려고 했지만 그의 야망은 더 큰 야망을 가진 주전충에게 무너져 내렸다.
주전충은 봉상에서 72명의 환관을 죽였다. 그리고 다시 이 잡듯이 환관을 장안 등에서 잡아내 90여명이나 되는 환관을 추가로 죽였다. 이후 황제를 만나 환관 척살의 허락을 공식적으로 얻어낸 주전충은 그날 밤으로 제오가범(第五可范) 등 수 백 여명의 환관을 내시성(內侍省)에 몰아 넣었다. 환관들은 저마다 밖으로 울려퍼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冤號之聲,徹於內外)
"억울 합니다! 억울 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본래 잔악한 주전충은 그런 환관들의 단발마 따위는 아랑 곧 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도륙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바깥으로 나간 환관들도 잡아 들여 씨를 말려버렸으며, 단지 어리거나 쇠약한 환관 30여명만 살려두어 청소를 하게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일부러 순박한 촌사람들만 50여명을 뽑아 새로 환관으로 임명했다.
지난 100여년간 당나라 조정을 어둠 속에서 지배한 환관들은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도륙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귀족들이었다. 귀족들을 쳐내는 것은 환관들을 쳐내는 일보다도 오히려 간단했다. 이 시기에는 세력을 가진 무인들도, 환관들도 모두 양아들을 대거 받아들여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세력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난세에도 문벌귀족들은 이러한 '가자' 를 만들지 않았다. 일찍이 한고조를 비웃었던 그 고귀한 혈통에, 어디에서 온지도 모를 가자 따위를, 그것도 한두명도 아닌 대거 받아들인다면 그 문벌이 흐려지지 않겠는가?
주전충의 옆에는 이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 여러번 도전했던 그는 끝내 급제하지 못하여 선비들과 문벌들에 대해 원한이 뼈에 깊어 있었다. 그는 주전충에게 말하였다.
"이 무리들은 항상 스스로 청류라고 여기며 뻐기는데, 어디 한번 그들을 황하에 내던져 스스로 탁류가 되어보게 해봅시다!"(此輩常自謂清流,宜投之黃河,使為濁流!)
이진의 말에, 주전충은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이라는 듯 한번 껄껄 웃고는, 그들을 모두 죽여 황하의 물 속에 내던져 버렸다.
환관도, 귀족들도, 지난 수백여년간을 버틴 이 존재들은 이 파격적인 폭군의 앞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도륙되었다. 구체제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주전충에게 있어서는, 한신과 팽월, 소하를 비웃게 했던 귀족들의 족벌 따위는 그저 '재미삼아' 황하에 내던져 볼만한 구경거리를 만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분명 의심 많고 잔혹하며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악랄한 폭군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당제국을 멸망시키기엔 가장 적절한 인물이었다. 조정의 귀족들을 모조리 물귀신으로 만든 주전충은 어느날 큰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뇌까렸다.
"이 버드나무로는 의당 수레바퀴의 차곡(車轂)을 만들어야 한다." (此木宜為車轂)
그러나 주전충을 본래 따르던 무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전충 역시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나무라지 않았지만, 눈치를 살피던 유생들은 재빨리 주전충의 비위를 맞추려 과장스럽게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의당 이 나무로는 차곡을 만들어야 합니다!" (宜為車轂)
그러자 갑자기 주전충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입만 산 서생들이란 작자들이 알지도 못하며 아첨하여 지껄여대는 소리라는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망할 놈들, 차곡은 반드시 느릅나무를 끼워서 사용해야 하는데, 어찌 버드나무로 그것을 만들 수 있겠느냐?" (書生輩好順口玩人,皆此類也!車轂須用夾榆,柳木豈可為之!)
그렇게 말한 주전충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냐!" (尚何待!)
주전충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수십여명의 병사들은 그 즉시 '버드나무로 차곡을 만들어야 한다.' 던 유생들의 머리채를 끌고 가 때려 죽였다.
마음대로 구체제를 파괴하고 죽이던 주전충의 행보는 여러 절도사들의 주위를 끌었으며, 당나라 소종 역시 이를 이용하여 절도사에게 구원을 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초에 소종을 이용해 중국 역사상의 유례가 깊은 '체면 차리기' 인 선양을 받으려던 주전충은, 소종이 시끄럽게 굴자 생각을 바꾸었다. 그의 결론은 간단했다. 주전충은 소종을 살해해버렸다. 환관과 귀족을 죽여 없앴을때처럼, 영웅 태종 이세민의 후예도 이렇게 너무나 간단하게 쓰러져 버렸다.
부하들과 사람들을 마구 죽이던 잔혹무도한 주전충이었지만, 그는 간혹 백성들에게 동정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시장에서 쌀을 약탈하던 병사들을 처벌하거나, 황폐화된 지역을 위문해서 생산력을 올리려는 노력을 했다.
906년의 어느날, 주전충은 유주의 유인공 세력의 세력지 중 하나인 창주를 포위하였다. 창주를 지키고 있던 것은 유인공의 아들 유수문으로, 아버지 유인공과 또다른 아들 유수광은 포악하기 짝이 없기로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다만 유수문은 그들과 기질적으로 다룬 되바라진 사내였다. 유수문은 아버지 유인공이 겁이 나 구원하지도 못하는 와중에도 치열하게 버티며 싸웠다. 주전충은 창주를 봉쇄하여 새와 쥐조차도 왕래할 수 없었기에 성 안에서는 식량이 떨어졌고, 성내의 병사들과 백성들은 흙을 먹으면서 버텨야 했을 정도다. 주전충은 유수문에게 소리쳤다.
"지원병은 오지 못한다. 어찌 항복하지 않느냐?" (援兵勢不相及,何不早降!)
그러자 유수문은 성에 올라서서 당당하게 대답했다.
"저와 유주는 부자관계입니다. 양왕(주전충)께서는 바야흐로 대의를 가지고 천하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고 있는데, 만약 아들에게 부친을 배반하고 오라고 한다면 장차 그를 어찌 써먹을 수 있겠습니까!" (僕於幽州,父子也。梁王方以大義服天下,若子叛父而來,將安用之!)
유수문의 당당한 변론 때문일까, 혹 유인공의 아들이 그토록 당당한것을 보고 자신의 무능한 자식들에 대해서 생각이 났을까? 주전충은 유수문의 말을 듣자 부끄럽게 여기고 공세를 늦추었다. 이윽고 창주 공격을 중단한 주전충은 귀환하면서 산처럼 쌓아 놓고 배로 가득 실어왔던 군량미를 가져가기 힘들어지자,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 그때, 적군이었던 유수문은 귀환하는 주전충에게 서신을 보내 요청했다.
"왕께서는 그저 백성이라는 이유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포위망을 풀고 떠나셨으니 이는 왕의 은혜입니다. 성 안에 수만의 사람들은 수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으니, 그것들을 불살라서 연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을 가라앉게 하여 진흙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바라고 빌건대 그 나머지로 저들을 구원케 해 주십시오." (王以百姓之故,赦僕之罪,解圍而去,王之惠也。城中數萬口,不食數月矣。與其焚之為煙,沉之為泥,願乞其餘以救之)
유수문은 적군이었던 주전충에게 식량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주전충이 이를 도와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주의 백성들이 모두 죽던지 혹은 유랑민이 된다고 해서 주전충이 받을 손해는 이미 더 커지기도 힘든 악명외에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유인공의 세력에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유수문의 말을 들은 주전충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직 없애지 않은 식량들을 모아 여러 곳간을 남겨 창주로 보내었다. 창주의 백성들은 이 곡식을 통해 아사를 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