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는 젊은 시절에 상당히 다혈질이셨는데, 툭하면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벌이셨고, 때때로 어머니께 손찌검을 하기도 하셨다.
물론 나를 대할 때도 그 성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니신지라, 툭하면 혼을 내셨고, 조금은 (때로는 상당히) 과하게 매를 드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당신께서 퇴근 하실 시간에 맞춰, 이불 속에 숨어 자는 척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열 살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상당히 비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혈질인 사람이 흔히 그렇듯, 아버지는 기분파셨다.
당신께서는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으시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주먹을 휘두르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등산이란 걸 해봤는데,
아버지가 무서웠던 나는 힘들어도 찡찡대지 않고 아버지 뒤를 쫓아갔고,
당신께서는 그런 나를 제법 기특하게 여기셨던 듯하다.
아버지는 그날 기분이 참 좋으셨었지.
내가 풀린 신발 끈에 걸려 한심한 꼴로 넘어지기 전까지는,
그리고 내가 신발 끈을 맬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전까지는.
그날의 기억이 유독 생생한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유독 심하게 매를 맞았던 듯하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아버지와 별로 비슷한 점이 없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예민한 성격이었고, 어려서부터 지난 일을 곱씹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 치고는 쓸데없이 영리한 면이 있었지.
매를 맞으면서도 "아빠가 신발 끈을 묶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요"라고 항변했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멍청한 행동이었던 듯하다.
가만히나 있었으면 다만 한 대라도 덜 맞았을 텐데...
공포는 혐오로 변했다.
아버지가 미웠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10대 초반의 나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나는 또래 중에서 꽤 크고 힘이 센 편에 속했고,
인상은 상당히 더러운 편에 속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은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친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별로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나는 틀림없이 이 사람의 자식이구나.
아버지가 더 미워졌다.
그날 이후로 당신께서는 예전처럼 심하게 날 혼내거나 때리지 않게 되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예전에 비해 폭력을 덜 휘두르게 되었다.
지나간 친구들 대신 새 친구들이 생겼다.
그러고 나선?
십 년 넘게 아버지와 소 닭 보듯이 살았다.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이제 나는 제법 머리가 굵어졌고, 당신께서는 제법 나이가 드셨다.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문명인답게 대화를 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온갖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철학, 과학, 종교, 경제, 정치, 역사...그리고 먼 과거의 일과 먼 미래에 일어날 일에 관해서.
아버지는 사실 지적으로 예민한 분이셨다.
그저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셨기에 대학을 나오지 못하셨고,
옛날 한국인 남자답게 화를 내지 않고서는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셨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아버지를 미워하기 어려웠다.
오늘 아침, 당신께서는 내가 아끼는 커피 드립 포트를 태워 먹으셨다.
헬스장에서 돌아와서 커피를 한잔 땡기려고 하는데,
가스레인지 위에서 내 드립 포트가 불타고 있었다.
일전에도 드립 포트로 직접 물을 끓이려 하신 아버지께
'아버지 이건 그런 용도의 주전자와는 다르니 커피를 내리실 때만 쓰세요.'라고 했었지만,
그런 말은 진즉 잊어버리셨겠지.
날이면 날마다 새벽에 커피를 끓여드렸건만,
오늘은 왠일로 늦잠을 다 주무셨단 말인가.
10년이 넘게 쓰던 물건이다 보니, 입맛이 몹시 썼다.
바로 몇 달 전엔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커피 통을 버리시더니만, 오늘은 포트라고?
화를 내려던 찰나, 바로 얼마 전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옛날부터 통기타를 참 좋아하셨는데, 모처럼 새 기타를 사셨다는 것이다.
피의 복수로 아빠의 기타를 부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아니고...)
그런데, 기타를 사서 돌아오시는 길에 배가 너무 아프셔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불행히도 화장실을 찾지 못하셨고,
당신께서는 결국 수풀에 숨어 새로 산 기타 케이스 안에 변을 보셨다고 한다.
새로 산 기타를 손에 든 채로, 그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 메신 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셨을까.
그리고 어떤 심정으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화장실에서 케이스를 직접 닦으셨을까.
딱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슬펐다.
아버지께서는, 늦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꾸벅꾸벅 조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아마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겠지.
생각해 보니 드립 포트 바꿀 때가 되긴 했다.
이참에 좀 좋은 거로 바꿔야징.
저번에 커피 엑스포에서 봤던 사자 머리가 떡하니 박힌 동 포트가 참 어썸했었지.
명함을 어디에 뒀드라...?
나는 이 글을 왜 썼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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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엄마의 항암치료를 위해 시골에서 잠시 올라오셨던 아버지께 제 어린(?) 시절의 비밀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주변을 산책할 때 국민학교 어린시절 이후에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한손은 며느리가 잡고 다른 한손은 맏아들 손을 꼭 잡고 걸으니 기분이 좋다고 하십니다. 팔순이 넘으셔서 많이 거칠거칠해진 손!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1980년 후반에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고위직 공무원들의 숙정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몇십명씩 숙정이라는 명분으로 자르고 있는 뉴스를 볼 때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내 학비와 따뜻한 옷과 이불, 우리 가족의 행복과 화기애애한 화목이 온전히 한눈 안팔고 성실히 생활해 오신 아버지의 사회활동과 고생때문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신군부세력에 밉보여 아버지가 잘리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같이 무사하기만을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는 제 마음속의 기둥였고언제나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옛날 이야기와 함께 이 비밀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간직하신 비밀도요. 누구보다도 아버지께서 그 시절을 이겨내기 힘드셨을 텐데, 아들의 멋진 비밀을 알게 되시면서 그 시절을 보상받은 기분이셨을 듯합니다. 맏아들과 며느리의 손을 잡고 가는 아버님의 모습이라니, 머릿속에서 정말 멋진 풍경이 그려지네요 :)
팔순이시라니...아직은 참 멀게만 느껴집니다. 저희 아버지께선 얼마 전에 예순을 넘기셨어요. 부디 아버님께서 항암치료 잘 받으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빕니다.